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좌담] 동일노동 동일임금, 파견 제한, 비정규직 노조 필요
한국인의 5대 불안 - 근로 빈곤의 현장 <5>

 ▲ 빈곤근로 현장에서 체험하고 취재를 한 노동 특별취재팀이 좌담을 하고 있다. ⓒ 이태희

거친 노동의 현장에서 밥벌이의 고통 느꼈다

 ▲ 김상윤 기자
김상윤(단비뉴스 취재팀장/저널리즘스쿨 2기생): 단비뉴스는 창간특집으로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을 기획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근로 빈곤의 현장을 기자들이 직접 체험한 기록을 전해드렸는데요, 근로 빈곤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취재진 좌담을 통해 우리가 목격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토론해 보겠습니다. 먼저 현장 취재와 보도를 마친 소감부터 얘기해 볼까요?

손경호(2기생): 저는 가락시장에서 일하던 도중에 친구한테서 ‘삼겹살과 파절이를 상추에 싸서 먹고 있다’는 문자를 받은 일이 있어요. 그때 제가 보낸 답신이 ‘이런 빌어먹을 파 같으니’ 였어요. 거친 일을 밤새도록 하다 보니 농담도 거칠어지더라고요. 하지만 근육을 쓰는 경험을 통해 얻은 것도 꽤 있습니다. 며칠 전엔 친구 이삿짐을 나르느라 핸드카를 몰았는데, 친구가 “우와~ 진짜 잘 한다”며 깜짝 놀라더라고요. (웃음) 이번 체험을 통해 정말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들의 소박한 믿음이 현실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보라(2기생): 개인적으로 제가 더 상냥하고, 예쁜 목소리를 가졌다면 고생을 좀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텔레마케터 일을 경험하고 나서 전화 받는 태도는 한결 상냥해진 것 같아요. (웃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서비스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황상호(2기생): 예전엔 아침부터 술 마시는 사람을 보면 인생 패배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해장국에 소주 한 병을 마셔야 잠들 수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근로 빈곤 계층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지 깨달았죠. 밤새 땀 흘리며 청소 일을 하는 50대 중후반의 퇴직자들, 40대의 전직 택배업자 등은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어요.

상윤 : 제 경우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웃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고 할까요? 다들 일이 너무 고되고, 보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죠. 호텔은 서비스업이니까 ‘고객만족’이 기본이잖아요. 하지만 발이 부르트도록 하우스맨 일을 하면서 손님에게 항상 미소를 보인다는 게 쉽지 않더군요. 격무에, 적은 임금, 불안한 미래....... 화려한 호텔의 그늘을 봤다고 할까요.

경호 : 시장사람들도 다들 거칠었죠. 모두 얼굴이 굳어있었어요.


기사에 쏟아진 공감.......비밀로 했던 부모님도 댓글로 격려

상윤: 우리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많은 독자들이 “공감한다”, “가슴이 아프다”,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는 얘기들을 많이 했죠? 손 기자는 부모님께 이런 취재 하는 걸 감췄었다면서요.

▲ 황상호 기자
경호: 부모님께 미리 말씀드리기가 어려웠어요. 대학원에 보내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막노동판에 가 있다고 걱정하실까봐. 나중에 기사가 나온 뒤 어렵게 말씀드렸더니 그날 바로 기사를 보시고는 어머니가 격려의 댓글을 달아 놓으셨더라고요. 뿌듯했습니다.

상호:
제 글에 달린 댓글을 읽어보니,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보라
: 저는 최대한 엄살떨지 않고 쓰려고 노력했는데요, 그래도 제가 느낀 감정들이 글로 전달이 됐던 모양이에요. 제 기사를 보고 많은 분들이 텔레마케터의 애환을 이해해주시고, 공감해주셨습니다. 판촉전화를 친절하게 받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예전처럼 전화를 ‘뚝’ 끊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고요.

상윤 : 호텔에서 일한다고 하면 대부분 드라마 <호텔리어>에 나온 배용준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나 봐요. ‘하우스맨의 실상을 접하고 보니 서글프다’는 반응이 많았고요, 서비스하는 분들이 불친절한 게 꼭 그분들의 잘못만은 아니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대안이 뭘까 하는 질문들을 하셨는데요, 근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OECD 하위 수준 최저임금 현실화해야  

상호 :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최저임금 현실화를 꼽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1개국 중 17위이고 국제노동기구(ILO) 59개 국 중 48위입니다. 아주 낮죠. 노동계가 주장하는 것은 평균임금의 절반을 달라는 것인데요, 현재 30% 안팎인 최저임금 수준을 당장 끌어올리기 힘들다면 단계적으로라도 인상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보라 : 맞는 얘기죠. 하지만 경영계에서는 최저임금을 인상할 경우 영세업체나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받는다며 반대하고 있죠. 

