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 오전 8시 경북 영주시 휴천동 강원연탄. 200평 남짓한 공장 안에서 연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고, 시커먼 석탄 가루가 뿌옇게 흩날렸다. ‘시끄러운 음악 수준’인 84데시벨(dB) 이상의 소음이 내내 귀를 괴롭혔다. 출하 대기장에서는 연탄 소매업자 10명이 갓 나온 연탄들을 3.1톤(t) 트럭에 싣고 있었다. 1972년 문을 연 이 업체는 2018년까지만 해도 하루 최대 8만 장까지 연탄을 생산했지만, 현재는 2만~3만 장 정도로 생산량이 줄었다. 매출액은 연 40억 원 정도인데 재고 물량과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고, 때로는 비참하기까지 하다. 영화 <올드보이> <버닝> <기생충>은 현대인의 삶을 영화에 반영했다. 저널리스트는 현실을 기반으로 뉴스를 만들어낸다. 영화와 저널리즘은 현실의 맥락을 담아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현재 한국 언론이 봉착한 뉴스의 깊이 문제와 밀접한 이야기다.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저널리스트와 아티스트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문학평론과 영화평론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2018년부터는 KBS <저널리즘 토크쇼 J>를 통해 저널리즘 비평으로
“부산진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차는 바다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하여 몸을 뒤로 뻗대었다. 초량역에서 본역까지는 거의 한 걸음을 재듯 늑장을 부렸다. (중략) 끝의 끝, 막다른 끝, 거기서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지고 마는……” 김동리가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간 예술인들을 소재로 한 단편 <밀다원 시대>에서 부산을 묘사한 대목이다. 부산은 6·25전쟁 때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오면서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서울과 이북 등에
“엄마가 부탁할게. 나은아 자리에 좀 앉아봐 제발…”2020년 12월 11일 오전 9시 30분, 충북 제천에 사는 이나은(가명‧12) 양과 엄마 최은희(가명‧41) 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원래 학교에 갈 시간이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함에 따라 부분적 등교가 시행됐고, 나은이는 일과 대부분을 집에서 보낸다. 나은이는 학교에 가지 못해 짜증이 부쩍 늘어났다. 모녀는 아침부터 서로 언성을 높일 때가 많다. 최 씨는 외부 활동이 전무한 나은이를 보는 일이 힘에 부친다.10시 30분, 나은이의 식사가 끝나면 최 씨는 막막하다. 덧셈과 뺄셈 같
김이듬 시인을 인터뷰하려고 10월 중순 경기도 고양에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불길한 느낌이 들어 가방을 뒤적거렸다. 인터뷰 대상자의 시집을 기숙사에 두고 온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 넉넉해 지하상가 서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쐬는 바깥 공기였지만, 고양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었다. 걷는 도중에도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했는지 확인했다. 지하상가 모습은 좀 충격적이었다. 성인 앉은키 정도인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음식점과 꽃집, 교복가게가 마주 보고 있었다. 상가 출입구는 세 곳이었는데 체온을 측정하거나 명부를
지난 5일 오전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산내 골령골로 가주세요” 하자 택시기사가 힐끗 돌아보며 혼잣말처럼 툭 던졌다. “대전 사람들도 잘 안 가는 곳인데…”. 그도 초행길인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대전역에서 동남쪽 옥천 방향으로 30분쯤 달려 도심을 빠져나가자 건물과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난 왕복 2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택시가 임마누엘교회 앞에 이르자 표지판 하나가 나타났다. ‘이곳은 대전교도소 보도연맹 산내 학살 현장입니다.’
