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23 대한민국 식량안보 심포지엄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가 자국 우선주의, 자원 민족주의를 촉발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대두 등의 비축량을 늘리고 있고, 세계 최대 쌀 수출국 인도도 7월 말부터 일부 쌀 품목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 양대 식량대국의 수출 규제가 지속되면 세계 식량위기가 심화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지난 22일 서울시 서초구 강남대로 에이티(aT)센터 5층 그랜드홀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식량안보 심포지엄’에서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이렇게 말했다. 반 전 총장은 ‘기후변화와 다가오는 식량위기’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서 “세계적 분쟁보다 식량위기에 더 본질적인 문제는 기후”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가 농사를 좌우한다”며 “인류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해도 기후위기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식량 부족 때문에 생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이 공동주최하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이 후원한 이 행사에는 150여 명이 참여했다.

경제력이 있어도 식량안보 지키기 어려운 시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기후변화와 다가오는 식량위기’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기후변화와 다가오는 식량위기’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반 전 총장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제적 노력이 미흡하다고 걱정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 의장이 “화석연료가 기후변화에 직접 기여했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발언한 것에 관해 그는 “미친 사람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기후변화 대응에 어마어마하게 역행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에) 다시 나온다니까 걱정이 많다”며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탄소감축을 위해서는 정부가 앞장서야 하고, 정부가 안 하면 국민이 정부를 압박해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두봉 원장은 ‘신냉전시대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주제로 한 연설에서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식량과 유가의 변동성이 커지고 가격의 움직임이 동조화되는 현상이 강해졌으며 금융위기, 유가 변동, 팬데믹, 전쟁 등 복합적인 위기로 식량 시장이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선 다양화 등의 전략으로 2019년 세계식량안보지수 1위를 기록했던 싱가포르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불안정으로 2022년 식량안보지수 29위로 떨어진 사례를 소개했다. 한 원장은 “팬데믹 이전에는 식량을 구입할 능력이 있으면 식량안보를 지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경제력이 의미 없어진 것”이라며 식량안보 수준이 매우 낮은 한국의 분발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수혜국에서 원조국 된 한국, 해외 기술지원 나서야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력연락사무소 이나라 부소장은 “세계 식량 중 가장 많은 부분을 개발도상국 소농들이 생산하고 있는데, 기후위기로 나타나는 경지 면적 축소, 병해충 발생과 같은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나 재원은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 한국사무소 한석진 부소장은 “한국이 한때 (식량원조) 수혜국에서 현재 10위 안에 드는 원조국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귀감이 된다”며 해외 식량기술 지원과 국내 식량안보 제고를 함께 추구하자고 제언했다.

종합토론을 하는 각계 전문가들. 왼쪽부터 임정빈 서울대 농업경제사회학부 교수, 한석진 유엔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 부소장, 이나라 유엔식량농업기구 한국협력연락사무소 부소장,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재단 명예이사장,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김지영 기자
종합토론을 하는 각계 전문가들. 왼쪽부터 임정빈 서울대 농업경제사회학부 교수, 한석진 유엔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 부소장, 이나라 유엔식량농업기구 한국협력연락사무소 부소장,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재단 명예이사장,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김지영 기자

한국정밀농업연구소 남재작 소장은 “지금까지 식량위기에 관한 논의가 식량 비축, 식량자급률 향상, 공급망 확보 등 담론적인 얘기에 치우쳐 있었다”며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농업 생산 통계 등) 기본적인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식량안보재단 이철호 명예이사장은 “한국은 기후변화나 국제 분쟁 등 위험 관리에 취약하고 식량위기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식량안보는 농식품부뿐만 아니라 통일부, 식약처, 환경부 등도 관여해야 하는 문제”라며 “국무총리 산하에 식량안보 부서를 만들어서 국가가 종합적으로 식량안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도 인도네시아 등에서 식량자원 확보 나서

제2부 개별 세션에서 포스코인터내셔널 공병선 상무는 국제 식량기업으로 성장하려는 자사의 노력을 소개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11년부터 인도네시아 농장에서 연 20만 톤(t)의 곡물을 생산하고, 2019년부터 우크라이나 곡물 터미널에서 연 250만t의 식량을 조달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 바이오 항공유(SAF)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팜유 정제소를 건설 중이라고 밝혔다. 공 상무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오는 2030년까지 연간 710만t의 곡물을 생산하고 거래하는 글로벌 메이저 식량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해외 식량 확보 방안 등에 관해 토론하는 전문가들. 왼쪽부터 순천대 이보균 교수, 미국곡물협회 한국사무소 김학수 대표, 포스코인터내셔널 공병선 상무, 인천대 김종인 교수,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광호 감사. 김지영 기자
해외 식량 확보 방안 등에 관해 토론하는 전문가들. 왼쪽부터 순천대 이보균 교수, 미국곡물협회 한국사무소 김학수 대표, 포스코인터내셔널 공병선 상무, 인천대 김종인 교수,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광호 감사. 김지영 기자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광호 감사는 ‘식량안보특별법의 필요성과 국회발의 내용’을 주제로 발표했다. 국회에 발의된 식량안보특별법은 남북통일을 대비해 쌀 120만t을 비축할 것,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감사는 에이디엠(ADM), 벙기(Bunge), 카길(Cargil), 루이드레퓌스(Louis Dreyfus) 등 4개 다국적기업이 세계 곡물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식량을 거래하는 국내 기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종인 인천대 교수는 이어진 토론에서 “진짜 문제는 (식량) 수입이 늘고 있고 주요 수입국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수출제한이 없다고 해도 작황 변화 등 수출국의 상황에 따라 수출량의 변동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해외농업·산림자원 개발협력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부분을 더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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