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㊲ 연탄의 정의로운 전환 (하)

강원도 태백시 장성광업소와 삼척시 도계광업소 등 국내에서 가동 중인 4개 탄광의 채탄 위치는 평균 지하 650m다. 장성광업소는 최대 1000m까지 내려간다. 탄광노동자들이 과거 ‘막장’이라 부르던 채탄 작업장까지 내려가는 데만 도보, 엘리베이터 등을 포함해 4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 37년 동안 장성광업소에서 석탄을 캐고 5년 전 정년퇴직한 추교열(65) 씨는 지하 채탄장의 온도와 습도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작업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땀이 온몸에서 흐르죠. 장화에 땀이 가득 차 질척이기 시작하고요.”

고온·탄가루 속 지하 수백 미터의 노동

탄광노동자들은 분진이 가득한 지하 수백 미터의 채탄장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석탄을 캔다. Ⓒ 전제훈 작가
탄광노동자들은 분진이 가득한 지하 수백 미터의 채탄장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석탄을 캔다. Ⓒ 전제훈 작가

38℃가 넘는 작업장에 들어서면 챙겨간 얼음물도 금방 녹아버린다. 그는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몇 번이고 짜내는 일을 거듭한다고 말했다. 같은 자세로 평생 석탄을 캔 그는 팔 골격근에 문제가 생겨 퇴직 뒤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 30년간 장성광업소 갱내에서 탄을 날랐던 한영섭(63) 씨는 석탄 가루 때문에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중증장애 3급을 판정받았다. 한 씨는 “호흡곤란이 자주 와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석탄광업소에서 오래 일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 소음성 난청과 진폐 등 호흡기 질환을 앓는다. 종합법률사무소 법진과 의료·산재·진폐협회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박용일(64) 씨는 광업소 노동자 대부분이 산재 신청을 하러 온다고 말했다. 현재 진폐협회 4곳에 등록된 환자만 1만 1000여 명이다. 박 고문은 “탄광근로자의 38%가 진폐 장해를 판정받는다”고 말했다. 이는 의증(의심상태)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이렇게 건강을 희생하면서도 노동자들은 광업소가 문을 닫는 것을 두려워한다. 탄광 일 말고는 다른 기술이 없고 나이가 많아, 일용직으로 일하는 것 외에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걱정하는 ‘광업소의 마지막’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말 발표된 제6차 석탄산업 장기계획에 따라 정부는 2022년 이후 대한석탄공사 산하 3개 광업소의 생산량 한도를 107만 톤(t)으로 제한했다. 그리고 노사합의를 거쳐 2023년 말 전남 화순광업소, 2024년 말 태백 장성광업소, 2025년 말 삼척 도계광업소를 폐광하기로 결정했다. 대한석탄공사 노조는 생산량 한도 철폐, 폐광대책비 현실화, 고용보장대책 등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파업했으나 지난 3월 2일 열린 노사정협의체에서 폐광 계획 등에 잠정 합의했다. 폐광대책비 외에 특별위로금을 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예정돼 있던 최종 협상은 보상액 규모를 놓고 노조와 정부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무산됐다. 노조 관계자는 8월 안에 다시 협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 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민영탄광인 삼척시 도계읍의 경동 상덕광업소 한 곳만 남게 된다. 그만큼 연탄 원료인 석탄 생산이 줄 것이고, 상덕광업소까지 문을 닫으면 수입 석탄을 쓰지 않는 한 연탄 생산도 중단될 것이다. 수입 석탄은 연소 후 형태 유지가 불가능하고 지속시간이 짧아 단독으로는 연탄 제조가 어렵다. 현재 국내 생산 석탄의 절반가량이 연탄 제조에 쓰이고 있다. 이에 앞서 1988년 전국에 347개이던 광업소는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2022년 현재 4개로 줄었다. 1988년에 6만 2000여 명에 이르던 탄광노동자수도 2300여 명으로 줄었다.

