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청소년기자학교 8주간의 행복

“내가 정말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첫날 강의실에 들어선 학생들의 표정엔 어색함이 가득했다. 처음 보는 학생과 선생님, 현수막에 큼지막하게 쓰인 ‘기자’라는 단어는 학생들을 설레면서도 떨리게 했다. 하지만 수료식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어느덧 ‘진짜 기자’가 되어 있었다.

지난 10월 28일 개강식을 한 제1기 청소년행복기자학교가 8주간 여정을 마치고 12월 23일 수료식을 했다. 청소년행복기자학교는 제천교육지원청·지속가능발전협의회·행복교육추진단·생태누리연구소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운영했다. 학생들이 미디어와 사회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을 기르고 진로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개설된 기자학교는 매주 토요일 2시부터 4시까지 진행했다. 교육은 국내 유일의 정규 저널리즘스쿨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중고교생 눈높이에 맞춰 진행했다.

▲ 행복기자학교 개강식이 10월 28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열려 8주간 교육에 들어갔다. ⓒ 박수지

“입은 닫고 귀는 여는 게 기자”

시험을 앞둔 교실처럼 조용하던 강의실은 개강식 직후 이어진 세경대 미술심리치료과 이순득 교수의 ‘사회성·자존감 향상’ 수업으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강의를 통해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마음의 중요성을 배웠다. 박지은(제천여고2)양은 “처음에는 조금 서먹했는데 강의도 재미있고 앞으로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 세경대 이순득 교수가 ‘사회성과 자존감 향상’을 주제로 강의중이다. ⓒ 주동철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쉰 뒤 이봉수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의 강의가 이어졌다. 이 원장은 “기자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청하는 사람”이라며 “입은 닫고 귀는 열어야 사실 보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터디룸 이름을 '글감옥' ‘아침이슬' '새벽별' 등으로 붙여놓을 만큼 이봉수 원장의 글쓰기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대학원생들이 제출한 기사나 칼럼 초고도 빨간 펜으로 첨삭해 ‘피투성이’ 원고로 돌려준다. 하지만 그는 “글 쓰는 것을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훈련을 통해 기자가 될 수 있다”며 기사 쓰는 것을 걱정할 수도 있는 학생들을 다독였다. 이채린(내토중3)양은 “교수님께서 학생을 위해 쏟는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다”며 “나도 열심히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 이봉수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좋은 글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의 중이다. ⓒ 주동철

‘방송뉴스제작’ 강의를 맡은 저널리즘스쿨 김문환 교수는 ‘적극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자로서 리포팅 할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큰 목소리로 자기 의견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며 “학생들이 매사에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문 기사와 달리 더 간결하고 압축적인 방송 뉴스 기사 작성법과 기사 내용에 알맞은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 리포팅 방법 등을 가르쳤다.

청소년다운 아이템 쏟아진 편집회의

이봉수 원장은 “좋은 기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찾는 것”이라며 “영향성, 시의성, 저명성, 근접성, 갈등성, 신기성이 뉴스의 가치와 생명을 담는 기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이론 강의 후 이뤄진 실습 강의에서 이봉수 원장의 말처럼 ‘주변에서 아이템을 찾아’ 직접 취재에 나섰다. ‘제천의 문화유산’ ‘포토존’ ‘청소년 화장’ ‘급식체’ 등 아이템을 자유롭게 내고, 2~4명씩 조를 짜 취재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했다. 취재와 기사작성, 촬영과 편집을 돕는 데는 저널리즘스쿨에서 운영하는 <단비뉴스>의 취재부장들이 나서서 튜터 구실을 했다. 학생들이 작성한 기사는 튜터와 교수의 첨삭을 거쳐 완성했다.

세명고 2학년 박수빈양과, 유민균군은 제천의 숨겨진 문화유산인 ‘장락사지’를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유민균(세명고2)군은 “문화재 지킴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장락사를 답사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곳을 방문한 방문객들을 거의 보지 못했고, 제천시민에게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장락사를 취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취재를 위해 열 번 이상 장락사에 다녀왔다. 민균군은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 기사를 볼까 구상하는 것이 고민스러웠다”고 말했다.

“기자의 꿈에 더 가까워졌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사단법인 <단비뉴스>가 뉴스를 제작할 때 쓰는 영상제작실과 편집실, 방송 스튜디오 등 저널리즘스쿨의 모든 장비와 시설들을 사용했다. 학생들은 직접 프롬프터를 보며 앵커멘트를 촬영하고, 기자가 되어 현장에 나가 리포팅을 했다. 편집기로 영상을 편집하는 교육도 받았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제천의 포토존’을 소개하는 TV 뉴스를 만든 팀도 있다. 이들은 튜터와 함께 직접 제천 벽화마을과 청풀몰을 찾아가 촬영과 취재를 진행했다. 방송기자를 꿈꾼다는 장석우(제천고2)군은 “야외에서 취재를 하다 보니 춥기도 했고 입이 얼어서 영상 촬영하는데 NG가 많이 났다”면서도 “이런 활동 덕분에 제 꿈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 행복기자학교 학생들이 <단비뉴스> 스튜디오에서 튜터들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 주동철

방송프로듀서가 꿈인 김재훈(제천고1)군은 ”제천 같은 소도시에서도 이런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며 “내년에도 이런 기회가 생기면 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 행복기자학교 학생들이 단비서재에서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며 취재 진행 상황 발표 준비를 하고 있다. ⓒ 주동철

“짧지만 많은 것을 느낀 시간”

8주간의 행복기자학교 활동을 마무리하는 수료식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쓰고 제작한 기사와 영상을 발표했다. 8조로 구성된 청소년기자팀은 ‘제천 포토존’ ‘급식체’ ‘청소년 화장’ ‘제천 슬로시티’ ‘쌍둥이의 사생활’ ‘장락사지’ ‘풋살대회’ 등 다양한 주제로 기사를 완성했다.

이봉수 원장은 “학생들이 낸 아이템들이 워낙 발랄해서 취재와 첨삭지도를 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며 “여건이 조성되면 내년에는 더 많은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제천교육지원청 장병석 교육장은 인터뷰에서 “제천처럼 수도권에서 떨어져 있는 변방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언론인 직업 체험이나 진로 경험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을 깨닫고 진로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제1기 청소년행복기자학교 수료생을 대표해 소감문을 발표하는 전하린양. ⓒ 주동철

전하린(세명고2)양은 “8주간 활동이 부담도 됐지만 내가 진짜 기자가 된 듯해 신기했다”면서 “다른 어떤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기자의 삶을 살아본 것이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1기 청소년행복기자학교 학생들이 직접 취재해 만든 기사와 영상은 <단비뉴스>와 <오마이뉴스>, 포털인 <다음>과 <네이버>에 8건이 실렸는데, 청소년의 눈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본 색다른 기사여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12월 23일 열린 제1기 청소년행복기자학교 수료식. ⓒ 주동철

* 취재·첨삭지도: 박수지(단비뉴스 시사현안부장), 이봉수(단비뉴스 대표)


사단법인 <단비뉴스>는 제천교육지원청·행복교육추진단·생태누리연구소와 함께 10월 28일부터 12월 23일까지 토요일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청소년행복기자학교를 운영해왔습니다. 이 학교는 미디어 제작 체험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미디어와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진학과 진로 모색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개설됐습니다. 이제 그 결과물들을 <단비뉴스>에 연재하니 청소년의 눈에 비친 학교와 한국사회를 기사나 영상으로 확인하세요.(편집자)

편집 : 박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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