상호 : 최저임금을 올리면 영세중소기업들이 타격을 받는다고 하는데,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실태조사를 보면,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원자재 등 제조원가 상승과 자금 등 유동성 확보의 어려움입니다. 임금도 생산비용 중 하나지만 최저임금 인상 부담은 부차적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대기업이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등 중소기업의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불공정 관행을 고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하겠습니다.

상윤 : 장귀연 전국불안정 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정규직노동조합이 비정규직노동자의 가입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고, 노조가 가입을 허용한다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가입을 꺼리기도 하죠. 어차피 한 회사에 오래 다닐 가능성이 적으니까요. 그래서 장 위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산업별 혹은 지역별로 만들어서 비정규직의 권익을 지키자고 제안했습니다. 건설산업 노동조합은 이런 방식으로 노조를 조직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 이보라 기자
보라 : 프랑스의 노조조직률은 한국보다 낮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은 90%가 넘는다고 합니다. 단체협약이 산업별로 적용되기 때문에 비노조원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꼭 관철해야 할 중요한 원칙입니다. 어떤 자동차 공장의 경우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만들고,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만든다고 합니다. 똑 같은 일을 하는데도 비정규직은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 게 현실이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말 그대로 같은 일을 할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같은 임금을 줘야한다는 말인데, 이 원칙만 지켜져도 비정규직 문제가 훨씬 개선될 것입니다.
 

경호 :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우리나라 고용안전망은 고용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 둘 중 어떤 쪽의 혜택도 보지 못하는 노동자가 약 8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전체 취업자의 35%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제2의 고용안전망이 절실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취업자에게 소득을 보전해주고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근로유인정책을 쓰는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안전망 확충, 직접 고용 확대해야

상호 : 호텔의 하우스맨이나 공공건물의 청소 일처럼 항상 고정적으로 필요한 일은 직접 고용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 3월 일본은 제조업체에 대한 파견을 금지하는 등 근로자 파견 요건을 대폭 강화한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현재 32개로 제한되어 있는 파견근로 대상 업무를 최대 49개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죠. 거꾸로 가고 있는 셈입니다.

경호 : 한국노동연구원의 은수미 연구위원은 앞으로 2년간 2조원 정도를 정규직 전환기금으로 쓰면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이 상당히 진전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일본은 파견 근로자를 정규직이나 6개월 이상의 기간제 근로자로 전환시킬 경우 사업주에게 1인당 130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단계적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윤 : 불법 파견의 성격을 갖는 사내하도급에 대해 규제하는 방안이라도 우선 법 조항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불법파견을 하다가 걸리면 즉시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죠.

보라 : 텔레마케터의 경우 유럽연합(EU)은 지난 2004년에 콜센터 업무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노사선언이 이뤄졌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권위의 실태보고서가 나온 지 2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정부차원에서 현실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하고, 각 회사차원에서도 성희롱이나 폭언을 하는 고객에 대한 대응 매뉴얼 등 체계적인 대응 방안이 있어야 합니다. 텔레마케터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휴게시설 등 복지 대책도 필요하죠.

▲ 손경호 기자
경호 : 시장 노동자와 같은 임시직, 일용직들은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적은 임금과 일자리 불안으로 가정을 꾸리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장기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가 전국적으로 490만 명, 전체 비정규직의 60%나 되는데 말이죠. 임시직, 일용직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거리가 없으면 대책 없이 놀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 아닌 취약노동자 계층으로 분류해 관리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정부가 최근 들어서 근로장려세제, 미소금융과 같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자격요건이 까다로워 혜택을 받는 이들이 적은데, 보다 실질적인 대안이 나와야 합니다.

상윤 : 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쓴 기사가 그들의 막막함을 얼마나 풀어 줄 수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 제가 취재후기에도 썼지만,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 한 컵의 물을 붓는 것만큼이나 미약한 노력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 컵 한 컵 자꾸 붓다보면 어느 새 불길이 잡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세상이 움직이는 그 날까지’ 단비뉴스는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특별취재팀 / 김상윤, 손경호, 이보라, 황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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