빈 벽을 향해 고무줄을 튕기다 한순간 터져버렸다. 힘을 준 탓이다. 고무줄 같은 삶을 생각한다. 기상 오보는 가끔 신뢰를 되찾는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24시간을 전부 생산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지구의 역사는 빙하도 지금까지는 팽창과 축소를 반복해왔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모든 물건에는 탄성 원리가 작용한다. 일정한 응력을 주면 되돌아가려는 힘이 동시에 작동한다. 한계도 분명하다. 내가 날린 고무줄은 탄성한계를 초과해 터진 것이다. 극지방의 빙하도 이젠 탄성을 회복하지 못할 것 같다. 인류는 자연을 고무줄로 착각한 것이다. 힘
“떠나고 싶어 떠난 것이 아니었어요. 고향에선 살아갈 길이 없어 밀려나듯 연해주로 건너갔는데, 흘러 흘러 수 만리 먼 카자흐스탄까지 쫓겨난 거지요. 할아버지가 그렇게도 그리워한 조국에 돌아오려는데 그게 떠나기보다 더 힘들어요.” 카자흐스탄에서 방문취업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 3세 김 스베틀라나(Kim Svetlana∙55) 씨는 지난 10월 30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고국에 사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 2019년 2월 한국에 들어와 경북 경주시 성건동 고려인 마을에 있는 ‘경북고려인통합지원센터’에서 통역과
중앙아시아까지 쫓겨난 고려인들…110년 만의 귀국지난 2014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예막심(Ye Maksim∙21) 씨는 고려인 4세다. 그의 증조부는 1890년대 말 가족을 이끌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했다. 증조부는 할아버지와 함께 블라디보스톡에서 황무지를 개간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으로 쫓겨났다. 그곳에 정착한 증조부와 할아버지는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어렵고 힘든 세월 속에서 예 씨의 아버지(54)를 낳았고 막심 씨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다.
전태일의 고향, 대구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이 온몸을 던져 분신하며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는 한국 노동사의 상징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하나의 역사다.전태일은 1948년 대구 중구 동산동에서 태어났다. 그가 대구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잠시 부산과 서
늦은 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장 부산으로 와주면 안 되겠냐는 연락이었다. 다음 날 오전에 아르바이트가 있어 부담스러웠지만, 밤 9시 넘어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 번도 무리한 부탁을 한 적이 없던 친구였다. 어렵게 탄 심야버스는 뻥 뚫린 도로를 달렸다. 고요한 버스는 생각에 잠기기 좋았다. 생각하다 보니 친구에게 궁금한 점이 많아졌다. 터미널에서 만난 친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방학을 맞아 배달플랫폼 업체에서 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초보답게 작은 실수를 종종 저질렀지만, 그럭저럭 잘해왔다고 한다. 그
짐 자무시와 패터슨 짐 자무시 영화는 마니아층이 두껍다. 그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영화감독이다. 문학 작품을 보는 듯한 시놉시스와 아름다운 영상미 덕분이다. 미국 인디 영화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상업영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세계관을 추구하고, 무엇보다 영화 속 대사가 시 같다. 2016년 개봉한 영화 <패터슨>은 그가 창작자로서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난해한 구성에서 벗어나, 미국 소도시에서 누구나 겪는 일상 풍경들을 그만의 클리셰로 그려냈다. 영화 <패터슨
‘침묵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지난 4일 끝난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2> 선전 문구다. 시즌1은 재벌가와 검찰의 유착 관계를 추적하는 줄거리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시즌2는 검·경 대립을 중심으로 극을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다. 제작자는 극 중 사건이 실화가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우리가 목도해온 한국 사회의 이면과 닮았다. <비밀의 숲>이 시청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이유는 작품성만이 아니다. 극에 집중하다 보면 문득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침묵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가?” 극 중 질문은 자신
“상을 하나라도 받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개나 받은 건 기적이고, 꾸준히 시를 써가라는 질책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책방 운영도 힘들고, 책 처방을 오랜 기간 해오며 자존감과 용기를 잃어버린 시점이었는데, 단비 같이 상상도 하지 못한 기쁜 소식이 두 개나 들려와서 굉장히 기쁘고, 얼떨떨한 기분이에요.” 16일 새벽 ‘전미번역상(ALTA National Translation Awards)’과 ‘루시엔스트릭상(ALTA Lucien Stryk Asian Translation Prize)’ 수상작 동시 선정 소식을 들은 김이듬(51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아버지 살이 닿았다나는 벽에 붙어 잤다아버지가 출근하니 물으시면늘 오늘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골목을 쏘다니는 내내뒤를 돌아봤다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세상에는 벽이 많았고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아버지의 기름때 절은 작업복을 물로 헹구며, 최지인의 시 ‘비정규’가 떠올랐다. 퇴근 시각이 불규칙한 아버지는 당신을 기다리는 걸 싫어했다. 아버지는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것처럼 살았다. 나는 기다릴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버지를 기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