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만년양식집', 개인적 절망에서 출발해 사회적 연대로 향하는 정신적 여행기

역사적 고통에 감응하는 개인

저널리즘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신문을 읽는 게 두려워서 신문을 멀리하게 된다. 나에게 신문을 읽는 행위는 큰 고통을 수반하는데, 이는 내가 타인의 고통에 쉽게 그리고 크게 감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둔하고 특별한 재능도 없는 내가 지닌, 유일하게 남들보다 발달한 능력이 공감 능력이다. 펼쳐진 신문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의 절규를 견뎌내지 못하고 나는 자주 신문을 덮어버리고 만다. 헤밍웨이식 하드보일드 문체의 기사를 읽고도 감정이 크게 움직이는데, 그러한 마음의 동요가 너무 괴롭기 때문에 신문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공감 능력이, 신의 선물보다는 신의 형벌이라는 사실을 통감하게 되는 시기가, 나의 길지 않은 생애에 이따금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몇 달 그리고 작년 10월 29일 이후의 몇 달이 그런 시기였다. 밤에 숙면을 취하는 게 어려웠다.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 날이 많았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마음의 통증을 느꼈다. 슬펐다. 분노했다. 원통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에 대해 시니컬해졌고,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사바세계에서 또는 속(俗)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고등학생 시절 가톨릭 사제가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이러한 세상을 향한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태도는 10.29 참사를 거치며 더욱 강해졌다.

학창 시절, 어느 선생님께서 내게 유달리 예민한 감성을 지녔기 때문에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민감한 감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셨다. 잊고 있던 선생님의 말씀이 최근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양식집’을 읽는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이 책은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역사적 사건을 대면한 노작가의 섬세한 감성을 드러내고 문인으로서의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력한 개인을 압도하는 거대한 사건이 개인의 마음과 삶에 미치는 영향을 세심하게 보여주는 이 책을 공감하고 감탄하며 읽었다.

‘만년양식집’에서 화자 조코 코기토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성물질로 인해 오염된 땅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복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노인의 울음소리”를 내며 운다. 인생의 만년에 일어났던 참사는 노작가인 조코를 절망하게 했다. 17살의 나는 단원고 연극부 학생들의 단체 채팅방을 캡처한 사진을 보고는 집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일어났던 참사는 나를 절망하게 했다.

오에 겐자부로가 그리운 오늘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

‘허클베리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올해 전 세계 문학계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은 오에 겐자부로(1935~2023)의 타계가 아니었을까. 3월 3일, 88세의 소설가는 세상을 떠났다. 1968년,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26년 만인 1994년에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인으로서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일본의 왕이었던 아키히토는 그에게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수상하려고 했다. 오에는 훈장을 거부했다. 민주주의자였던 그는, 주권자 위에서 군림하는 왕실의 권위와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진보적인 문인이자 열성적인 사회운동가였던 그의 문화훈장 거부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세상에는 자신의 영광과 명예보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상을 당당하게 거부한다. 비틀스의 존 레논이 그랬고, 장 폴 사르트르가 그랬다. 1965년 10월 비틀스는 대영제국훈장(MBE)을 받았다. 대중가수로서는 최초의 수훈이었다. 존 레논은 훈장을 반납하며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훈장 반납의 이유를 적은 서한을 보냈다. 그는 그 서한에서 영국이 나이지리아-비아프라 내전에 개입한 것과 영국이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을 지원하는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훈장을 반납한다고 밝혔다. 1971년 그가 발표한 노래 “Imagine”이 잘 보여주듯이, 그는 비틀스 이후의 삶 동안 반전과 평화를 널리 알리는 사회운동가로서 살았다. 존 레논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대영제국훈장과 맞바꿨다. 프랑스의 문인 장 폴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최초의 인물인 그는 수상을 거부한 사적 이유와 공적 이유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공적 이유는 노벨문학상이 서구의 문인을 편파적으로 우대하며 자신이 그 사례를 추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문예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인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소극적인 이유로 중간 계급의 부재를 들었다. 서구와 달리 중간 계급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 저항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과가 현대 일본의 ‘나약한 개인’이라는 것이 고진의 진단이다. 그는 정치적 소극성이 현대 일본을 전제국가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문화가 없는 일본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끊임없이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 사회적 저항을 하는 사람이 지극히 적은 일본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저항했다.

그는 등단 직후부터 적극적으로 정치적·사회적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장편인 ‘만엔원년의 풋볼’(1967)은 국가폭력을 비판한 작품이다. 그는 초기작인 논픽션 ‘히로시마 노트’(1965)와 ‘오키나와 노트’(1970)로 인해서 소송전에 시달리기도 했다. 반핵,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그 저작들에 일본 극우 세력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좌우명은 “좋아. 그러면 내가 지옥에 갈게”였다.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 ‘허클베리핀의 모험’(1884)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설에서 헉(허클베리 핀)은 왓슨 아줌마의 집에서 탈출한 도망 노예 짐을 밀고하지 않기로 결심하며 그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이타적인 태도. 일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아름다운 다짐. 오에의 삶은 과연 그의 좌우명의 현현(顯現)이었다.

지난 8월 24일, 일본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지난달 20일 3차 방류까지 2만 3,400여 톤에 이르는 오염수가 해양으로 방류되었다. 지난 18일, 교도통신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도쿄전력이 오염수 4차 방류를 내년 2월 하순에 시작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학기, 함께 시사를 공부하는 대학원 수업에서 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의 발제를 맡았다. 발제를 준비하는 내내 나는 오에가 살아있었다면, 그는 무슨 말을 했을지 상상했다.

