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장소’

▲ 황금빛 기자

19세기 수도는 프랑스 ‘파리’다. 20세기 수도는 미국 ‘할리우드’다. 영화문화에서는 그렇다. 두 도시에는 차이가 있다. 도시와 시각문화를 연구하는 바네사 슈와르츠는 <구경꾼의 탄생>에서 파리는 ‘실제로 있는 장소’이고 할리우드는 ‘실재하지 않는 장소’ 곧 ‘꿈의 공장’이라고 썼다. 쉽게 말해 파리는 문화·예술이 자연스레 싹트고 문화가 소비되는 곳이다. 반면 할리우드는 철저하게 문화 소비를 위해 계획된 도시다. 다시 말해 로스앤젤레스를 유명하게 만들고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돈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사회에서 도시는 이제 ‘팔기 위한 장소’다. 그래도 할리우드는 나은 편이다. 미국 문화를 팔기 위해 만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외국 문화를 팔기 위한 장소를 만든다. 한국에는 곳곳에 영어마을이 있다. 한국과 유럽은 멀지 않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 지중해 마을 등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몇 년째 표류하고 있는 춘천 레고랜드는 덴마크에서 들여왔다. 아직 한국에 디즈니랜드가 들어오지 않은 것은 다행일지 모른다.

▲ 파리는 문화·예술이 싹트고, 자연스레 문화가 소비되는 곳이다. ⓒ flickr

우리의 공간도 예전에 조성된 곳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 케이블 방송 인기 프로그램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는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여행을 한다. 독일에서 온 친구들은 경주에 갔다 감탄한다. 기와로 된 주유소 지붕에 넋을 잃고 불국사에서는 유럽의 공원을 비교한다. 유럽은 대칭적이고 자연이 조경돼 있는데, 불국사는 자연에 동화돼 있다는 거다. 멕시코에서 온 외국인들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조계사였다. 

<구경꾼의 탄생>에서 저자가 말한 파리와 할리우드라는 두 공간에는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사람들의 ‘연대’다. 실재하지 않는 장소인 할리우드는 사람들이 도시 속에서 결집하도록 장려하지 않는 공간이다. 파리는 다르다. 사실 파리는 문화예술의 도시이면서, 빈부격차가 있는 서쪽과 동쪽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1894년 최초로 사회주택 관련법을 제정한 곳이기도 하다. 단지 ‘팔기 위한 도시’로 계획됐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19세기 파리를 다룬 영화에서 낭만과 따뜻함, 사랑 등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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