국내 석탄광업소 4곳의 2022년 3월 말 기준 생산량과 노동자 수. Ⓒ 이현이
국내 석탄광업소 4곳의 2022년 3월 말 기준 생산량과 노동자 수. Ⓒ 이현이

일자리 전환이 어려운 탄광 노동자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한석탄공사 산하 광업소 세 곳과 강원 원주시 본사의 정규직 직원은 총 735명이다. 그중 20대가 2명(0.3%), 30대 54명(7.3%), 40대 182명(24.8%), 50대 497명(67.6%)으로 50대가 3분의 2 이상이다. 파견·용역·사내하도급 등 비정규직 859명도 50~60대가 주를 이룬다. 폐광되면 이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는데, 50~60대 탄광노동자가 새 직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루 일을 마친 뒤 헬멧에 조명등을 켜고 어두운 갱도를 따라 걸어 나오는 탄광 노동자들. Ⓒ 전제훈 작가
하루 일을 마친 뒤 헬멧에 조명등을 켜고 어두운 갱도를 따라 걸어 나오는 탄광 노동자들. Ⓒ 전제훈 작가

폐광은 단순히 한 기업이 문을 닫는 것 이상의 그늘을 드리운다. 태백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장성광업소는 태백시 경제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2024년 말 장성광업소가 예정대로 폐광한다면 탄광노동자와 협력업체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이들을 주 고객으로 했던 지역 상권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태백상의는 2021년 12월 기준 4만 844명인 태백시 인구가 4만 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4월 8일 정오 무렵 태백시 장성광업소 앞 식당가. 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지역 자영업자들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 안재훈
지난 4월 8일 정오 무렵 태백시 장성광업소 앞 식당가. 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지역 자영업자들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 안재훈

지역주민들은 폐광 후 대체 산업이 들어오기까지 공백 때문에 커질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했다. 장성광업소 앞에서 20년째 웨딩홀을 운영하는 이무영(65) 씨는 “석탄공사가 문을 닫으면 인구 4만밖에 안 되는 태백시의 존립 기반이 위태롭다”고 말했다. 부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모(60) 씨는 “2년 뒤 당장 광업소가 없어진다는데 (대체 산업이) 구성돼 있지 않고, 온다고 해도 몇 년이 걸릴 테니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20여 년간 추진된 폐광 대책, 실효성은 물음표

사실 강원도에서 광업소 폐업에 따른 지역사회 불안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95년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이 제정된 이후 강원도 폐광지역 4개 시군에는 25년간 2조 원 넘는 투자가 이뤄졌다. 대표적인 사업이 폐광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해 강원랜드를 설립한 것이다.

19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2015년까지 강원도 4개 시군에서 진행된 사업 건수. 20년간 2조 원이 넘는 투자가 이루어졌다. ⓒ 이현이
19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2015년까지 강원도 4개 시군에서 진행된 사업 건수. 20년간 2조 원이 넘는 투자가 이루어졌다. ⓒ 이현이

산업통상자원부는 2016년 9월 ‘제5차 석탄산업 장기계획’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진행된 폐광 대책의 집행 실적이 부진하고, 지역경제 체감 효과가 미약하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2012년 추진된 ‘폐광지역 경제자립형 개발사업’ 12건 중 실제 추진된 것은 6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민간자본 유치 실패, 재정투융자심사 부적격 판정 등의 이유로 취소됐다. 폐특법에 의거해 설치된 폐광지역개발기금 집행률도 저조하다. 2018년부터 3년간의 평균 집행률은 약 45%에 불과했다.

폐광지역 재생을 위한 대체산업 육성 계획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태백시는 친환경 열병합 발전이 가능한 ‘에코 잡 시티(Eco job city)’를 2024년까지 장성동 폐광지역에 건설하기로 하고 2019년 착공했다. 태백시 도시재생지원센터 김민수 센터장은 “열병합 발전 외에도 스마트팜, 목재 수거센터 등 단위사업으로 총 130여 명의 항시 고용 인력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폐광부지에 데이터센터(컴퓨터 저장장치 등이 밀집된 시설)를 유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여기서 신규 일자리 3만 개가 창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태백시지역현안대책위원회 박대근(62) 사무처장은 “장성광업소에 들어오는 데이터센터의 경우 (업무가) 전산화되어 나이 든 분들이 일하기 쉽지 않다”며 “에코 잡 시티도 발전사업이 모두 기계화와 전동화가 이루어져 탄광 노동자들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장성광업소 폐업 후의 노동자 재취업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태백시지역현안대책위원회 박대근 사무처장. ⓒ 단비뉴스
장성광업소 폐업 후의 노동자 재취업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태백시지역현안대책위원회 박대근 사무처장. ⓒ 단비뉴스

