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천연기념물 경남 ‘밀양 얼음골 사과’ 농가 현장 취재

4일부터 시작되는 ‘밀양 얼음골 사과 축제’가 생산량 피해로 인해 올해에는 축소 운영된다.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된 밀양 얼음골 사과는 경남 밀양시 안에서도 산내면에서만 집단으로 재배된다.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밀양 얼음골 사과 축제는 1998년부터 시작해 올해 25회를 맞는다. 하지만 이상기온과 잇따른 장마로 얼음골 사과 생산량이 절반 이상 줄었다. 지난해 축제의 사과 판매 부스는 25개였으나 올해는 9개 줄인 16개만 운영될 예정이다.

밀양시는 경남에서 과수 재배 면적이 거창군 다음으로 크다. 그것도 밀양시 산내면에서만 지난해 826헥타르(ha) 상당의 면적에서 사과를 재배했다. 농촌진흥청 자료를 보면 밀양시의 한 해 사과 생산량은 2019년 16,796톤(t), 2020년 24,340톤, 2021년 25,548톤으로 계속 늘었다. 지난해에도 특별히 생산량이 줄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250개 사과 맺던 나무 하나에 고작 50개 달려

하지만 올해 상황은 사뭇 다르다. 밀양 특산물인 얼음골 사과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축제에서 판매 부스를 크게 줄여야 할 만큼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 <단비뉴스>가 지난달 16일 산내면에서 만난 이성열 밀양얼음골사과발전협의회 회장은 직접 트럭을 운전해 마을 한 바퀴를 돌며 사과밭을 보여줬다. 산내면 봉의3길로 들어서자 눈에 보이는 모든 밭에는 사과나무가 있었다. 이 회장은 한 밭을 가리키며 제일 피해가 심한 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과가 제대로 달린 나무가 없었다. 이 회장은 사과들이 썩어버려 250개는 달려야 하는 나무에서 거의 수확할 게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위의 사과나무들에는 한 그루에 15~20개 정도만 사과가 매달려 있었다.

▲ 지난달 방문한 경남 밀양 사과 농가는 수확을 앞뒀지만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나경 기자
▲ 지난달 방문한 경남 밀양 사과 농가는 수확을 앞뒀지만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나경 기자

밀양 얼음골 사과 품종은 ‘동북7호’라고 불리는 부사 사과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종은 10월 말에 수확한다. 하지만 올해는 원래 전체 사과밭에서 생산할 수 있는 사과의 30~40%만을 수확할 만큼 흉작이다. 첫 번째 이유는 냉해다. 봄철 냉해가 심해 애초에 맺힌 열매가 얼마 되지 않았다. 봄철 이상 저온으로 한 가지에 5개는 피어야 할 꽃이 2~3개밖에 피지 못했다. 여기에 여름철의 긴 장마와 9월에 내린 큰비로 사과에 병이 들어버렸다. 이 회장은 “첫 꽃이 피는 게 (달기 때문에) 최고 좋은 사과다. 그런데 올해는 그거 못 달고 두 번째, 세 번째 꽃이 폈는데 그렇게 핀 꽃마저도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 이성열 밀양얼음골사과발전협의회 회장이 썩어서 판매할 수 없게 된 사과를 보여주고 있다. 전나경 기자
▲ 이성열 밀양얼음골사과발전협의회 회장이 썩어서 판매할 수 없게 된 사과를 보여주고 있다. 전나경 기자

농가와 다른 농가 사이의 길가 곳곳에도 썩은 사과들이 버려져 있었다. 사과를 재배하면서 체험 농원을 운영하는 박 모 씨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박 씨도 “수확한 사과 중에서도 안 예쁜 사과를 제하고 나면 백 개 중에서 사십 개 정도만 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 사과 축제는 시작되지만 이성열 회장은 고민이 많다. 사과 판매 부스가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축제에서 농가들이 ‘으뜸 사과’ 순위에 들기 위해 사과를 출품하는 농가들도 기존 4~50개에서 약 12개로 줄었기 때문이다. 내놓을 사과가 부족한 탓이다. 이 회장은 “그나마 얼음골 사과가 유명한데 이 축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며 걱정했다.

사과밭까지 손 뻗은 이상기후

밀양 얼음골 사과가 올해 최악의 흉작을 맞은 이유는 이례적인 날씨 때문이다. 개화 단계인 봄부터 수확 시기인 가을까지 사과에 취약한 이상기온이 밀양을 끊임없이 덮쳤다. 물론 밀양이 특히 심하기는 했지만 이곳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과를 재배하는 전국의 농가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피해를 봤다.

▲ 올해 사과와 배의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급감했고, 결국 출하 가격이 상승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홈페이지 누리집 갈무리
▲ 올해 사과와 배의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급감했고, 결국 출하 가격이 상승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홈페이지 누리집 갈무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서 매월 발간하는 ‘e-농업관측’ 과일 부문을 보면 10월 사과 생산량은 23.2%가 감소했다. 가격도 급등했다.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의 사과 월별 도매가격을 보면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거래된 홍로 사과의 경우 도매가격이 지난해 28,400원에서 75,445원으로 훌쩍 뛰었다. 한 대형마트 온라인몰에서 9월부터 순차 판매하기 시작한 밀양 얼음골 사과는 10kg당 64,000원에 판매됐다.