경험이 고통을 낳고, 고통은 성찰을 낳고, 성찰은 실천을 낳으니라

작은 아이들에게 노인은 답변하고 싶다

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만년양식집’, 오에 겐자부로

2015년, 오에는 평화 운동에 전념하겠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이후 202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신간을 출간하지 않고 사회 운동에만 몰두했다. 2013년 출간된, 오에의 마지막 작품인 ‘만년양식집’은 지난 7월에 우리나라에서 번역·출간되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양식집 표지. 출처 문학동네 홈페이지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양식집 표지. 출처 문학동네 홈페이지

‘만년양식집’은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노작가 조코 코기토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세상에서 자신의 인생과 작품들을 회고하고 성찰한다.’ 조코 코기토는 오에 겐자부로의 페르소나다. 그의 생과 문학의 궤적은 오에의 그것과 크게 겹친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또는 ‘3·11 이후’ 슬퍼하고 절망하는 조코. 조코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로 인해 불가역적으로 오염된 땅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회복될 수 없으며, 인간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 때문에 비통하고 낙담한 심정을 토로한다. 비애에 빠진 그에게 미국에 사는 지인의 아들인 ‘기 주니어’가 일본을 찾는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조코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회상한다. 그들이 인생 말미에 어떠한 방식으로 “마지막 정리”를 했는지 생각한다. 조코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은 어떻게 “마지막 정리”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인터뷰가 촉발한 회상과 회상이 촉발한 자기성찰은 조코의 삶을 바꾼다. 정신적 변화가 삶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조코는 세상에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화해 간다. 그의 “마지막 정리”는 후대를 위해 더 훌륭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소설 말미에 조코는 도쿄에서 열리는 반원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향한다. 3·11 이후 무기력하게 일본 사회를 관망하던 그였다. 절망으로 흠뻑 젖은 마음이, 인생의 성찰이라는 햇빛을 받아 보송보송하게 마른 것이다. 그는 집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현실을 응시하고 현실과 대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은 언제나 부조리하고 우리의 현실에 대한 기대는 자주 배반되기 때문이다.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일이다. 집회에서 가장 앞줄에 선 조코는 힘들어한다. 집회 현장의 유세차 스피커 음향은 청각이 민감한 그를 두 시간 동안 괴롭힌다.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집회에서 낙오하지 않는다. 집회 이후 한동안 이명에 시달리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결국 이 소설은 참사를 경험하고 절망했던 노작가가 자신의 인생과 작품을 반성적으로 회고하며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문유관(四門遊觀). 고타마 싯다르타는 카필라 왕국의 왕자였다.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한 부친 숫도다나 대왕의 총애를 받으며 왕자는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스무 살 생일에 왕자는 궁전 밖으로 외출한다. 궁 밖에서 그가 목도한 것은 노인과 병자와 죽은 사람이었다. 이 고사가 사문유관이다. 태어나서 처음 노화, 병과 죽음을 보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깨달은 왕자는 오랜 고민을 시작한다. 고민을 이어가던 그는 결국 스물아홉 살에 야소다라 왕자비와 갓 태어난 아들이 있는 왕궁을 떠난다. 출가한 왕자는 쿠시나가르의 사라쌍수 숲에서 열반에 이른다. 그 왕자가 바로 부처다. 조코에게 동일본대지진은 사문유관의 각성을 하게 된 계기였다.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서 환경이 파괴된 현실은 그에게 지극히 강한 정신적 충격을 가한다. 번뇌하던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성찰한다. 성찰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는 집을 나와 반원전 집회에 참여한다. 경험이 성찰을 낳고, 성찰이 실천을 낳은 것이다.

오래전, 미국의 작가 필립 로스의 인터뷰를 읽다가 아주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발견했는데, 나는 그 구절을 지금까지 외우고 있다. 그 구절을 번역해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는 자서전을 썼는데, 세상 사람들은 소설이라고 한다. 나는 소설을 썼는데, 세상 사람들은 자서전이라고 한다. 나는 어리석고 세상 사람들은 현명하니, 그들이 판단하게 하라.’ 소설가의 생애사적인 체험과 그러한 체험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사상이 소설에 투영되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지적한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소설을 읽을 만큼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소설을 최대한으로 향유할 수 있는 방안 하나를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소설을 읽기 전에 소설가의 생애를 공부하는 것이다. 이후 소설을 읽으면, 저자의 배경과 경험이 얼마나 많이 소설에 반영되는지 깨닫고 놀란다. 그러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도 소설 읽기의 큰 재미다.

자전적 소설로서의 색채가 강한 ‘만년양식집’에는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과 가치가 짙게 배어있다. 조코 코기토는 도쿄대학교 출신이다. 조코의 아들 아카리는 지적 장애를 지녔다. 노작가 조코는 몸소 원전 반대 집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 네 가지 설정만 살펴보더라도, 이 책에 얼마나 오에의 인생이 녹아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도쿄대학교 불문학과 출신인 오에의 장남 히카리는 지적 장애를 지녔다. 오에는 평생 반핵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지난 삶 동안 나는 절망만 했다. 눈 똑바로 뜨고 현실을 바라보는 일이 괴로워서 자꾸만 영화로, 소설로 피신했다. TV 뉴스를 보는 대신 이마무라 쇼헤이를 보고, 신문을 읽는 대신 제임스 조이스를 읽었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경험하는 감정과 생각의 변화는,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안전했다. 실제의 고통과 무관하기에. 영화와 소설은 내게, 마치 안전을 확신한 채 공포를 즐기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나는 세상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 세상과 교섭하지도 않았다. 세상은 희망이 없는 곳이라며 세상으로부터 도망했다. ‘만년양식집’에서 오에는 나에게 말한다. 절망해도 괜찮다. 그러나 절망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희망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절망적인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조코 코기토처럼. 오에 겐자부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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