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아포리아'

▲ 양수호 기자

언젠가 살고 싶은 거주 형태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다. 내 대답은 ‘아파트’. 최근에 지은 아파트는 바깥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설계됐다. 마트와 독서실, 헬스장, 목욕탕, 수영장은 ‘살기 좋은’ 아파트라면 갖춰야 할 필수 시설이다. 아파트에는 재미있는 기원이 있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투영돼 있다. 

아파트는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만든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최초의 형태이나, 사실 사회주의자들이 고안한 주택 양식이다. 이들은 인간의 적성을 800개로 보았고, 1,600명이 공동으로 살 수 있는 ㄷ자 모양 집합공동체 사회를 꿈꿨다. 초기 아파트에는 주로 노동자들이 살았고, 서구에서 빈곤층 거주지로 인식됐다. 아파트가 상징하는 바가 많은 자본주의 사회와 한국을 대조하면 흥미롭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살기 좋아서 이토록 열망하는 걸까? 토지와 세금, 주거 정책을 종합한 부동산 정책을 아파트 정책으로 총칭하는 것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동산 정책의 흐름을 비판할 때는 논란 거리가 된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사는’(Live) 의미보다 ‘사는’(Buy) 의미에 가깝다. 숱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아파트를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 종부세가 강화되고, 임대차 3법이 통과됐지만, 신뢰를 잃은 부동산 정책은 역풍을 맞았다. 언론은 정권 지지율 하락을 부각하고, 정권은 언론 눈치를 본다. 소극적일수록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부동산 정책이다. Ⓒ Pixabay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길은 하나이고, 사유는 그 길을 걷는 도중에 존재한다. 과거 정권들의 숱한 부동산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로 보이는 건 하나의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중 자아가 분열되는 일도 잦았다. 여당 국회의원과 정부 관료들이 강남과 부자 동네의 부동산 재산을 다수 보유한 사실이 드러난 건 스스로 자아가 분열된 탓이다. 신뢰를 잃어버려 정책 추진력이 반감됐다. 

부동산 정책이 가야 할 길은 하나다. 부동산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고, 무주택자를 위해 주택 공급망을 늘려 무주택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면 부동산 정책은 성공이다. 하지만 길을 걷는 도중에 주위를 살피고, 때론 길을 잃기도 한다. 종부세가 강화되고, 임대차 3법이 통과됐지만, 신뢰를 잃은 부동산 정책은 역풍을 맞았다. 언론은 정권 지지율 하락을 부각하고, 정권은 언론 눈치를 본다. 소극적일수록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부동산 정책이다.

정부의 임대차 3법으로 임대사업자 상당수가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피해를 본 듯한 피해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종부세, 공시가, 부담금 등도 마찬가지다. 일정 규모 부동산을 소유해야 피해를 봤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도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다. 정부처럼 국민들도 길을 헤매고 있다. 부동산 정책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존재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막다른 곳에 다다른 상태를 ‘아포리아’라고 말했는데 25번 나온 부동산 정책도 그런 상태에 이른 것 같다. 엉뚱한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집을 사기 위해 영혼을 끌어모으는 사회다. 집을 소유하려고 빈약한 자산을 긁어  모아 담보로 잡히고 대출한다. 구직, 주식, 부동산 등 절박한 생계 수단들이 영혼을 운운하게 만든다. 길이 보이지 않는 사회에는 선동과 부화뇌동이 난무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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