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포퓰리즘

▲ 송승현 기자

최근 SNS에서 하나의 사진을 둘러싸고 사실 여부를 따지는 논박이 오갔다. 사진 속 주인공은 검은색 바탕에 옅은 녹색으로 스마일(smile) 모양이 그려져 있는 일명 ‘스마일 새’. 정체는 파푸아뉴기니에 서식하는 극락조였다. 극락조는 화려할수록 구애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논란이 됐던 사진도 극락조가 암컷에게 구애하던 중이었을 터다.

수컷 새는 종종 화려하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수컷은 천적의 눈에 띄기 쉽다. 날기에도 거추장스럽다. 그런데도 그들이 지금 형태로 진화한 이유로 ‘핸디캡 이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싸고 위험한 꼬리를 달고도 자신이 생존해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우수하다는 증거로 암컷에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화려함 속에는 대를 잇고자 하는 제 나름의 사정이 숨어 있는 셈이다.

여기 한국 사회에 또 다른 화려함이 있다. 무지개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행진하는 동성애자들. 빨간색 두건을 이마에 묶은 체 다양한 색깔의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파업 중인 노동자들. 규모가 커질수록 화려함은 더 커진다. 이런 화려함에도 이들의 목소리는 정치권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도리어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나 혹은 그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을 싸잡아 포퓰리즘으로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짙다.

▲ 설령 주변인들에게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핸디캡을 감수하더라도, 배제된 자들은 화려함으로 또는 폭력적으로라도 자신들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 flickr

정치이론가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을 로마 시대 정치 집단인 ‘플레브스’(plebs)와 ‘포풀루스’(populus)의 관계로 풀어냈다. 포풀루스는 정치 공동체의 성원 전체를, 플레브스는 기존 사회 질서에서 배제된 자들을 가리킨다. 라클라우는 여러 개 플레브스들이 공동의 대의를 통해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변해가는 과정을 포퓰리즘이라 정의했다. 한 마디로 포퓰리즘은 정치 주체에서 배제된 자들이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자, 배제된 자들의 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배제된 자들은 화려함으로 또는 폭력적으로라도 자신들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설령 주변인들에게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핸디캡을 감수하더라도. 민의의 대변자가 되어야 할 언론은 출입처 문화에 갇혀 기득권층 대변자로 변모해버렸고,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정치권에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손가락질이란 핸디캡은 생존의 목을 조여 오는 자신들의 비참한 삶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화려함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사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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