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택배가 왔다. 박스를 놓고 가는 소리다. 문을 열어보니 물건만 있고 사람은 없다. 그 정체를 본 적이 없어서 이런 상상도 했다. '정말 사람이 맞을까?' 내 손에 생명 없는 물건이 오기까지, 대체 어떤 이의 산 노동(living labor)이 투입됐을까? 마르크스는 자본을 두고 '죽은 노동'이며, 마치 뱀파이어처럼 '산 노동'의 피를 빨면서 산다고 말했다.택배 노동자가 지탱하는 '신속배송'은 비대면 소비 시대의 지출과 소유 욕구에 더욱 빨리 불을 당긴다. 빨리 쓰고, 빨리 사게 한다. 수익을 낳는 최적의 체계다. 이커머스
“우리는 지금 일하는 장소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비대면(언택트, untact) 업무를 이야기하는 내레이션이다. 한 통신사 광고에는 집에서 누워있거나 아이를 돌보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통화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화상 회의도 부담스러워 단체 통화로 업무를 본다. 코로나19로 노동 공간만 바뀐 게 아니다. ‘언택트 노동’을 신속히 적용한 IT기업 직원들은, 언제 어디서든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으로 일하게 됐다. 이런 기술로 벌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 상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도 못 하고 가게로 나온다. 그
코로나19 사태 속 ‘사회적 거리두기’는 연대 행동이다. 나와 이웃 모두가, 오직 생존을 위해 실천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바로 ‘나부터’다. 남에게 위생수칙을 지키라고 하기 전에, 나부터 마스크를 써야 한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건, 합의에 따른 자발적 행동에서 시작된다. 평화공존을 내세운 남북관계는 어떨까? 함께 살자는 말만 같을 뿐, 각자 행동은 달랐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갔지만, 한 발 들인 데 그쳤다. 정상 간 물리적 거리는 좁혔을지 몰라도,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멀다. 그러면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애
“기숙사는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산사태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가 우려되는 곳, 다습하거나 침수 위험이 있는 곳을 피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 근무시간이 다른 근무 조 간에는 침실을 분리해야 한다. 방의 크기는 1인당 2.5제곱미터(㎡) 이상이어야 하고, 한 방에는 15명을 초과해 거주할 수 없다. 화장실과 세면‧목욕시설, 냉난방 시설, 채광과 환기를 위한 시설, 화재예방 시설은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침실, 화장실, 욕실에는 잠금장치가 필수다.”외국인고용법 시행령에 따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한 ‘외국인 기숙사 시설표’의 내용이
대형 마트 프라이팬 매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저렴한 행사상품 때문이다. “진짜 싸다” “코팅 좋아 보여” 몇 마디가 오간 뒤 다른 제품과 비교해보지도 않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들에게 신중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PFOA free’ ‘과불화화합물 미검출’ 같은 표현이 광고에 담겼는지 확인해야 한다.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워 ‘과불화옥탄산(PFOA, 또는 C-8)’이 우리 일상에 침투하고 있다. 인류와 지구의 안녕을 해치는 독성물질이다. 이를 물리치기 위한 전쟁에 뛰어든 사람이 미국 태프트 로펌 변호사 롭 빌럿이다. 열망이 모여
논두렁길 끝에 환한 얼굴이 피어있다. 두 팔을 힘껏 흔드는 게 꼭 바람에 너풀거리는 나무 같다. 동그란 안경과 눈매처럼 마음씨도 둥글둥글한 청년일까? “여까지 오느라 고생하셨니데이.” 농촌에 산다는 건, 어렵고 즐거운 도전“도시에 살 때는 가스가 끊긴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여기서는 밥해 먹으려면 전화해서 LPG 가스통 배달을 시켜야 해요. 따뜻하게 자려면 기름값도 진짜 장난 아니더라고요.”경북 상주시 이안면 아천1리, 지금은 폐교가 된 은척중학교 아산분교. 이곳에 서른 살 주슬기 씨가
“밤에는 뭐 챙겨 먹으며 하는 거잖아.” 영화 <블랙머니>에서 검사는 단식농성을 벌이다 기력을 잃어가는 노조위원장에게 그런 핀잔을 준다. 이 영화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관객은 부패한 ‘모피아’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동맹’에 분노한다. ‘정경유착’은 당연히 비난받을 문제이지만 관객의 분노가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거리에 천막 치고 목소리 높이는 노동자들을 경원시해왔다. 거대권력에 맞서보겠다고 최후 수단으로 호소하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흘겨보는 시선들이 그들에게는 더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문학으로 인연 맺은 ‘자발적 극빈자’“이분은 ‘자발적 극빈자’예요. 마지막 돌아가시던 2000년대쯤 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작가가 돼요. 1년 인세가 1억씩 들어와요. 그래도 이 사람은 여전히 코딱지 만한 집에 살았어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인 김용락 시인은 평생 독거노인으로 가난하게 살다 간 동화작가 권정생을 추억하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을 시작했다. 김 시인은 2007년 5월 17일 권정생 선생이 숨을 거둘 때 곁에서 임종을 지켜봤다. 그가 안동공고 영어교사로 일하던 때다. 권 선
