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N번방의 아픈 기억들

N번방 보도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던 2020년 초, 나는 독일에 있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으로 N번방 사건을 접했다. 텔레그램에서 여성들을 노예로 삼으며 대규모 인원이 집단으로 린치를 가한 사건은 충격이었다. N번방은 이전의 온라인 성범죄와는 달랐다. 음란물을 공유하거나 몰래카메라를 찍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많게는 만 명 가까이 되는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노예’라 부르는 피해자들의 사진이 공개됐다. 주로 미성년자들이었다. 모델 일을 소개해주겠다는 URL을 클릭하면 즉시 신상정보가 가해자에게 넘어갔다. 그때부터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사진을 뿌리겠다는 협박이 시작됐다. 피해자가 사는 집 앞까지 가서 인증샷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협박을 받은 피해자는 몸에 '박사 노예'라고 새기고 나체로 사진을 찍었다. 문신은 그림이 아니라 칼로 새겼다. 외신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BBC와 NYT에서도 당시 중학생이었던 N번방 피해자 사건을 보도했다. SNS에서 급속하게 퍼져나간 N번방 사건에 다른 외국 유학생들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만난 친구들은 한국에서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온라인에서 여중생을 성노예로 전락시키고 수십만 명이 방관한 한국의 끔찍한 민낯에 관해 이야기했다. 외국까지 알려진 한국의 성인식 수준이 부끄러웠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나와 내 주변 사람들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느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성범죄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책임감마저 생겼다.

BBC의 N번방 조주빈 검거 보도. 텔레그램 이용 성착취 범죄 용의자와 가입자 전원의 신상 공개 및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의 국민청원에서 20만 명이 동의했으며, 한국은 심각한 몰카 범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아 국민의 분노가 커졌다고 전했다. ⓒ BBC
BBC의 N번방 조주빈 검거 보도. 텔레그램 이용 성착취 범죄 용의자와 가입자 전원의 신상 공개 및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의 국민청원에서 20만 명이 동의했으며, 한국은 심각한 몰카 범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아 국민의 분노가 커졌다고 전했다. ⓒ BBC

그해 3월, 박사 조주빈이 검거됐다는 소식을 함께 접했다. N번방 사건을 다시 만난 건, 추적단 불꽃이 뉴스통신진흥원에서 2020년 특별상 수상자로 다시 이름을 올리고 나서였다. 추적단 불꽃은 기자지망 대학생인 익명의 저널리스트 ‘불’과 ‘단’ 2명이 만들었다. 2019년 7월, 뉴스통신진흥회 공모전에서 텔레그램 N번방을 알린 최초 취재자, 최초 신고자였다. 불꽃은 다양한 언론매체들과 N번방을 공론화하는 주역이었다. 그들이 다시 내놓은 수상작 <시기와 윤리 모두 놓친 ‘디지털 성착취’ 보도>는 N번방 사건 범죄 추적기가 아니었다.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는 언론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핵심은 언론의 보도준칙 위반이었다. 자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묘사하거나, 추적단에 과도하게 취재원의 신상정보를 요구하던 MBC 실화탐사대의 실상을 고발했다. 불꽃은 언론의 N번방 보도 태도에 안타까움과 좌절감을 느꼈다. 더는 피해가 생기지 않길 바라며 용기 내어 취재에 응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엉뚱한 곳에 관심이 쏠리게 만든 언론을 비판했다. 자신을 마치 대단한 빌런인 것처럼 묘사하며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고 말한 조주빈을 자극적인 소재로 활용해 클릭률을 높이던 보도 관행을 지적했다. 언론은 피해자의 추적으로 가해자가 잡힌 사실은 외면하고 경찰의 미흡한 대응을 비판하는 의제 설정으로 여론이 엉뚱하게 경찰을 나무라는 방향으로 흐르게 했다. ‘피해자의 용기와 끈질긴 추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언론의 보도방식은 오히려 피해자들을 괴롭혔다.

