[단비인터뷰] 청년문화예술단체 ‘작은따옴표’ 장서영 대표

“우리는 누구보다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 작은 영향들이 모여서 언젠가 선한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이게 저희 슬로건입니다. ‘나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거죠.”

서울 신림동 신원시장 끝자락의 후미진 골목. 세세한 길 안내가 없으면 찾기도 어려울 듯한  허름한 건물 지하에 이런 생각을 가진 청년들의 아지트(근거지)가 있다. 복합문화공간이자 ‘문화예술혁명단체’라고 자부하는 ‘작은따옴표’다. 지난 2014년 2월 스물두 살 울산 청년이 혈혈단신 개척한 공간에 이제 연간 3000여 명의 청년들이 찾아와 ‘문화예술의 힘으로 세상을 함께 바꾸자’고 모의한다. 이곳을 처음 개척한 장서영(25) 대표를 지난 5월 31일 신림동 작은따옴표 1호점에서 만나고, 지난달 29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장학금과 ‘스펙’ 포기하고 선택한 길 

▲ ‘나다운 삶’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싶다고 말하는 장서영 대표. ⓒ 이연주

울산에서 나고 자란 장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미대 진학을 결심하고 3년 내내 미술학원에서 오직 입시만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미대에 가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코네티컷 주의 브리지포트 대학교에 디자인 전공으로 장학금까지 받고 합격했다. 제휴기관인 건국대학교에서 2년간 공부하고 나머지 2년을 미국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과정이었는데, 2012년 입학한 그는 대학 수업에 대한 회의에 빠져들었다.

“막상 대학에 와서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어요. 듣고 싶지 않은 필수전공, 필수교양 과목들을 들으면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눈 뜰 때부터 눈 감을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나답게 살아갈 순 없을까 하는 생각에, 결국 미국으로 가야하는 3학년을 앞두고 휴학을 결정했죠.”

주위에선 모두 그의 휴학을 말렸다. 3000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포기하고, 좋은 ‘스펙(조건)’과 인맥을 갖출 수 있는 대학 졸업을 미루는 건 어리석다는 조언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간절히 원하고 설레는 일을 하는, ‘나다운 삶’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다고 회고했다.

1인 가구 밀집한 문화 불모지에서 ‘도전장’ 

2014년 2월 서울로 온 그는 곧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할 공간을 찾아다녔지만 돈 없는 휴학생 예술가에게 장소를 내줄 사람은 없었다.

“이런 현실에 순응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 이해는 하되 순응하지 않고 나만의,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 저는 후자를 선택하고 나만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죠.”

▲ 서울 신림동 신원시장 끝 후미진 골목에서 작은따옴표를 만날 수 있다. ⓒ 이연주

그는 한 문화기획사의 공연 팸플릿 제작 등 디자인 일을 맡아 100만원 남짓 수입을 올린 뒤, 공부하려고 모아 둔 돈 등을 모아 보금증 700만원에 월세 73만원짜리 40평 공간을 얻었다. 처음부터 장소는 꼭 신림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고시원과 원룸 등이 밀집해 있고 1인 가구가 많은 곳, 문화 불모지인 이곳을 서울 홍대 주변처럼 활성화시키겠다는 게 그의 목표였다.

내고 싶은 만큼 내고, 밤새 어울리는 공간 

현재 작은따옴표는 9명의 운영진을 포함한 40여 명의 식구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해엔 원래 공간인 1호점 맞은편에 작은따옴표 2호점을 열었다. 이름 없는 청년 예술가들에게 공연무대나 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매달 신림동 일대의 고시생, 대학생, 직장인 등 청년 1인 가구들을 초대해 ‘고시촌 빌라축제’를 연다. 한 번에 약 40여명의 생면부지 청년들이 각자 음식을 갖고 와 나눠 먹는 ‘포트럭 파티’를 하며 밤새 공연을 즐기거나 게임을 한다고.

“1인 가구 청년들이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을 ‘작은따옴표’에서 느끼더라고요. 입장료도 없고 24시간 열린 채로 자유롭게 운영되니까, 밤새도록 노래하고 떠들며 독특하고 따듯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네요.”

▲ 작은따옴표는 청년예술가들에게 자율지불제로 공간을 빌려주고 있다. ⓒ 이연주

청년 예술가들에게 전시와 공연 공간을 대관해 줄 때는 ‘자율지불제’를 적용한다. 공연의 종류나 시간 등에 관계없이 사용자가 내고 싶은 만큼의 액수를 대관비로 정하고 사전 예약하는 것이다. ‘돈, 스펙, 인맥,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꿈을 꿀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장 대표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면 운영경비도 조달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2014년 서울시 마을공동체 예술창작소로 선정돼 1000만원 상당의 지원금을 받는 등 다양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사회문제를 예술로 녹여내는 ‘문화예술혁명단체’

작은따옴표는 ‘문화예술혁명단체’를 자임하며 사회문제를 예술에 담아내는 데 힘을 쏟는다. 1인 가구를 위한 축제도 그런 맥락이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과 대안학교 ‘작따학당’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이런 취지에서 진행돼 왔다. 특히 길거리의 쓰레기 문제를 예술로 녹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탄생한 ‘아트래쉬(ARTRASH)’는 작은따옴표의 대표 프로젝트가 됐다.

“보통 버스킹(거리공연)을 할 때 기타가방을 놓고 돈을 팁으로 받으며 공연을 하잖아요. 여기서 발상을 조금 바꿔서 기타가방 대신 쓰레기통을 놓고 길거리의 쓰레기를 팁으로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작은따옴표는 버스킹 뿐 아니라 캘리그라피(서체예술), 페이스페인팅, 캐리커쳐(인상그리기) 등 길거리의 모든 예술활동에 아트래쉬를 접목하고, 크고 작은 축제에서도 이를 시도했다. 축제 현장에서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을 하면서, 돈 대신 축제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받는 것이다. 그러자 참여한 행사마다 작은따옴표 행사부스 앞에 남녀노소가 쓰레기를 들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은따옴표는 행사 주최 측으로부터 예산을 배정받고, 참여한 청년 예술가들에게 이를 분배하고 있다.

“아트래쉬는 네 가지 장점이 있어요. 먼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강제성이 없으니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모으면서 시민의식이 개선됩니다. 두 번째는 (행사장의) 쓰레기 문제가 실제로 개선되고요. 셋째, 축제를 주최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친환경 이미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네 번째. 무명 청년 예술가들의 활동이 더 이상 재능기부가 아니라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는 방식이 되는 거죠.”

▲ 사회문제를 예술로 녹여내는 작은따옴표는 창의적 발상과 시도를 인정받아 서울시 등에서 크고 작은 상을 수상했다. ⓒ 이연주

지금까지 50~60개의 크고 작은 행사와 축제에 선보인 아트래쉬는 2015년 ‘서울시 혁신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나답게 나아갈 뿐”

그는 학교를 그만 두고 작은따옴표를 이끌어 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좌절하지 않았던 경험을 동년배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네가 살고 있는 삶은 비상식적이고 미래가 없다고들 하더군요. 그분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올바른 삶을 저에게 강요하기도 하고, 그 잣대로 비난하기도 했죠. 그런데 저는 살아가는 삶 속에서 절대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아무리 쓸모없는 짓이라고 말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나의 행동들이 결국 성공했을 때 그 비난은 관심으로 바뀔 테니까요.”

장 대표는 아트래쉬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오는 9월 16일 작은따옴표 식구들과 함께 영국 킹스턴시에서 열리는 ‘가을 보름달 축제(Autumn Full Moon Festival)’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편집 :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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