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이택광 경희대 교수
주제 ② 반지성주의란 무엇인가

“사촌이 땅을 사면 왜 배가 아플까요?”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속담에 관한 질문으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사촌이 ‘능력’이 뛰어나서 산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샀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배가 아픈 것이라 말했다. 또한 ‘내가 능력이 뛰어난데 ‘흙수저’라서 안 되는 거다, 내가 ‘금수저’였으면 쟤랑 똑같은데...‘와 같이, 부모님 배경에 따라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사회 현상도 같은 논리라고 말했다. 능력에는 차이가 없다는 점이 ‘반지성주의’의 핵심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 이택광 교수가 ‘반지성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안윤석

지식인의 지식인 비판

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반지성주의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부동산사업가인 트럼프가 아이비리그 엘리트의 상징인 힐러리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언론들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대중이 지식인을 믿지 못하는 ‘반지성주의’가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한국에도 퍼지고 있는 ‘반지성주의’를 달리 해석했다.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대학을 비판합니다. 대학교수 집단이 교수를 비판하고, 정치인들이 정치를 비판하죠.”

이 교수는 반지성주의를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지식인 비판”이라고 정의했다.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 또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지식인에 반감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대학생 친구가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다가 온통 한자투성이인 법 조항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던 전태일 열사가 일기장에 적은 글을 예로 들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지식인이 옆에 있으면 자기한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지식인이 될 수 있어”

‘자기와 같은 정도로 현명한 인간이 허다하다는 사실은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불평등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평등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홉스, 리바이어던)

이 교수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는 18세기 홉스의 통찰과 일치한다. 전태일 열사를 비롯해 70~80년대 많은 희생과 투쟁으로 근로 환경은 나아지고 사회는 발전했다. 대학진학률은 70%에 이른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학식을 쌓을 수 있다. 따라서 지적 능력을 타고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중은 화가 나는 것이라 말했다. 반지성주의자들이 보기에 지식인들은 이를 망각하고 자신들만 잘났다고 착각한다. 이 교수는 반지성주의의 토대는 홉스가 주장한 '평등'이라고 강조했다.

▲ 영화 <강박관념>과 <바다냄새 하는 여인>은 사랑에 신분 차이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영화 포스터

이 교수는 홉스의 평등사상을 영화 <강박관념>(Ossessione, 1943)과 <바다냄새 나는 여인>(Salt On Our Skin, 1992)을 소개하며 설명했다. 두 영화는 신분 높고 아름다운 여자가 야만적이고 신분이 낮은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로, 사랑은 계급을 뛰어넘는다는 반지성적 프레임이 깔려 있다.

▲ <빅뱅이론>과 <지대넓얕> 이미지. ⓒ 드라마 포스터, 책 표지

이 교수는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The Big Bang Theory, 2007~) 시리즈가 반지성주의를 잘 보여준다고 예시했다. <빅뱅이론>은 엘리트의 속물성을 조롱하며 천재들을 비꼬는 코미디 드라마다. 엘리트층 박사와 교수들을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식당에서 일하는 금발 여자보다 똑똑하지 않게 묘사한다. 또한, 올해 1월 출간된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된 배경도 언급했다. 반지성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책만 읽으면 누구나 지적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을 호소했기 때문이라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반지성주의는 돈 때문이에요”

이 교수는 언론이 반지성주의를 확산시킨다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반지성주의가 겨냥하는 가장 큰 세력은 언론이며, 반지성주의를 퍼뜨리는 것도 언론이다. 왜 그럴까? 반지성주의를 연구한 미국 학자 러셀 제이콥은 책 <마지막 지식인들(the last intellectuals)>에서 '프로젝트용 학자'를 비판한다. 프로젝트용 학자란 학문 어젠다나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일하는 학자를 가리킨다. 이 교수는 언론으로 치면 ‘기레기’라고 설명했다.

▲ 반지성주의를 비판적으로 연구한 러셀 제이콥의 <마지막 지식인들>을 소개하는 이택광 교수. ⓒ 안윤석

"결국은 돈 때문이에요. 언론은 조회 수가 나와야 광고를 주니까 관심이 낮은 기사는 실을 수 없죠. 앞으로 직장으로서 언론만 남을 거예요. 우리나라 언론에 전문성은 없어지고 있죠. 예전에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고 했어요. 요즘은 이상조차 존재하지 않아요.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이 교수는 과거에 언론이 사회적으로 의의가 있고 정치적 문제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클릭 수를 높일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언론의 상업주의는 언론인, 곧 지식인을 비판하는 반지성주의를 확산시킨다.

민주주의의 역설

"정치인에게 문자폭탄을 보내는 사건을 시민의 정치참여라고 하는데, 맞습니다. 그런데 왜 폭력적인 양상으로 나타날까요?"

기존 지식인이나 정치인을 믿지 못하는 반지성주의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한다.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민주주의의 역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개개인이 주권을 가진 통치자가 되는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전체주의 양상이 나타난다고 짚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시민이 정치인에게 직접 전화해서 요구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반대도 가능하죠. 대통령이 전화해서 우리에게 명령할 수도 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이 사라질수록 권력에 쉽게 노출돼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가 오는 거예요."

이 교수는 국가와 개인 사이의 거리를 ‘자유’라고 설명했다. 그 거리가 가까울수록 자유롭지 못하고, 멀수록 자유롭다. 민주주의가 발달해서 개인의 권리가 강해질수록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 교수는 시민의 정치참여를 강조하는 제도적 민주주의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고 봤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이상적 민주주의를 함께 고려할 것을 강조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희진 김한솔 신형철 나영석 이택광 유진룡 김종철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장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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