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지역] ① 장병들 인권 침해 심각, 빨리 해제해야

위수지역은 군 부대가 담당하는 작전지역 또는 관할지역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외박⋅외출 때 병사들이 벗어나면 안 되는 지리적 범위로 인식된다. 2월 21일 위수지역 해제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국방부가 군 적폐청산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위수지역 폐지를 발표하면서다. 접경지역 주민과 지자체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국방부는 뒤로 물러섰다. <단비뉴스>는 이해당사자인 병사들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수지역 문제의 본질과 해법을 심층 취재해 두 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외출⋅외박구역 제한으로 2⋅3중 희생 강요

강원도 양구군 전방부대에 복무중인 ㄴ상병은 외출 외박을 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들뜬 마음으로 신고를 하고 부대 정문을 나서지만, 양구읍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다. 군 장병 외출⋅외박 제한구역인 위수지역이 양구읍까지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양구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면 춘천 시내로 나갈 수 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친구나 부모가 승용차를 몰고 오면 두 시간 남짓 거리인 서울도 갈 수 있지만, 그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그나마 군 소재지인 양구읍까지 나갈 수 있는 ㄴ상병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부대에 복무하는 ㄱ일병은 군청이 있는 화천읍에도 못 나간다. 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까지만 나갈 수 있다. 부대마다 외출⋅외박 제한구역이 달라 그렇다.

▲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사창리에서 춘천까지 1시간, 동서울까지 1시간 40분가량 소요된다. 양구읍에서는 춘천까지 55분, 동서울까지 2시간 남짓 걸린다. 외출⋅외박을 나간 군인들에게 연락할 수단이 전보와 공중전화밖에 없던 시절 위수지역 제한은 장병들의 신속한 복귀를 위해 불가피했지만, 휴대폰 등으로 실시간 연락이 되고 교통이 발달한 지금은 위수지역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 단비뉴스

ㄴ상병은 “우리 병사들에게 위수지역은 족쇄나 마찬가지”라며 “외출 외박을 나와도 위수지역 안에 묶여 있으니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출⋅외박을 나와도 시간 보낼 곳이 PC방, 노래방, 모텔 등이 고작이다. 양구에서 복무하고 제대한 ㄷ씨는 “위수지역에 갇혀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고립감과 답답함으로 폭발해 버릴 것 같을 때가 많았다”며 “병사들이 외출⋅외박 나오면 술만 마시는 것은 다 그 때문”이라고 했다. 군 복무만도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인데, 모처럼 나오는 외출⋅외박까지 이렇게 묶어 둬 2중, 3중의 희생을 강요당한다는 것이다.

면회 온 부모 “하루 60만원 든다”

병사들만 잡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부모님이나 친구 친척들도 위수지역에 묶여 겪는 불편이 작지 않다. 아들이 강원도 양구에 있는 부대에 복무중인 ㅇ씨는 “아들 면회를 가서 하룻밤 같이 지내고 오면 60만원 정도가 든다”고 말했다. 지방인데도 서울과 별 차이가 없는 물가 때문에 위수지역 안에서 식사하고 자고 오면 적지 않은 경비가 든다는 것이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부대에 아들이 복무중인 ㅈ씨는 “한 시간이면 아들 데리고 서울 나가 집에서 따뜻한 밥 해 먹여 재워 보낼 수 있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휴전선 일대를 비롯한 전방부대에 근무하는 모든 병사가 시대에 맞지 않는 위수지역이란 족쇄에 발이 묶여 이동권 제한이라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

국방부는 군 적폐청산위원회가 병사의 이동권 제한이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불합리한 제도’라며 ‘외출⋅외박 구역 제한’을 폐지하라고 권고하자 2월 21일 위수지역 폐지를 발표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위수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폐지’에서 ‘폐지 검토’로 물러섰다가 3월 7일에는 ‘폐지안 보완’으로 더 후퇴했다. 3월 12일에는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만난 뒤 “위수지역 문제는 현행 유지로 결론 날 것”이라고 말하면서 ‘폐지’는 없던 일로 되는 분위기다.

국방부의 방침 후퇴에 대한 반응을 들으려고 지난주 후반 양구시외버스터미널을 찾아가 병사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하나같이 ‘죄송하다’며 자리를 피했다. 한 부대 간부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자 ‘군인복무규율 제18조 정치 행위 금지조항에 따라 인터뷰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간부는 자신과 통화한 사실도 없는 거로 해달라고 했다. 위수지역에 묶어 둔 병사들에게 위수지역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말라는 함구령이라도 내린 듯한 분위기였다. 이처럼 부대 안은 물론 위수지역에 나와 있는 현역병들의 입은 원천봉쇄돼 있어, 휴가 나온 현역장병들과 최근 전역한 예비역 장병들에게 위수지역 문제점을 들었다.

