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㊱ 6.1 지방선거도 개발공약이 압도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기후위기가 실종됐습니다. 점점 가시화되는 기후재난 앞에서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걱정을 담아내는 정치를 거대 양당에게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지난 17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열린 녹색당 정당연설회. 김예원(32) 공동대표가 시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6.1 지방선거에서 거대 양당이 기후위기 대응 공약을 제대로 내놓지 않고 여전히 성장과 개발에 매달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맞설 수 있는 정당, 녹색당을 꼭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당원 10여 명은 ‘기후정치 실현하자’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과 손팻말을 들어 올리는 등 퇴근길 시민들의 눈길을 잡으려 애썼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기후공약은 구색용
김 대표의 지적처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양대 정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구색용 공약을 제시했을 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구체적 논의나 실천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단비뉴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마당에 등록된 지방선거 공약을 분석한 결과 양당 모두 ‘기후위기 대응’ 또는 ‘탄소중립’을 언급했으나 지역정치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진전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민주당은 전체 10개 정책목록 중 3순위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디지털·에너지 일자리 대전환정책’을, 국민의힘은 10개 정책 중 8순위에 ‘원전산업 강화 통한 탄소중립 추진’을 제시했을 뿐이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거대 양당이 모두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기후위기 대응 대신 팽창과 성장을 강조하는 개발공약만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한다. 민주당의 경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2018년 기준 40% 감축’을 일단 공약했으나 경제성장을 지속하며 기업 지원을 통해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하는 등 위기 대응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시 재개,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등 ‘원전 최강국 도약’을 앞세울 뿐 어떤 속도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탈석탄 등 시급한 과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중앙선관위에 정책을 제출한 12개 정당 중 정의당·녹색당·노동당은 구체적으로 기후위기 대응방안을 밝혔다. 정의당은 전체 10개 공약 중 4개 항목에서 기후관련 정책을 제시했다. △녹색경제를 통한 지역 발전 동력 확보 △탈탄소사회로의 전환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대중교통 활성화 △친환경 국공립 보육 50% 확대 등이 그 내용이다. 정의당은 특히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0년 대비 50% 이상’으로 명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녹색당은 정치·복지·교통·주거·노동 등 전체 5개 부문 공약에 모두 기후위기를 반영했다. △기후정의 조례 제정 및 기후정의위원회 구성 △지역 재생에너지 자급률 높이기 △그린리모델링 확대 △공공교통망 확충 △지역 상향식 기후일자리 마련 등이 그 내용이다. 녹색당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50% 이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녹색당이 만든 기후정의 조례안은 지역별 현안과 관련한 패키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인데, 공장·산업단지가 밀집한 충남·울산에서는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을, 주거 불평등이 심한 서울에서는 주거복지조례를 중요하게 다루는 방식이다. 지역 상향식 기후일자리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일자리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노동당은 △2035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핵발전 가동 중단 △공공 재생에너지체제로의 전환 등을 기후공약으로 제시했다. 노동당은 특히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강조했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석탄화력·핵발전소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각종 질환 조사 등으로 핵취급시설 주변 주민의 안전을 살피겠다고 약속했다.
정치가 자본에 맞서 기후·환경·인권 지켜야
“기후위기 운동과 기후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치가 기업에 대응하는 겁니다.”
녹색당 서울시의회 비례대표로 출마한 이상현(36) 활동가는 지난 17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정치인이 산업자본을 견제하고 제약을 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치가 기업·산업과 결탁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온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당은 2019년 국내 최대 온실가스 배출기업인 포스코의 서울 강남구 사옥 앞에서 제철소 온실가스 감축을 촉구하고 계열사인 삼척블루파워(구 포스파워)의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을 요구했다. 녹색당에 따르면 포스코는 2017년 기준 7천100만 톤(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는데, 이는 당시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11.3%에 이른다. 삼척블루파워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석탄화력발전소 2기를 건설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해 미얀마 시민항쟁에 연대하는 국제단체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행동’의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산업에 경도된 정부의 행보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당시 시민사회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투자하는 미얀마 가스전이 미얀마의 군부 독재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며 포스코의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중단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 초당적인 협의로 ‘다른 나라 시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 해외자원개발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했으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대해 무산됐다.
이 후보는 “기업들이 자랑스럽게 책임투자를 말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사실상 기업의 이윤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멈출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였다”며 “정치권이 그런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녹색당은 성장 지상주의를 멈추고 더 좋은 삶을 추구하는 정치를 지향한다”며 “이를 위해선 ‘생태적 한계선’이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태적 한계선은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 모델’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치명적 환경 위기를 막기 위한 개발 제한 범위를 말한다.
기후지선 공동행동, 발 벗고 나선 시민들
녹색당원인 김영준(46), 문형욱(35) 활동가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후지선 공동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출범한 기후지선 공동행동은 기후위기기독인연대, 성서한국, 평화누리, 희년함께 등의 단체로 구성됐다. 이들은 전국의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기후정의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후정의 도시, 약속해주세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전국의 광역단체장 후보들에게 ‘기후정의 도시를 위한 10대 약속’을 촉구하고 응답을 받는 형식이다. 응답한 후보자들에 관해서는 홍보용 카드뉴스를 제작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한다. ‘빠띠 캠페인즈’라는 플랫폼에서 진행하고 있다.
후보자에게 제안하는 ‘기후정의 도시를 위한 10대 약속’은 녹색당의 ‘기후정의조례(안)’를 가져온 것이다. △노후건물을 제로에너지 빌딩으로 리모델링 △친환경 대중교통 체계 확립 △반(反)기후 광고 금지 △기후정의위원회 구성 △주민자치권 확대 △시민 참여형 에너지 전환 △정의로운 전환 대책 수립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 실무자 지정 △온실가스 감축 계획 이행을 위한 예산 마련 등이 약속 내용이다. 이 중 반기후광고 금지는 화석연료 수출입 등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제품과 산업의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기후지선 공동행동은 서울·부산·대구·인천시장 후보 등 총 55명의 광역단체장 후보들에게 10대 약속을 촉구해 28일 기준 진보정당(녹색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정의당) 후보 16명의 응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응답한 후보자는 없다.
유럽식 다당제로 가야 기후정치 활성화
“저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정치구조 때문에 기후위기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나라의 정치시스템이 이후의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기후위기의 핵심은 양당제를 만드는 선거제도인 것 같아요.”
김영준 활동가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 체제에선 시민의 여론이 정치적 편 가르기에 소모되기 때문에, 다당제로 전환해 다양한 민의를 반영한 정당들이 의회에서 협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독일, 스웨덴 등 기후위기 대응에 앞서가는 국가들은 대부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녹색당 등 군소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해 민의를 대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 21대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으나 위성정당 난립으로 본래 취지를 잃었다. 지방선거 후에도 기후위기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는 문형욱 활동가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양당 체제가 지속되는 한 기후위기를 막기는 어렵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의지가 있는 제3당들이 힘을 얻어야 해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후정책을 가진 후보에게 투표해달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기후위기시대]
단비뉴스 환경부, 소셜전략팀 유지인입니다.
쉽게 쓰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