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94.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대응 강연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거치지 않은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누출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 대응 공개강연'에서 마츠쿠보 하지메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CNIC) 사무국장이 한 말이다. 그는 도쿄전력이 공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원자력자료정보실은 1975년 설립된 일본의 시민·전문가 단체로, 원전에 관한 정보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달하는 활동을 지향한다.
마츠쿠보 국장은 ‘알프스(ALPS) 처리 오염수에서 롯카쇼무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까지'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후쿠시마 원전에서 알프스로 처리한 오염수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방사성 물질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 주변 지하수와 제1 원전 전용 항구 바닷물의 방사성 물질을 측정한 수치가 이런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세슘-137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 전용 항만에서만 알프스 처리수의 2천 배 이상이 나온다"고 말했다. 세슘-137은 반감기(절반으로 줄어드는 기간)가 30년인 방사성 물질로, 인체에서 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마츠쿠보 국장은 또 요오드-131, 스트론튬-90 등의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면서 내뿜는 총 베타선의 경우 누출된 오염수에 알프스 처리수의 10만 배 이상이 들어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전력이 공개한 지하수 성분 분석 자료에 드러나
마츠쿠보 국장은 "도쿄전력이 (원자로) 건물 안에 고여있는 오염수는 주변 지하수보다 낮기 때문에 빠져나갈 일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도쿄전력에서 공개한 자료의 지하수 농도 수치를 보면 모순된다"고 말했다. '지하수 바이패스'(지하수 유입으로 오염수 발생이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를 통해 방사선량을 측정한 결과, 2015년 12월 한 지점에서 세슘-137은 0.5베크렐(Bq), 총 베타선은 리터당 550Bq이었으나 지난 6월에는 같은 지점에서 세슘-137이 5.9Bq, 총 베타선 2만 1000Bq로 측정됐다. 반감기가 있는 방사성 물질의 양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그는 "누출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다른 '서브드레인'(오염수 발생을 줄이기 위해 원전 주변 지하수를 퍼 올리는 우물)을 통해 측정한 방사선량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를 보여주며 "건물 어딘가에서 오염수가 새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사선량이 높은 데브리(녹아내린 핵연료 덩어리)가 원자로 건물 안에 있는 상태에서 물이 들어와 오염수가 되는데, 지하수에서 높은 수치의 방사선량이 측정된다는 것은 원자로 내부 오염수가 밖으로 빠져나와 지하수와 섞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어 나온 방사성 물질은 바다로 흘러가는데, 방사성 물질이 발견되는 곳은 지하수뿐만이 아니다. 도쿄전력은 2019년 바다 쪽에 세운 차수벽(동토벽)의 성능을 설명하는 자료를 내면서 '해양 측 차수벽의 투수성(물이 토양을 통과하는 정도)'을 고려한 물의 이동(량)을 추산한 결과는 '30톤(t)’이라고 밝혔다. 마츠쿠보 국장은 "지하수 말고도 하루 30t씩 오염수가 처리 되지 않은 채 바다로 흘러간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츠쿠보 국장은 또 후쿠시마 제1 원전 전용 항구의 방사선 수치가 높게 나타나는 것도 오염수 누출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전용 항구에 방사성 물질이 추가로 방출되지 않는다면 전용 항구의 방사선량과 외항의 방사선량이 일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의 전용 항구란 열교환을 거치고 난 냉각수(바닷물)를 내보내는 항구다. 그는 "여전히 전용 항구의 방사선 수치가 높은 상황"이라며 "(방사성 물질이) 새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전력이 내놓은 자료를 기반으로 원자력자료정보실이 추산한 결과 전용 항구에서 채취한 바닷물 속의 세슘-137 농도는 70억~96억Bq로, 알프스 처리 오염수(400만 Bq)와 2000배가량 차이가 난다.
50~100년 걸리는 폐로까지 지속적 방출 전망
마츠쿠보 국장은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규제 기준을 바꿔, 알프스 처리수만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본이 30~40년에 걸쳐 후쿠시마 폐로를 완수하기 위해 원전 부지를 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상관이 없다"며 "일본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제1 원전 폐로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데브리(녹아내린 핵연료 덩어리)인데 오염수를 방류해 공간을 확보한다고 해서 데브리를 꺼내는 어려움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1,2,3호기의 데브리는 총 880톤(t)에 달한다. 2020년 도쿄전력은 '880t 중 1그램(g)을 꺼내겠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마츠쿠보 국장은 "30년에서 40년에 걸쳐 폐로를 완수하겠다는 것은 현실적,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본 원자력학회는 50년에서 100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알프스로 처리한 오염수는 물론, ‘관리되지 않는 오염수’도 계속 누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의 방사성 물질은 더 강력한 위협
마츠쿠보 사무국장은 2024년 가동을 목표로 일본 아오모리현 가미키타군에 건설되고 있는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의 방사성 물질 배출 문제에 관해서도 경고했다. 도쿄전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롯카쇼무라 공장에서는 앞으로 액체 형태의 삼중수소가 연간 9700조Bq이 나올 전망이다. 마츠쿠보 국장은 “후쿠시마 제1 원전에 쌓인 삼중수소 총량이 800조Bq인 것을 생각하면 자릿수부터 차원이 다른 양”이라고 말했다.
1993년 공사를 시작한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은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분리해 내는 공장이다. 마츠쿠보 국장은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나온다"며 “삼중수소 외에도 요오드131, 요오드129, 크립톤85, 탄소14 등도 방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물질들은 인체에 들어오면 세포를 손상해 갑상선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도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및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롯카쇼무라에는 3천t의 사용후핵연료가 있는데, 외부 자극으로 인해 불이 나면 6470페타베크렐(PBq)에 달하는 세슘-137이 방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1페타베크렐(PBq)은 1000조베크렐(Bq)로, 롯카쇼무라에 불이 나면 세슘-137의 방출량이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방출된 세슘-137의 80배에 달할 것이라고 그는 추정했다. 강 전 위원장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는 전 세계 핵시설에서 방사성 폐기물을 큰 제약 없이 해양과 대기로 방출할 명분을 준다"며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에서 나올 방사성 물질의 해양투기와 대기방출 역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 전 위원장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와 비교할 목적으로 '중국이나 한국 등 각국의 원전에서도 삼중수소가 대량으로 해양 방출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반박했다. 그는 "통상적인 원전 가동으로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은 삼중수소와 방사성 요오드 등 소수의 방사성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많은 종류의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후쿠시마 핵 오염수와는 크게 다르다"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를 일반 원전에서의 삼중수소 방류와 비교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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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환경부, 시사현안팀 박정은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실,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집중해 진실에 다가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