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

한 프로그램 제작진이 소년재판 담당 판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소년재판을 맡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판사는 무덤덤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한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혐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누군가를, 그중에서도 자신이 매일 만나는 소년범을 당당하게 혐오한다고 말하는 ‘소년재판 판사’.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소년재판 판사의 굳은 얼굴로부터 시작한다.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혐오를 당당하게 고백하는 판사 심은석(김혜수 역). 드라마는 소년범과 이들의 범죄를 법으로 심판하는 소년 법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넷플릭스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혐오를 당당하게 고백하는 판사 심은석(김혜수 역). 드라마는 소년범과 이들의 범죄를 법으로 심판하는 소년 법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넷플릭스

비로소 세상에 드러난 소년재판의 현실

<소년심판>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드라마로 지난 2월 25일 공개됐다. 국내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19세 미만 소년의 범죄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인 ‘소년부’와 ‘소년범’을 다뤘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극은 연화라는 가상 지역 내 지방법원 소년 형사합의부 소속 판사들과 사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소년범을 혐오’하는 심은석(김혜수 분) 판사와 소년들의 가능성을 믿는 차태주(김무열 분) 판사를 비롯해 합의부의 부장판사들(이성민, 이정은 분), 각종 범죄로 재판장에 온 소년들을 소재로 총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소년재판의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3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한 소년의 인생이 달린 판결을 해야 하는 소년재판의 한계는 범죄의 잔혹성과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자극적인 언론 보도 이면에 존재하는 현실이었다. <소년심판>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년재판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대사를 통해 소년재판이 이루어지는 열악한 법정업무 현실을 직접 언급한다. 이런 식이다. 심은석은 한 프로그램 제작진과 인터뷰를 하며 전국 소년부 판사는 20여 명에 불과하며, 이들이 매년 3만 명 이상의 소년범들을 만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차태주가 심은석을 처음 만나 나누는 인사에서는 한 달 동안 300건의 판결문을 읽어야 하는 소년 형사합의부의 고충을 드러낸다.

20여 명의 판사가 처리해야 하는 소년범 재판은 한 달에 300건이다.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참여관과 실무관 등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드라마는 소년재판 구성원의 과중한 업무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 넷플릭스
20여 명의 판사가 처리해야 하는 소년범 재판은 한 달에 300건이다.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참여관과 실무관 등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드라마는 소년재판 구성원의 과중한 업무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 넷플릭스

법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인물은 판결에 쫓기는 소년재판의 특수성을 보완하는 장치다. 사건 기록 등을 정리해 전달하고, 때로는 사건 관련 인물들을 조사하는 주영실 참여관(이상희 분)과 서범 실무관(신재휘 분)의 역할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은 비어있는 조사와 판결의 시공간을 메우며, 자칫 판결에서 놓칠 수도 있는 증거와 논증을 보완해 준다. 주영실은 판사들이 보호시설에서 도망친 소년들을 잡으러 간 사이에 관련 인물을 조사해 중요한 증언을 얻어낸다. 서범 또한 미성년자 무면허 운전 사건과 관련해 배후에 숨겨져 있던 학교폭력 내용이 담긴 영상을 찾아내 판사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두 인물의 역할은 극의 전개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음매 역할을 한다.

실제 소년재판의 현실은 극 중에서와 비슷하다. 소년 형사합의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에피소드에서 보였듯 소년 재판은 단독재판으로 한 명의 판사가 진행한다. 2019년 기준 전국의 소년부 판사는 24명으로, 2018년에는 판사 1인당 약 1320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처분 후 소년들이 갈 수 있는 시설도 매우 적다. 소년교도소는 전국에 1개이며, 구치소 역할을 하는 소년분류심사원도 독립된 시설로는 전국에 1개뿐이다. 재판도 처분도, 처분 이후의 보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소년법의 제1목적인 ‘소년 교화’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이면을 읽고, 그려내기

<소년심판>을 끌어가는 구심점은 소년범들이 저지른 범죄다. 에피소드 마다 등장하는 범죄의 양태는 낯설지 않다. 초등생 살해사건, 가출팸 성매매, 미성년자 무면허 도주 사건 등 언론을 통해 빈번하게 접했던 범죄다. 소년 범죄는 점점 흉포화되고 있어 사람들은 소년법 폐지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주장하고 있다. 소년법이 폐지되면 만 19세 미만의 범죄를 저지른 소년에게 보호처분 대신 형사처벌이 내려진다.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지른 소년 중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소년을 일컫는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은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연령을 만 14세에서 낮춰, 처벌을 받는 소년의 연령 범위를 넓히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도 촉법소년 연령을 만 14세에서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내용의 대선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소년심판>은 소년 범죄를 표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사건이 얼마나 잔인하고 자극적인지 등을 보여주기 위한 범죄 묘사에 골몰하지 않는다. 대신 범죄가 발생하기까지 아이들이 처한 각자의 상황을 자세히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최영나(김보영 분)는 보호시설에서 머물다 달아나 조건만남 사기를 주도한 혐의로 소년보호재판을 받는다. 언론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소년심판>은 영나의 삶에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영나의 엄마는 자신의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시설에 있는 영나가 자신을 찾지 못하게 했다. 영나는 시설에서 달아난 후 엄마를 찾아갔으나, 엄마는 영나를 모른 척했고 심지어 쫓아내기까지 했다. 영나는 닫힌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창문을 맨주먹으로 깨트리고, 다시 문을 두드린다. 카메라는 피 흘리는 영나의 손을 지속해서 비추며 따라간다. 피 흘리는 손은 세상에 영나가 세상에 던지는 절규임을 부르짖으며 아이의 아픔을 그려낸다.

