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56 가톨릭기후행동 금요집회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 사거리. 영하 1도의 쌀쌀한 날씨 속에 두꺼운 외투로 무장한 중·노년 남녀 10여 명이 모여들었다. ‘화석연료 OUT(추방)’ ‘기후정의 지금 당장’ 등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든 이들은 143번째 한국가톨릭기후행동 금요기후집회에 참가한 신도들. 오전 11시 20분쯤 이들은 집회 운영위원 박성재(50) 신부를 중심으로 작은 원을 만들어 기도를 시작했다. 박 신부는 “이번 집회를 통해 한 명이라도 환경보호에 힘쓰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란다”며 시위가 무사히 진행되기를 소망하는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자 신도들은 광화문 사거리를 중심으로 흩어져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1인 시위로 기후위기 대응 촉구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기도를 올린 뒤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선 가톨릭기후행동 소속 신도들. 박성재 신부는 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호진 기자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기도를 올린 뒤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선 가톨릭기후행동 소속 신도들. 박성재 신부는 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호진 기자

오전 11시 반부터 한 시간가량 신도들이 1인 시위를 벌이는 동안 박 신부는 빠르고 흥겨운 가락으로 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사거리 신호등에 나눠 선 신도들은 ‘지금 당장 탈핵’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살리자’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길가는 시민들에게 흔들어 보였다. 신호를 기다리던 시민 몇 명이 “수고하십니다” “고생하십니다” 등 격려 인사를 건넸다. 반면 한 70대 남성은 큰 소리로 “환경보호를 왜 강요하냐”고 화를 냈다. 또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여기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욕설을 뱉기도 했다. 박 신부는 미소 띤 얼굴로 “저희 시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마시고 좋게 봐주세요”라고 말했다. 언성을 높이던 사람들이 머쓱한 듯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한국가톨릭기후행동은 프란체스코 교황의 회칙(지침) <찬미받으소서>에 담긴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창단됐다. 자연생태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교황의 가르침에 따라 2015년 가톨릭기후행동연합이 국제적으로 결성됐고 국내에서는 2020년 한국가톨릭기후행동이 출범했다. 현재 300여 명의 신도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생태적 회심(자연으로의 회귀)을 추구하는 신앙생활’ ‘친환경적 일상생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변화 촉구’를 목표로 활동한다. 대표적 활동 가운데 하나가 금요기후행동 집회다. 삼척화력발전소 폐지운동 등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6일 금요기후행동 집회에 등장한 포스터와 손팻말. 기후위기 대응을 호소하는 다양한 구호를 볼 수 있다. 출처: 가톨릭기후행동
지난 6일 금요기후행동 집회에 등장한 포스터와 손팻말. 기후위기 대응을 호소하는 다양한 구호를 볼 수 있다. 출처: 가톨릭기후행동

환경에 무책임한 정부 태도 안타까워

집회에 참여한 성가소비녀회의 윤 마리고레띠(63) 수녀는 “지구에서 태어나 자연환경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자랐는데, 그런 지구가 파괴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며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이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윤 수녀는 “현 정부는 환경에 대해 너무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정부의 반환경적 행보와 달리 환경보호에 대한 시민의식은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아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같은 수녀회의 임 리베(66) 수녀는 “후손들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과거 유치원에서 근무했다는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자연을 물려줘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이 똑바로 살지 못해 이렇게 환경이 안 좋아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완신(51) 신도는 “북극곰의 멸종 위협을 넘어 태평양 군도 국가들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알려 기후재난으로부터 피해받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고자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가톨릭기후행동 1인 시위엔 나선 윤 마리고레띠 수녀와 임 리베 수녀. 이호진 기자
가톨릭기후행동 1인 시위엔 나선 윤 마리고레띠 수녀와 임 리베 수녀. 이호진 기자

기후대응 정책 압박할 시민의 인식변화 절실

1인 시위를 한 시간 남짓 벌인 후 참가자들은 다시 박 신부를 중심으로 모여 마무리 기도를 시작했다. 박 신부는 추운 날씨에도 열심히 참여해준 신도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기후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단체 사진을 찍은 후 현장을 정리하고 헤어졌다.

집회를 마치고 마무리 기도를 올린 뒤 단체 사진을 찍고 현장을 정리하는 참가자들. 이호진 기자
집회를 마치고 마무리 기도를 올린 뒤 단체 사진을 찍고 현장을 정리하는 참가자들. 이호진 기자

박 신부는 이어 인근 식당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가 지도자, 기업의 오너와 같은 결정권자들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는 정책들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시민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겨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신부는 “가톨릭기후행동의 영향력이 교단 전체로 좀 더 커져야 하는데, 지금 그러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가톨릭기후행동이라는 이름에 가톨릭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 가톨릭 내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대응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가톨릭기후행동이 금요기후행동 집회 외에 삼척화력발전소 폐지 운동도 벌이고 있다고 소개하며, 화석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 전환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가톨릭기후행동 운영위원으로서 금요기후집회를 이끌고 있는 박성재 신부가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호진 기자
한국가톨릭기후행동 운영위원으로서 금요기후집회를 이끌고 있는 박성재 신부가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호진 기자

한편 국내 종교계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공동 활동도 확대하는 추세다.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등 6개 종교는 지난 2001년 결성된 ‘종교환경회의’라는 연대체를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 때도 각 종교의 기후행동단체들이 함께 참여했다. 또 1986년 결성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열어 종교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㊻ ‘탈석탄법’으로 신규발전소 건설 중단 길 터야

㊼ 강력한 탈탄소 정책과 기후정의 함께 가야

㊽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역대 최대 인파

㊾ BTS RM의 그 가방, 폐시트와 빗물로 제작

㊿ 채취량 반으로 줄고 낙석에 생명의 위협도

51 ‘그린워싱’ 고발하다 법정에 선 활동가들

52 보틀클럽과 리필스테이션이 있는 마을 실험실

53 ‘블루카본’ 갯벌을 신공항으로 덮으려는 정치

54 애타는 기후 시민,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55 기후행동 ‘목적의 정당성’ 인정한 판결에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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