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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상처를 드러내라
[TV를 보니]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드러낸 한국사회
2014년 09월 30일 (화) 17:36:05 남건우 기자 koenwoo@gmail.com

조금은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제목의 드라마였다. 지난 11일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드라마의 여운은 깊게 남았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정신병’은 숨겨야 하는 질병이었다. 단순한 우울증조차 백안시하는 문화적 배경 속에서 ‘정신병’을 정면으로 다룬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 해수는 어릴 때 엄마의 불륜을 목격한 뒤로 불안장애와 관계기피증을 앓고 있다. ⓒ SBS 화면 갈무리

우울증 걸린 사회

정신과 전문의 지해수(공효진 분)는 자신이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가 정신병을 앓는 설정은 우리 모두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회현실을 대변한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수준이 된 지 벌써 10년째다. ‘2014 OECD 건강지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에선 인구 10만 명당 29.1명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 34개 회원국 평균 12.1명보다 17명이나 많고, 2위인 헝가리보다도 7명이 많다. 지난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3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더욱 암울해진다. 지난해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1만4427명으로 2008년보다 1,569명(12.2%) 증가했다. 하루 평균 4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총 1,282건의 자살 사례 중 우울증, 심리불안등 정신질환이 41.4%나 차지했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약 80%는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지금 한국사회는 우울증에 걸려있다.

이성복 시인은 ‘그 날’에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채 궁핍하고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을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해낸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중략)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 아무도 그날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인은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모두 병들었지만 아무도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비극적인 불감증을 지적해냈다. 정신적으로 모두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아프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나 지금 아프다’고 대신 말해 주고, ‘넌 아프지 않느냐’고 대신 물어 준 <괜찮아, 사랑이야>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다. 

갑∙을로 인간관계가 규정된 사회

드라마에서 지해수, 조동민(성동일 분), 박수광(이광수 분)은 세입자임에도 집 주인 장재열(조인성 분)을 대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동민은 거꾸로 재열을 혼내고, 수광은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재열에게 드러낸다. 해수 역시 재열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재열 또한 이들을 대할 때 집주인으로서 위세를 부리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재열이 이들을 집에서 나가달라고 말했을 때도 오히려 당당한 건 해수, 동민, 수광이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드라마 속 판타지일 뿐이다. 특히 현재 세입자인 시청자들에겐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세상이다. ‘을’인 세입자가 ‘갑’인 집주인을 함부로 대하다니. 이미 현실에서 ‘있는 자, 강자인 갑’과 ‘없는 자, 약자인 을’로 인간관계가 규정된 지 오래다. ‘약자인 을’끼리 미워해 ‘갑’을 이롭게 하고 있다는 칼럼까지 나오는 오늘이다. 사람끼리의 ‘신뢰’는 돈과 직결돼 있고, ‘진심’조차 금액의 과소로 평가받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는 동네, 차와 옷의 상표, 소득수준은 인간관계를 결정하는 상징적 아이콘이 되었다.

   
▲ 드라마 속 재열의 집은 현실의 갑∙을관계로부터 자유롭다. ⓒ SBS 화면 갈무리

그렇다면 다시 보자. 드라마 속 ‘갑∙을 관계를 벗어난 인간관계’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장재열의 ‘그 집’에서 이들은 싸우기도 하고 보듬어 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점점 이해해 간다. 재열과 이들이 집주인인 ‘갑’과 세입자인 ‘을’로 대했다면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인간관계가 가능했을까. 아니다. ‘신뢰’와 ‘진심’은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대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경제논리가 인간관계까지 깊숙이 개입한 한국사회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재열의 ‘그 집’은 작가와 감독이 바라는 이상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거기에 열광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다. 

솔직해질 수 없는 사회

<괜찮아, 사랑이야>가 드러내고자 하는 관점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때로는 감상적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서로의 마음속 상처를 환한 대낮에 술도 마시지 않은 채 들춰낸다. 누가 듣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다. 서로가 상처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음속 상처를 감추기 급급해 하는 우리에게 이들의 ‘솔직함’이 오히려 낯설 정도다.

   
▲ 서로의 마음속 상처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솔직함'이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 SBS 화면 갈무리

한국사회에선 솔직해지기 힘들다. 나를 드러내는 것은 곧 타인에게 규정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저변에는 뿌리 깊은 선입견이 자리한다. 명문대 출신은 무조건 ‘더 나은 사람’으로 포장되고 정치성향은 출신 지역으로 결정된다. 개인은 고향, 출신 대학, 소득수준, 직업 등에 따라 규격화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실제적인 가치관이나 감정은 처음부터 배제된다. 우울증도 그렇다. 우울증을 겪는다고 말하는 순간 ‘정신병자’ 혹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버린다.

예민한 정치현안 문제인 경우 개인이 솔직해지는 건 더욱 어려워진다. 대학 입시에 목매는 경쟁 위주의 교육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자는 데 모두 공감하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학교’는 ‘좌파스쿨’로 매도된다.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을 통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명확히 드러났지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종북 세력’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발전에 끼친 공을 인정하는 순간 ‘수구꼴통’이 된다. 개인의 의견은 정치논리에 따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구분 지어져 버린다. 심지어 한쪽의 진영으로부터 모든 의견에 동조하길 강요받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상호 간의 대화조차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이 아닌 편 가르기 싸움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상처를 드러내야 치료할 수 있다

허리가 아프면 병원에 간다. 눈이 아파도 병원에 간다. 다른 신체 부위가 아파도 마찬가지다. 아프면 병원에 간다. 병원에 가면 상처를 의사에게 보여준다. 아픈 곳을 보여주지 않으면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드러내야 치료할 수 있다. 상처를 보아야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공감으로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고 사랑이 싹튼다. 상처를 드러내야 치유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아픈 마음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감정도 철저히 숨긴다. 한국에서 우울 증상을 경험한 사람 중에 병원(정신과)에서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사람은 10명 중 1명뿐이다. 병원에 간다고 우울증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마음속 상처를 먼저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치유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는 개인을 넘어 가정의, 사회의, 국가의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재열이 자신의 마음속 상처를 상징하는 강우의 상처난 발을 씻겨준 뒤, 해수로부터 받은 신발을 강우의 발에 신겨주고 있다. ⓒ SBS 화면 갈무리

다시 드라마의 한 장면. 해수가 준 신발을 재열은 자신의 환시(실제로 존재하지 아니한 것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환각 현상)인 강우(디오 분)의 발에 신겨준다. 강우의 상처 난 발은 재열의 어린 시절 마음속 상처를 의미한다. 그 상처를 사랑하는 연인이 준 신발로 감싼다. 그렇다. 마음의 병은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다. 사랑의 시작은 자신을 드러내고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시작된다.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괜찮다.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 다가오는 것은 더 큰 고통이 아닌 사랑일 테니까.


[남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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