정의로운 전환 위한 ‘거버넌스’와 기금조성 필요

국제노동기구(ILO)는 각국의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 2008년부터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2015년에는 ‘모두를 위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와 사회를 향한 정의로운 전환 지침(Guidelines for a Just Transition towards Environmentally Sustainable Economies and Societies for All)’에서 일곱 가지 이행 원칙을 채택했다. 이 가운데 핵심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노동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일찍 정의로운 전환 논의가 시작된 해외 국가들은 다양한 제도를 통해 피해 노동자의 일자리 전환과 지역사회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스는 2028년까지 갈탄 광산을 폐쇄하기로 2018년 결정하고,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수익의 6%(2018년 기준 약 422억 원)를 갈탄 지역에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석탄 광산 및 석탄발전 지역공동체와 경제 재활성화를 위한 워킹그룹’을 구성했다. 이후 미국의 기반시설법(Infrastructure Bill)에는 약 26조 원을 투자해 폐광지역을 정화하는 사업이 포함됐다. 병충해와 오염에 노출된 폐광지역을 매립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서부에 있는 웨스트버지니아주인데, 1930년 미국 석탄생산량의 80%를 차지하던 애팔래치아산맥에서 폐광 매립 사업을 통해 수천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드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주 의회는 지난해 1월 광산 매립을 위해 연방 자금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98년부터 석탄과 갈탄 산업을 축소해온 독일은 2018년 흑탄(유연탄) 광산 중 마지막 광산을 폐쇄할 때까지 8만여 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기은퇴(49세 이상) 혹은 이직 프로그램(49세 미만)을 시행해 퇴직자 절반 정도가 재취업에 성공했다. 독일은 이어 2038년까지 완전한 탈석탄을 하겠다는 목표로 2020년 관련법을 제정했다. 법안에 따르면 4만 명에 이르는 광산· 발전소 노동자들은 최장 5년까지 고용조정지원금을 받는다. 약 48억 유로로 책정된 고용조정지원금을 4만 명에게 지급할 경우 1인당 12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억 6천만 원을 받게 된다.

강원도 태백시 장성광업소 갱도 입구에 걸린 석탄노동자 그림. Ⓒ 안재훈
강원도 태백시 장성광업소 갱도 입구에 걸린 석탄노동자 그림. Ⓒ 안재훈

전문가들은 탄광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지역민과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해 체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영리단체인 기후솔루션의 이석영 연구원은 지난 4월 8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환을 위한 기금과 거버넌스”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이 성공적으로 탈석탄 전환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연방정부에서 오는 지원금 때문이었다”며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정의로운 전환 기금 조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광역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기금을 조성한 곳은 현재 충청남도가 유일하다. 이 연구원은 “정의로운 전환의 대상자들이 직접 의견을 내고 참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게 실제로 정책에 반영돼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충남연구원의 여형범 연구위원은 지난 4월 7일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포함한 이해당사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계하고 개선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전환이 시대적 과제가 된 가운데 화석연료산업의 노동자, 지역주민, 소비자 등이 부당한 피해를 보지 않게 배려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도 중대한 숙제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가장 값싼 연료인 연탄은 전국의 8만여 빈곤 가구가 ‘생존 연료’로 쓰고, 26곳의 공장에서 고령의 저임금노동자가 생산하며, 그 원료인 석탄은 광업소 4곳에서 ‘골격계나 진폐 환자가 되어가는’ 탄광노동자가 캐고 있다. <단비뉴스>는 정부의 탈석탄 정책이 이들 연탄 소비자, 노동자, 지역주민 등에게도 정의로운 전환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①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②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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