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힘’

▲ 김태형 기자

뉴턴 이전, 힘이란 물체가 가지는 본성이었다. 돌이 떨어지는 이유는 돌이 가지는 본성 때문이다. 이 생각 속에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나누는 시각이 있다. 천상계는 불변하고 지상계는 변화한다. 지상계는 흙, 물, 불, 공기 등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흙이나 물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물체는 우주 중심으로 다가가는 성질이 있고, 불이나 공기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물체는 우주 중심에서 멀어지는 성질이 있다.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거나 하늘로 날아가는 이유는 이런 성질 때문이다.

뉴턴 시대, 힘이란 두 물체 간 상호 작용이었다. 그는 천상계 행성들이 타원 궤도를 그리는 데 주목한다. 그는 타원 운동이 법칙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지구와 행성이 서로 당기는 법칙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나누는 게 아니라, 만유인력 법칙 아래 두 세계를 합하는 시각이 있다.

뉴턴 이후, 힘이란 시공간 곡률이다. 태양이 우주 공간에 있다면 그 질량으로 태양 주위 공간이 휘어진다. 태양보다 무거운 물체는 공간을 더욱 휘게 한다. 그곳에 접근하는 물체는 더 심하게 휘어진 공간 속을 이동한다. 뉴턴이 질량 크기에 비례해서 중력이 커진다고 했는데 그 현상을 과학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는 시공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시공간이 법칙을 갖고 개입해 멋진 신세계를 구축한다. 초월적 힘이란 없다. 과학 법칙만 작용한다.

현대에 힘이란 과학 법칙이다. 과학 법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과학만능주의다. 프랑스는 남태평양에서 30년간 핵실험을 210번 했다. 목표는 에너지 패권이다. 구글은 게임에서 계속 알파고 실험을 한다. 목표는 인공지능이다. 그러나 과학만능주의는 옳지 못하다.

첫째, 많은 인명을 살상한다. 프랑스가 핵 실험을 한 섬 주민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암 발생률이 몇십 배 높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방사능으로 31명이 죽고, 피폭으로 7,000명이 사망하고 70만명이 치료받은 참극이다. 고리원자력발전소도 방사능을 누출했다.

▲ 과학 법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만능주의'는 옳지 못하다. ⓒ flickr

둘째, 인류를 위협한다. 인간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하지 못한다. 바둑에서 알파고는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수를 놓는데, 이는 승리에 방해가 되는 변수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 과정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기에 마치 악수처럼 보이는 것이다. 옥스퍼드대학은 인공지능이 출현하면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 예측을 한다. 인공지능 학자들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하나가 되어 인류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학자들도 인류와 기계가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만 낙관한다. 인간이 기계를 통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Singularity) 상황에 대비하는 인재를 키운다는 취지로 ‘특이점 대학’을 설립한다.

단일한 힘이란 없다. 중세 말 오컴은 단순성 원리를 강조했다. 현상을 설명하는 주장이 여러 개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 생각은 현대에 더욱 강화된다. 대통일 이론이 그것이다. 이는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일한 힘이라는 단순 이론으로 환원한다는 주장이다. 과학이 힘이고 그것이 모든 것이다. 과학만능주의다.

하지만 뉴턴 이전이든, 뉴턴이든, 그 후든, 모든 힘을 통일한 과학이란 없다. 아인슈타인도 통일 과학을 추구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래서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보이지 않아 자주 무시하는 윤리다. 윤리가 바로 우리의 당면문제를 푸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원전공론화위원회는 의미 있는 성과다. 힘이란 과학과 윤리다. 보이기도 보이지 않기도 하는 힘이다.

* 김태형 기자는 저널리즘스쿨 입학예정자입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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