추적단 불꽃은 2019년 뉴스통신진흥원 공모전에서 N번방의 실체를 최초보도했다. 이후 다양한 언론사에 자신들의 취재자료를 아낌없이 공유해 사건의 핵심 인물 검거까지 성공했다. 2020년에는 N번방에 대해 보도한 언론의 보도윤리를 지적하는 기사로 후속보도를 이어 나갔다. ⓒ 미디어오늘
추적단 불꽃은 2019년 뉴스통신진흥원 공모전에서 N번방의 실체를 최초보도했다. 이후 다양한 언론사에 자신들의 취재자료를 아낌없이 공유해 사건의 핵심 인물 검거까지 성공했다. 2020년에는 N번방에 대해 보도한 언론의 보도윤리를 지적하는 기사로 후속보도를 이어 나갔다. ⓒ 미디어오늘

다시 돌아보는, N번방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

N번방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주요 가해자들의 재판 결과가 나오며 사안이 마무리돼 가는 상황에서 다시 전말을 되짚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N번방 범죄는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결코 잊혀서는 안 되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지난 5월 공개된, 최진성 감독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지옥>은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구성원 모두의 책임을 다시 일깨운다. 감독은 N번방이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낸 이후 2년간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영화 <서치>에서 온라인 추적극을 그리기 위해 인터넷 화면을 활용했던 것처럼, <사이버지옥>에서는 텔레그램 채팅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채팅방에서 가해자들이 주고받은 비인간적인 대화를 통해 지옥의 실상이 가감 없이 드러낸다. 빠르게 생기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온라인 환경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다큐는 현대판 르포르타주의 전형이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N번방’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 기자, PD, 경찰 등 24명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사이버 범죄 추적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는 지옥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고발과 연대의 기록을 기억해 낸다. ⓒ Netflix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N번방’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 기자, PD, 경찰 등 24명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사이버 범죄 추적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는 지옥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고발과 연대의 기록을 기억해 낸다. ⓒ Netflix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N번방’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 기자, PD, 경찰 등 24명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사이버 범죄 추적 다큐멘터리이다. <사이버지옥>은 한겨레 김완, 오연서 기자, 그리고 추적단 불꽃이 처음 N번방을 발견해나간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취재팀은 취재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N번방은 김완 기자의 기사를 조롱하면서 그와 그의 가족, 지인의 신상을 알아 오는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는 공지까지 띄웠다. 김완 기자는 N번방 가담자들로부터 테러 메일을 받았다. 가족들과의 일상 모습이 담긴 페북 사진이 온라인상에서 떠돌았다. 김완과 오연서 기자는 지지 않았다. N번방 특별 취재팀을 꾸려 취재를 이어갔다. 제보자 조커가 연락을 해왔다. 박사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마약과 조직 등과 연루되어 있었다고 과시했다. 오프라인에서 신원이 보증되지 않은 제보자를 만나는 것은 기자들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조커를 만났다. 조커의 지인도 N번방 피해자였다. 조커의 자세한 피해 제보와 추적단 불꽃의 취재자료 공유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구체적인 N번방 가담자 명단과 범죄 수법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 보도 이후 JTBC <스포트라이트> (장은조 작가, 최광일 프로듀서)와 SBS <궁금한 이야기 Y> (정재원 프로듀서)가 N번방 방송을 이어가면서 사이버 성범죄는 점점 세상에 알려졌다. <사이버지옥>은 사이버수사대가 수사망을 좁혀가는 과정을 촘촘히 그려낸다. 범죄자들은 자신이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술 더 떠 제작진에게 직접 연락하는 과시 행동을 하기도 했다. 텔레그램이라는 다크웹과 비트코인 거래로 온라인상에서 영원히 존재를 감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큐는 N번방에서 지인 능욕을 하던 래빗이 처음 검거된 것을 시작으로, 박사 조주빈과 갓갓 문형욱이 체포되는 현장을 담아간다. 다큐는 N번방을 추적해나간 사람들이 모여 사건의 퍼즐을 맞춰나가고, 마침내 범죄자가 검거되는 과정을 그린다. N번방 사건 범죄를 해결한 건 이를 추적한 활동가들과 취재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힘을 모은 결과임을 보여준다.

피해자들의 용기가 바꾼 세상

다큐는 간과되었던 피해자들의 용기에도 주목한다.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 이유는 하나였다. 더이상 똑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N번방을 추적하던 과정에서 언론은 지속적으로 박사의 협박을 받았다. 취재 내용을 보도할 경우, 매체 이름을 붙여 피해자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한겨레 보도 이후 박사는 ‘한겨레 피해자’라 부르는 피해자를 공개했다. 보도 이후 오히려 텔레그램 접속자가 늘었다며 자기 방도 홍보해달라고 기자를 조롱했다. SBS, JTBC 취재 때도 같았다. 박사는 방송이 나가면 피해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협박했다. SBS 방송이 예정대로 나가자, ‘SBS 피해자’라 이름 붙인 피해자가 SBS 옥상 건물에서 투신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읽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박사는 SBS 정재원 프로듀서에게 박사방 관련 내용이 방영될 경우, 피해자가 SBS 옥상에서 투신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 N번방 문제를 취재하는 제작팀이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들어 취재를 막으려 했다. ⓒ SBS 궁금한 이야기 Y
박사는 SBS 정재원 프로듀서에게 박사방 관련 내용이 방영될 경우, 피해자가 SBS 옥상에서 투신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 N번방 문제를 취재하는 제작팀이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들어 취재를 막으려 했다. ⓒ SBS 궁금한 이야기 Y

