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3.26 기후정의 시민불복종 집회

지난 26일 오후 2시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두산중공업 사옥(두산타워) 앞. 바람이 거세게 부는 거리에서 남녀 청년 50여 명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몇 분 뒤 ‘두산 경비원’ 역할을 맡은 한 남성 활동가가 “여기 사유지인 거 몰라, 사유지! 뭔데 이러고 있는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자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로켓단’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동시에 청년기후긴급행동의 이나경, 오지혁 활동가가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가 누구인지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지구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분노로 세상의 진실을 알리는, 김공룡과 친구들! 크아아~앙!”

사회를 맡은 두 활동가의 익살맞은 촌극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이 주관한 ‘3.26 기후정의 시민불복종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들고 의자에 앉거나 서서 무대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조용하고 느린 학살 석탄발전 중단하라’ ‘SHAME ON DOOSAN’(부끄럽다 두산) ‘무늬만 친환경 위장 환경주의’ 등의 구호가 쓰인 손팻말을 흔들기도 했다. 

석탄발전소 짓는 기업의 ‘위장 환경주의’ 비판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두산타워 앞에서 열린 ‘3.26 기후정의 시민불복종 집회’에서 진행을 맡은 이나경(왼쪽), 오지혁 활동가가 스프레이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목은수

이날 집회는 두산중공업이 청년 활동가들에게 184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을 규탄하기 위해 열렸다. 강은빈(24)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와 이은호(32)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은 지난해 2월 두산타워 앞에 있는 회사(DOOSAN)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뿌린 뒤 조형물 위에 올라가 ‘Shame on DOOSAN, 최후의 석탄발전소 내가 짓는닷!’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쳤다. 두산이 환경 중시 경영을 내세우면서도 한국전력과 함께 베트남에서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두산중공업은 ‘조형물에 묻은 페인트가 지워지지 않아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며 활동가들을 형사고소하고 민사소송도 제기했다.(‘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형사소송 1심을 맡은 성남지원 방일수 판사는 이은호, 강은빈 활동가에게 각각 300만 원과 2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민사소송은 지난 23일 성남지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는데, 재판부는 활동가들이 사용한 수성페인트의 세척 가능성 등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은호 위원장은 이날 집회에서 “현행법은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모두의 터전인 지구생태계를 보살피는 데에는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기업이 착취적으로 돈을 버는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이기 이전에 물과 공기와 땅,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과 연결된 지구생태계의 일부”라며 “법질서 역시 지구 자연의 생태적 질서에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은빈 대표는 “비폭력 직접행동은 거대한 권력 앞에 저항하는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되는 세상을 바라기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는 직접 싸우고 행동하며 법과 상식을 되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 두산중공업과 맞선 기후재판의 당사자인 이은호(왼쪽), 강은빈 활동가가 집회에서 성명서를 읽고 있다. ⓒ 목은수

‘기후악당’ 기업과 국가에 맞서 ‘기후정치’ 필요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집회 발언을 통해 “(두산중공업은) 삐까번쩍한 건물을 세워놓고 잘나가는 기업인 것처럼 시민 앞에 나서있지만, 마지막까지 석탄화력을 수출하고 있는 기후악당 기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은 기후위기를 더 심화시키는 명백한 기후악당 국가”라며 기후정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집회 연설에서 기후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 김은송

올해 초 출범한 노년층 기후위기 대응조직 ‘육십플러스(60+)기후행동’의 활동가들도 연대했다. 윤정숙 공동운영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경제성장이 국가발전의 최고 덕목이고 낙수효과로 잘살게 된다는 걸 금과옥조로 배웠다”며 “수십 년 지나 보니 한국은 탄소배출 7,8위의 국가가 되었고, 작은 나라에 석탄발전소가 57개나 가동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혹독한 대가를 다음 세대에게 넘겼다”며 “기후위기의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이념, 지역, 종교의 경계를 떠나 모든 세대와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 노년층으로 구성된 기후위기 대응조직 ‘60+기후행동’의 활동가들이 ‘두산,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가 지켜볼 것이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 김은송

당당하게 저항하고, 유쾌하게 싸운다

참석자들의 분노는 컸지만, 집회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우리가 함께 행동할 때 삶은 더 의미있고 훨씬 더 재미있을 것입니다.” 성명서를 이렇게 마무리한 강은빈 대표는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나오는 노래 <우리의 꿈>을 개사해 불렀다. 기후행동 활동가들은 스프레이를 뿌린 두산 로고를 박자에 맞춰 흔들었다.

“내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믿지 못할 한마디. 기후위기 심각하단 절망적인 얘기. 거센 바람 높은 파도가 우리 앞길 막아서도 결코 두렵지 않아.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재판들, 밝은 내일 위한 거야. 셰임 언 두산(SHAME ON DOOSAN)!”

▲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노래 <우리의 꿈>을 개사해 부르고 있는 강은빈 대표. ⓒ 목은수

약 한 시간 동안 연대사 및 자유발언이 이어진 뒤 참석자들은 손팻말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두산타워를 한 바퀴 돌았다. 환경운동 네트워크 ‘멸종반란한국’의 랑(활동명)은 ‘지배자들’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참석자들을 이끌었다. “지배자들, 지구 말아먹고 등쳐먹은 지배자들~. 다 꺼져 다 꺼져~ 하!”

▲ ‘3.26 기후정의 시민불복종 집회’ 참석자들이 행사를 마치고 두산타워를 한바퀴 도는 행진을 한 뒤 다시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은송

이날 집회는 단체촬영 및 그룹별 소감 나누기를 마친 후 오후 4시 무렵에 끝났다. “기후 악당 보복소송, 우린 계속 나아간다. 안 두렵다 보복소송, 기후운동 계속된다.” 참석자들은 강은빈, 이은호 활동가가 스프레이를 뿌렸던 조형물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편집: 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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