▲ 국방부의 위수지역 폐지안 보완 방침에 관한 병사들 반응을 듣기 위해 양구시외버스터미널을 찾았다.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대부분 병사들은 입을 닫고 자리를 피했다. ⓒ 유선희

강원도 영월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이모(25)씨는 “장병 외출⋅외박구역 제한이 생긴 유래와 목적을 알고 보면 이 조처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위수지역’이란 원래 ‘군부대가 담당하는 작전지역 또는 관할지역’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병사가 외출⋅외박 때 벗어나면 안 되는 지리적 범위로 인식된다. 6.25 전쟁 발발 당일 외출⋅외박 장병들의 즉각 복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초기 대응에 실패한 이후 그런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수지역엔 병사만 남고, 일부 간부는 ‘점프’도

이씨는 “위수지역은 과거 통신이 원활치 않고 교통이 불편한 시절 유사시 신속한 복귀를 위해 부대에서 한 두 시간 거리 이내로 외출⋅외박 지역을 제한한 것으로 안다”며 “실시간으로 연락이 되고 전국 어디서나 하루 안에 부대 복귀가 가능해진 지금도 병사들을 부대 근처에 잡아 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장병들이 위수지역에 발이 묶여 있는데도 일부 간부들은 위수지역 밖으로 나가는, 이른바 ‘점프’를 하는 경우도 있어 병사들은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화천에서 복무하고 제대한 김모(22)씨는 “어떤 간부는 위수지역을 이탈해 서울 홍대 앞에 놀러 갔던 이야기를 공공연히 자랑 삼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 위수지역에 묶여 더는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병사들이 양구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에 몰려있다. ⓒ 유선희

병사들 발 묶은 위수지역 '바가지요금'에 '불친절'

부대 주변까지로 묶인 위수지역은 바가지요금과 불친절로 병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는 부대의 장병들은 위수지역의 상업지구까지 나오는 교통비가 만만치 않고 그마저 바가지를 쓰는 때가 많다.

강원도 삼척에서 복무중인 ㄹ상병은 “부대에서 시내까지 30~40분 걸리는데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콜밴을 많이 이용한다”며 “한번은 합승을 강요당하고 2만원 요금을 일인당 1만5천원씩 모두 3만원을 받아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양구에서 복무한 ㅁ씨는 “부대 앞에서 양구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나가는데 미터기에 2만3000원이 찍히더라”며 “그 요금이 나올 거리가 아닌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 주고 내렸다”고 했다.

화천에서 복무중인 ㅂ상병은 외출·외박을 나온 군인들이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PC방 요금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위수지역인 화천 사내면 사창리의 PC방 요금은 한 시간에 1700원인데, 주말엔 1800원”이라며 “가격도 터무니없지만 주말이면 장병들이 사창리로 쏟아져 나와 자리도 없다”고 했다.

▲ 외출⋅외박 구역 제한으로 발이 묶인 병사들은 대부분 시간을 PC방, 노래방 등에서 보낼 수 밖에 없다. ⓒ 유선희

ㅂ상병은 군인이라고 홀대하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겪어 보았다. 단골 펜션 주인한테 소개받아 어느 고깃집에 갔더니 고기도 좋고 서비스도 좋았다. 다음에 부대 동료들과 다시 방문하자 그 전보다 질이 떨어지는 고기를 주고 서비스도 별로였다. 주인에게 따져 묻자 그제서야 태도를 바꿔 질 좋은 고기로 바꿔주고 반찬도 더 내 온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ㅂ상병은 “군인용 고기와 일반인에게 주는 고기가 따로 있는 것 같더라”며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택시를 타면 퉁명스럽게 “어디로 가”하고 반말로 물어보는가 하면, 어떤 업소에서는 서비스 불만을 제기하는 병사의 멱살을 잡는 가게 주인도 있다는 말도 들린다.

위수지역에 묶여 있는 병사들을 오갈 데 없는 ‘먹잇감’ 정도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청춘을 바쳐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병사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위수지역에 묶여 불친절과 차별, 홀대 속에 인권 침해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안보공백 없다. 시대 뒤떨어진 위수지역 당장 해제해야”

군 장병들은 물론 외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위수지역 주민 대책은 별도로 세워 해결하고, 병사들을 부당하게 묶어 두는 위수지역은 하루빨리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김광진 전 의원은 "이제 더 이상 교통이 불편해 정해진 시간에 (외출⋅외박 장병들이) 복귀하지 못해 생기는 군사 공백은 없다는 게 위원회와 국방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병사들을 위수지역에 묶어 둘 이유가 없어진 만큼 장병들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조속히 위수지역을 해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부대운영방침에 따라 휴가와 외출·외박 인원을 조정하고 있어 군사적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만큼, 병사들을 부대 주변에 잡아 두는 것을 즉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편집 :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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