기후 변화로 인한 이례적인 날씨는 사과꽃이 피는 시점부터 영향을 미쳤다. 사과꽃이 개화할 때는 봄의 일교차 폭이 너무 커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따뜻한 날씨에 꽃이 폈다가 낮은 기온이 찾아오면 암술과 수술이 죽어서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 올해 봄철 평균 기온은 13.5°C로 50년 만에 가장 높았다. 기상청 ‘2023년 봄철 기후 분석 결과’ 보도자료 갈무리
▲ 올해 봄철 평균 기온은 13.5°C로 50년 만에 가장 높았다. 기상청 ‘2023년 봄철 기후 분석 결과’ 보도자료 갈무리

올해는 큰 일교차라는 사과의 악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한 해였다. 올해 봄은 50년 만에 역대 최고 기온을 찍었다. 기상청이 지난 6월 발표한 '2023년 봄철(3~5월) 기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봄 평균 기온은 13.5도(°C)로 평년에 비해 1.6도 높았다. 그래서 사과꽃은 평년보다 일찍 개화했다. 우리나라 전체 사과 가운데 약 60% 이상을 생산하는 경북도 마찬가지였다. 이동혁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소 소장은 "군위군의 사과 개화 시기가 4월 23일에서 25일 사이지만 올해는 4월 6일에 폈다"고 설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4월 갑작스레 한파가 찾아왔다. 사과꽃은 개화기에 -2.5~-1.7°C의 저온에 1~5시간 노출되면 피해가 발생한다. 밀양은 4월에도 -1.8°C를 기록했다. 군위와 같은 위도 선상에 있고 마찬가지로 유명 사과 생산지인 청송은 4월 최저 기온이 -3.1°C였다. 높은 기온에 맞춰 핀 꽃이 예상치 못한 봄 한파에 냉해를 입었다. 이 소장은 “새벽이 되면 차가운 날씨가 된다. 그러면 꽃이 피다가 차가운 기온 때문에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살아남아 열매가 된 사과들은 여러 차례 강한 비의 습격을 받았다. 5월 상순과 하순에 평균 231.8밀리미터(mm)의 많은 비가 내렸다. 여름철도 상황은 비슷했다. 전국 평균 강수량이 1018.5mm로 1973년 이래 세 번째로 강수량이 많았다. 개화 후 살아남은 꽃들이 열매를 맺었지만, 강수량이 증가하면서 열매에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농약으로 방제를 해도 버티지 못한 사과는 이미 곰팡이가 생겨 썩어버리기 시작했다. 탄저병이 퍼진 것이다. 계속 많은 비가 내리니 방제를 해도 탄저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과학계에서는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기상상태의 심각성에 주목하고 있다. 예상욱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기상상태가 극한으로 치닫는 것이 심각하다”며 특히 “변동성이 커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기온과 관련해 대척점에 있는 이상고온과 이상저온, 그리고 물과 관련해 대척점에 있는 가뭄과 집중호우가 예측 불가능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 교수는 “양극단에 있는 재해들이 많이, 그리고 점점 더 폭이 크게 발생해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사과 지키려면 기후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사과나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미생물이나 기생충 같은 병원체는 지금까지 약 41개로 확인됐다. 물론 병원체가 모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방제 방법마다 다르지만, 특정 환경에 자주 발생하는 것들이 있다. 1990년대에는 자주 발생하는 병원체가 약 12종이었지만 기후 변화가 계속되며 18종으로 늘었다. 기후 변화 탓에 병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 지난달 단비뉴스가 방문한 밀양 사과 농가에는 곳곳의 나무 아래에 이렇게 사과들이 떨어져 썩고 있었다. 전나경 기자
▲ 지난달 단비뉴스가 방문한 밀양 사과 농가에는 곳곳의 나무 아래에 이렇게 사과들이 떨어져 썩고 있었다. 전나경 기자

문제는 올해의 이상기온과 강수량 증가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이상기후가 언제 찾아올지 예측도 어렵다. 예상욱 교수는 "(이상기후 빈도가) 몇 퍼센트 증가할 것인가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의미가 없다. (이상기후 발생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과연구소 이동혁 소장은 “병이나 해충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늘 사과 주산지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다”며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가들은 방제를 아무리 하더라도 올해처럼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리는 경우는 손을 쓸 수 없다고 말한다.

큰 피해를 입었지만 보상이 마땅치 않아 농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는 농가도 적지 않다. 이례적인 생산량 감소를 겪었지만 탄저병 같은 병충해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농작물재해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냉해, 동해, 우박 등 자연재해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보상을 해준다. 밀양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박 씨는 “비도 우리에게는 천재지변인데 왜 비가 와서 병드는 건 보상해 주지 않느냐”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재해보험정책과 관계자는 보험 적용 범위에 대한 농가들의 불만도 알고 있다며 “일차적으로 자연재해가 원인이고, 그로 인한 피해가 확인됐을 때만 보상하는 것으로, 지금 당장은 병충해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앞으로 기상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병충해도 자연재해로 분류하고 보장을 하기 위한 기초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