영하 4.3도까지 내려간 수은주에 외투깃을 꽁꽁 여며야 했던 지난 10일, 기자·프로듀서(PD)·아나운서 등을 지망하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50여명이 충북 제천시 신월동 세명대 문화관에 속속 도착했다. 이 대학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제20기 예비언론인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에서 모인 것이다.“우리 언론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기레기’라는 말까지 나도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의롭고 실력 있는 언론인이 부족한 탓도 크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현업에 들어가서 판을 바꿔주길 바랍니다.”정의롭고 실력
TV광고에도 나오던 은행이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중학생 때였다. 뉴스에서 연일 ‘론스타’를 언급했다. 외환은행이 외국에 팔린다는 정도만 알았을 뿐, 내막은 몰랐다. 정지영 감독 영화 <블랙머니>를 보고 나서야 10년 넘게 지난 사건의 구조를 이해했다. 그때 우리는 왜 외환은행 매각 과정이 합법적으로 이뤄지는지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을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실화 모티브 영화는 보통 이런 자막으로 시작한다.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려면 실제 사건을
영화 <위대한 쇼맨> 속 주인공 ‘바넘’은 가난한 양복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고객이던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데, 바넘은 늘 열등감과 동시에 오기를 품었다. 공연을 향한 열망을 품고 여러 사업을 시도한다. 훗날 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대부가 된다. 하지만 야망이 컸던 남자는 때로 가족을 저버렸다. 그토록 공연 판을 벌이며 돈을 거둬들인 건, 결국 ‘가족’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내 부모님이 부부로서 연을 맺으려 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들은 적 있다. 영화 속 서사와 비슷하다. 당시를 상상해보
‘왜 남자들만 했을까?’ 돌로 만들어진 반지하 빙실(氷室)에서 생각했다. 초등학생 때 안동댐으로 소풍을 가곤 했다. 댐 아래 민속촌에는 조선시대 냉장고인 ‘석빙고’가 있다. 보물 제305호 안동 석빙고는 원래 있던 예안면에서 지금 자리로 옮겨왔다. 댐을 지으면서 마을이 수몰된 탓이다. 옛날 남자들에게는 이곳으로 얼음을 옮겨오는 게 큰일이었다. 혹한에는 더욱 고역이어서 강변마을 남자들이 부역을 피하려고 잠시 도망가기도 했다. ‘석빙고 과부’라는 말까지 생겼다. 부부가 같이 일했다면 어땠을까? 누구 하나 두고 떠나는 일이 있었을까? 지
아버지는 딱 한 번 내 남동생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어릴 때, 동생이 내 아랫배를 발로 찬 적 있다. 부모님에게 피해사실을 상세히 일러바치자 아버지가 동생 뺨을 때렸고 나조차 당황했다. 잘못한 건 동생만이 아닌데, 나는 아무 잘못 없는 양 아버지에게 보호받은 게 미안했다. 한동안 동생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 둘 사이가 회복된 건, 내가 부모님에게 싸움의 전말을 제대로 설명하고 난 뒤였다. ‘오보’는 취재 대상을 향한 폭력이다. 그러나 제대로 책임지고 정정보도를 하는 한국 언론은 거의 없다. 무지막지한 언론 행태에 시민들
“얼마를 주면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까요?” 충남연구원 박경철 책임연구원이 지난여름 ‘농민기본소득제’에 관해 강연하면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곧 금액을 부르는 답들이 터져 나왔다, 마치 ‘입찰가’를 부르는 경매처럼.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이도 있었다. 강연이 끝난 뒤 그 학생이 말했다. “영화관이라도 있으면 몰라도…”영화관이면 충분할까? 실은 농민이 되는 것보다 농촌에서 잘 살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도시에는 흔한 생활편의시설이 농촌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농촌지역 생활인프라 보급
지난 10월 18일 오후 5시 서울 대학로 민송아트홀에서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주관으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초청 특강이 열렸습니다. 이날 강연은 ‘사법개혁과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됐습니다.편집 : 임세웅 기자
“<듣똑라> 시즌1은 2017년부터 시작했고 그때는 가욋일이었어요. 각자 출입처가 있고 하는 일이 있는데 기자들이 주말에 나와서 한 거예요. 본인이 좋아서 한 건데… 기사에 기자 이름 열이 다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게 아쉽기도 하고, 취재 현장 가서 봤을 때 분위기나 느낌이 있는데 기사에 다 담지 못하니까 그런 맥락을 팟캐스트로 녹음해보자 한 건데, 그게 이름이 알려지면서 올해 1월부터 정식 서비스됐습니다. 뉴스랩 콘텐트팀 기자가 돼서 이걸 제작하는 게 업무가 된 거예요. 저 포함 3명인데 다 10년 차 전후 기자이고, 정치부
“농업에 희망이 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전쟁에 승산이 있냐고 물으면, 장군은 이길 수 있는 전쟁에서만 싸우냐고 반문합니다. 농업도 희망을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농민을 ‘동지’로 여긴다는 농업연구사가 말했다.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안철근 경상남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는 새로운 씨앗을 만들고 거두며 하루를 연다. 반평생을 파프리카 연구에 매달려 국산 종자 ‘라온’을 키워냈다. 그는 “길고 지루한 연구 길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농민 덕분”이라며 “오늘도 동지와 길을 나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