박사는 JTBC <스포트라이트> 방송을 이틀 앞두고 최광일 프로듀서에게 연락을 해왔다. 피해자 이름과 직업, 주소와 신체의 일부를 가린 영상을 보내고, 예정대로 방송이 나가면 ‘스포트라이트 피해자’라 이름 붙이고 피해자 신상을 N번방에 공개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추적단 불꽃도 최 PD에게 연락해서 방송을 재고해달라고 말했다. 박사는 문제를 보도한 언론이 피해자에 대한 죄의식을 떠안게 만들어 방송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예정대로 방송이 나가자 박사는 N번방에 피해자 영상과 신상을 공개했다. 최 PD는 인터뷰 동안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정말 영상이 풀릴 줄은 몰랐으며, 피해자분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목소리가 죄책감에 가늘게 떨렸다. 이때 취재팀을 격려한 것은 N번방에서 ‘스포트라이트 피해자’로 지목된 김모 씨였다. 김 씨는 최 PD에게 연락해 자기 영상은 언젠가 풀릴 영상이었고, 박사가 방송사까지 쌍방으로 엮으려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박사는 죄책감을 느낀 제작진이 취재를 멈추는 것을 노렸다. 피해자들의 용기로 언론 보도와 수사는 계속됐다. 이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N번방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고, 범죄에 가담한 자들을 심판대에 세울 수 있었다. <사이버지옥>은 이들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전달한다. 개인의 용기가 어떻게 세상이 바꾸는지를 보여주고, 증명해 낸다.

아픔을 드러내는 방법

<사이버지옥>의 성과는 섬세한 연출에서 드러난다. 다큐는 피해를 세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가해자들의 잔인함과 피해자들의 참혹성을 리얼하게 그려낼 방법을 찾아낸다. 제작팀은 제작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해선 안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조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의 70%를 여성으로 채웠다. 영화 속 음악과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등도 모두 여성이 만들었다. 성적으로 학대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영상이 필요할 경우, 피해자들의 모습이 드러난 원본 사진 대신 배우들을 써서 당시 상황을 연출했다. 피해자 사진 사용도 최소화하고 사용하는 사진도 모자이크로 처리해 불필요하게 선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을 막았다. 그루밍 성범죄로 가해자들에게 완전히 종속된 여성들의 피해 장면은 물속에 잠겨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박사에게 협박당해 시키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의 모습은 벼랑 끝 군중 속으로 내모는 거대한 손에 매달리는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경찰이 조사차 피해자 여중생의 집에 방문했던 내용은 연출 대신 인터뷰로 채웠다. 대신 피해자 방에서 발견한 “나는 박사의 노예입니다”가 적힌 종이쪽지들만 모아서 촬영했다. 피해자를 특정해서 보여주기보다, 피해자가 당한 피해만 드러냈다.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적인 성착취 장면을 실사로 재현하기보다 일러스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섬세한 연출을 통해 불필요한 범죄 재현을 막고, 피해자가 느꼈던 공포감을 오롯이 전달한다. ⓒ Netflix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적인 성착취 장면을 실사로 재현하기보다 일러스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섬세한 연출을 통해 불필요한 범죄 재현을 막고, 피해자가 느꼈던 공포감을 오롯이 전달한다. ⓒ Netflix

