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남북관계’

▲ 최유진 기자

코로나19 사태 속 ‘사회적 거리두기’는 연대 행동이다. 나와 이웃 모두가, 오직 생존을 위해 실천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바로 ‘나부터’다. 남에게 위생수칙을 지키라고 하기 전에, 나부터 마스크를 써야 한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건, 합의에 따른 자발적 행동에서 시작된다. 평화공존을 내세운 남북관계는 어떨까? 함께 살자는 말만 같을 뿐, 각자 행동은 달랐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갔지만, 한 발 들인 데 그쳤다. 정상 간 물리적 거리는 좁혔을지 몰라도,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멀다. 

그러면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애쓰면 될까? ‘섣부른 접근’은 남북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동북아 질서가 얽힌 남북관계를 풀어보겠다고 초기부터 밀어붙였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을 꾸리고,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도 했다. 이어 북미대화를 끌어냈고,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고자 힘썼다. 강대국들 견제가 들어오면, 그때마다 항변과 회유로 무마했다. 지난 2019년, 국민 둘 중 하나는 통일 대신 '평화공존'을 원한다고 답했다. 이런 응답 비율은 2016년부터 매년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는 ‘통일세’를 꺼냈고,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을 외쳤다. 국민은 북한과 거리를 두자고 고민하는데, 정부는 사회적 합의 없이 계속 북한에 밀착하려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그랬다. 북한과 통일에 관해 국민은 혼란스럽다. 그런데 남북 정상 간 스킨십을 보여주며, 국민을 열광시켰다. 곧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졌고, 어색한 퍼포먼스가 돼버렸다. 목표가 어그러지면 자기반성보다는 쉽게 남 탓을 하게 된다. 북한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와 비난 목소리는 되살아났다.  

북한은 어땠을까? 남한과 대등하게 소통하고 싶지만, 주변국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다. ‘정상 국가’로 나아가길 원하지만, 대북 제재에 묶여있다. 미국이 붙인 ‘테러지원국’ 꼬리표를, 미국에 떼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홀로 ‘깡패국가’에 맞서기엔 역부족이다. 이 와중에 남한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과시했다. 

남한은 분단 상황에서 초강대국과 끈끈한 군사동맹을 맺은 나라다. 마치 코로나 상황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잠재적 감염자로 느끼지는 않았을까? 북한 역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친서를 보내는 등 이중적 태도를 일삼았다. 미사일 발사는 미국과 남한에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수단일 수도 있지만 부작용도 커 보인다. 섣부른 접근을 계속하다가는, 남북이 적정거리를 두는 정상 국가로 마주할 수 없다. 국경만 닿은 채, 국교는 한참 멀어진 사이가 될 수도 있다. 

▲ 영화 <바그다드 카페> 속 야스민(왼쪽)과 브렌다(오른쪽)가 처음 마주하는 장면이다. 둘은 서로 거리를 두고 차츰 알아가면서 생존을 위해 연대하는데, 나중에는 포옹하며 다시 만난다. ⓒ 피터팬픽쳐스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는 상징적인 두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브렌다와 야스민이 처음 만날 때와 다시 만날 때다. 멀찌감치서 처음 마주한 두 여성은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체형도, 피부색도 다르다. 실상 이들은 남편을 떠나 보낸, 같은 처지였다. 브렌다는 뒤늦게 자기 카페에 야스민을 들였다. 각자 생활 속에서 서로 탐색하다가 마음을 연 것이다. 

둘은 다시 만날 때 부둥켜안는다. 연대를 통해 생존하면서 자기 삶을 지속한다. 야스민이 청혼을 받고 “브렌다와 상의할게요”라고 말하며 영화는 끝난다. 섣불리 상대의 삶에 끼어들지 않고, 스스로 다가오도록 기다린다. 둘 사이에는 거짓과 위선이라는 장애물이 없다. 포옹한 두 사람이, 다시 멀어지며 걸어갈 각자 길을 떠올려본다. 언제든 재회하리라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 그게 진정한 ‘연대’를 향한 길이 아닐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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