조건만남 사기 범죄를 저지른 영나에게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있다.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는 영나의 피투성이 손은 범죄 이면에 놓인 소년들을 처음으로 주목하게 만든다. ⓒ 넷플릭스
조건만남 사기 범죄를 저지른 영나에게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있다.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는 영나의 피투성이 손은 범죄 이면에 놓인 소년들을 처음으로 주목하게 만든다. ⓒ 넷플릭스

“바깥 생활이 길어질수록 돈은 더 필요할 거고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어져. 소년범죄는 저지르는 게 아니야. 물드는 거지.”(<소년심판> 5부에서 심은석 판사) 조건만남 사기의 이면에는 가출팸과 보호시설을 오고 가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제대로 된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가출팸으로 내몰렸고, 자연스레 범죄를 저질렀다. 심은석이 말했듯 소년들은 범죄에 자연스레 ‘물들었다’.

드라마는 심은석을 통해 이들이 범죄에 물든 상황을 이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심은석은 소년이 범죄를 저지른 배경과 상황을 이해하되, 소년원에 2년 송치해 소년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정당하게 지게 만든다. 드라마는 아이와 부모, 우리 사회 모두에게 말한다. “가정이 그리고 환경이 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나 다양한 선택지 중 범죄를 선택한 것은 소년입니다. ∙∙∙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오늘 처분은 소년에게 내렸지만, 그 처분의 무게는 보호자들도 함께 느끼셔야 할 겁니다.”

소년은 '누가' 심판하는가

<소년심판>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극 중 판사의 역할이다. 심은석, 차태주 두 판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여느 판사와 다르다. 재판석에 앉아 양측의 주장과 증거 등을 바탕으로 판결을 하는 다소 정적인 모습이 판사의 전형이다. 드라마 속 판사들은 이들과는 차이가 있다. 소년재판을 맡은 판사라는 특수성도 있으나, 유달리 능동적이다. 소년들이 왜 사고를 저질렀는지를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알아내려 한다. 차태주는 미성년자 무면허 운전을 한 가해자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권력관계에 의해 강압적으로 운전을 하게 한 정황을 폭행 사실이 담긴 영상 분석 등을 통해 알아낸다. 심은석도 마찬가지다.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가해자 집단 중 핵심 인물이 드러나지 않자 주변을 탐색해 그가 사는 곳까지 찾아가 결국 핵심 증거를 찾아낸다. 드라마는 실제상황이다. 김민석 작가는 실제 시설에서 도망친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등 직접 현장에 나서는 소년판사도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우리가 <소년심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극 중 판사들은 사건의 가해자와 증거를 찾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달리고, 싸우고, 부딪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결국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낸다. ‘3분’ 만에 끝나는 ‘소년재판’ 속에서 최대한 길을 찾으려는 최대한의 노력일지도 모른다. ⓒ 넷플릭스
극 중 판사들은 사건의 가해자와 증거를 찾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달리고, 싸우고, 부딪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결국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낸다. ‘3분’ 만에 끝나는 ‘소년재판’ 속에서 최대한 길을 찾으려는 최대한의 노력일지도 모른다. ⓒ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 나오는 판사의 판결 기저에는 소년을 법으로 ‘심판’해야 하는 이의 사명감과 고충이 동시에 느껴진다. “소년 사건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돼. 늘 찝찝하지 ∙∙∙ 오늘 내린 처분은 합당한 처분인가. 그 처분으로 피해자는 억울함이 해소되는가, 소년은 반성하는가.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지. 그게 우리 일이야.”(<소년심판> 2화에서 심은석 판사)

판사는 법으로 소년들을 심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소년범죄의 ‘심판’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소년재판의 현실적 한계 때문에 소년이 반성하기에도 부족하고, 피해자의 아픔을 회복시키기 어려운 판결과 처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묻는다. "소년재판이 가해자이자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소년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내쫓아, 더 큰 범죄자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라고.

동시에 <소년심판>은 세상에 소년을 ‘심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마지막 에피소드 엔딩 장면에서 재판장에 온 한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얼굴을 보여준다. 소년은 첫 에피소드에서 초등생 살해사건의 공범으로 처분받았던 백성우(이연 분)였다. 이 장면은 법원의 판결을 통한 '심판'만이 소년범을 교화시킬 수 없고,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범죄에 내몰린다는 점을 상징한다. 보호처분을 반복해서 내려도 가정의 보호력과 사회의 관심이 없으면 소년은 다시 법정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소년을 심판하는 주체는 법원, 판사 한 명이 아니란 점을 힘주어 말한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그런 저의 태도에 누군가는 질타할 것이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겠죠. 혐오. 사전적 의미로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합니다. 싫어하고 미워할지언정, 소년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싫어하고 미워할지언정 처분은 냉정함을 유지할겁니다. 싫어하고 미워할지언정 소년에게 어떤 색안경도 끼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 마음가짐 그대로. 또는 그 전과는 다르게.”(<소년심판> 10화에서 심은석 판사)

드라마 시작에서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말했던 심은석은, 드라마 끝장면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최선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드라마는 우리에게 누군가를 혐오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묻는다. ⓒ 넷플릭스
드라마 시작에서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말했던 심은석은, 드라마 끝장면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최선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드라마는 우리에게 누군가를 혐오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묻는다. ⓒ 넷플릭스

‘어떤 문제와 관련된 사람에 대하여 잘잘못을 가려 결정을 내리는 일’을 의미하는 ‘심판’은 모든 사회가 나서야 하는 일이다. 그 심판이 아이들을 향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들의 잘못 뒤에는 어떤 가정과 사회의 방기가 있었는지, 피해자의 아픔은 또 누군가에 의해 방치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그 일은, 심은석과 차태주 등 이십여 명의 판사뿐이 아니라 소년 옆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