대신 텔레그램과 비트코인 범죄 수법, 이를 방관하고 재생산한 공범들의 행적은 적나라하게 공개한다. 와치맨이 운영하는 AV-SNOOP에 접속하면 고담방으로 들어가는 링크가 주어지고, 이후에 고담방을 통해 N번방 링크를 전달받는다. 추적단 불꽃은 N번방 잠복 취재 중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프로필 사진을 바꾸면 링크를 전달해주겠다는 가해자의 요구를 들어 N번방에 접속할 수 있었다. N번방은 25만(하드방), 50만(고액후원자방), 100만(최상급방) 등 각기 다른 입장 금액을 요구했는데, 세 방에서 벌어들인 수익만 1억 원 이상 추정됐다. 박사는 성착취 영상을 판매할 때 암호화폐 거래소인 베스트코인을 통해 거래했다.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인출할 때는 보이스피싱에서 자주 활용되는 ‘던지기 수법’을 활용했다. 던지기 수법은 약속된 장소에 현금다발을 숨겨두면 시차를 두고 찾아가는 방식이다. 다큐는 온라인 성범죄 수법을 자세히 다루어서 이것이 가능했던 사회 시스템을 지적한다. 기존에 없던 비대면 사이버 범죄의 면면을 드러내,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적시하고 시청자가 무방비로 성착취 콘텐츠에 노출되는 현실에 경각심을 갖도록 만든다.

자신을 절대 잡을 수 없다고 자신하던 박사는 결국 사이버 수사대에 꼬리가 밟힌다.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범죄자가 우러러볼 ‘악마’가 아니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큐는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진술자들이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면서, 마치 시청자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인테로트론’ 기법을 도입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의 조은호 변호사는 시청자를 바라보며 N번방은 소수의 악마가 만들어낸 재앙이 아니라, ‘단지 보기만 했어’라는 사람들까지 모두 가해자라고 말한다. ‘피해자 일상을 위협하는 건 한 번의 클릭이다’는 그의 말은 보는 이에게 현실로 다가온다. 24명의 저널리스트와 경찰, 피해자들이 정면으로 바라보며 시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연출은, 사이버 성범죄 이야기가 는 지금 당장, 당신이 들어야 하는 현실임을 상기시킨다.

다큐는 인터뷰이가 화면 뒤의 감독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화하는 연출기법인 ‘인테로트론’를 활용했다. 시청자는 일인칭 시점에서 인터뷰이와 마주 보고 앉아 대화하며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체험하게 된다. ⓒ Netflix
다큐는 인터뷰이가 화면 뒤의 감독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화하는 연출기법인 ‘인테로트론’를 활용했다. 시청자는 일인칭 시점에서 인터뷰이와 마주 보고 앉아 대화하며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체험하게 된다. ⓒ Netflix

N번방, 끝나지 않은, 끝이어선 안되는 이야기

N번방 범죄자들은 심판받았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25명의 피해자를 협박해서 성착취 영상을 제작한 박사 조주빈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42년형이 확정됐다. N번방을 시작했고 2017년부터 2020년까지 20여 명의 피해자를 협박해서 성착취 영상을 제작한 갓갓 문형욱은 같은 해 11월 대법원에서 34년형이 확정됐다. 지난해 12월까지 N번방 범죄로 총 375명이 검거되었고, 245명이 구속됐다. 하지만 이들만이 N번방 범죄 실체의 전부는 아니다. 약 26만 명이 N번방에서 범죄를 방관했고, 관음했다. 26만 명의 소비가 있었기에 N번방이 생겨났고, 유지되었다. 성 소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이버 지옥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희망은 있다. 사이버지옥의 세계와 싸우는 추적단이 여전히 그 불꽃을 환히 밝히고 있다. 한겨레는 일반 가담자 1심 판결문을 전수 분석해, 261명(69.1%)에 달하는 가담자들이 무기징역을 받은 사안을 후속 보도로 냈다. 지금도 여전히 ‘N번방 그 후’로 보도를 이어 나가고 있다. 익명으로 활동하던 추적단 불꽃의 ‘불’인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으로 정치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단’은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사이버지옥>은 넷플릭스 영화 글로벌 17위에 올랐다. 한국, 홍콩, 베트남, 대만, 일본 등 아시아 9개 나라에서 10위권을 석권했다. 극영화가 아닌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과였다. 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N번방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N번방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여전히 온라인 성 착취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N번방의 주요 가해자들이 구속된 이후 N번 방에서는 박사와 갓갓을 추모하는 백합 이모티콘 물결이 이어졌다. 여전히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주로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방관한 수많은 참여자들은 제대로 심판받지도 않았다. N번방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아니 끝이어선 안된다. 한겨레 오연서 기자는 <사이버지옥>의 기록이 ‘디지털 성착취 세계 종말기’의 첫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추적단과 취재팀의 활동과 보도,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있기에 앞으로 N번방은 잊히지 않고 사이버 성범죄 고발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불꽃으로 지옥을 밝히는 사람들이 당신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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