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을’(乙)

▲ 김태형 기자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트 비정규직 5,30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지시하자, 파리바게트 측이 반발해서 법적 다툼이 진행중이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국토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 산하 23개 공공기관 비정규직 비중이 35.1%에 이른다. 총 근로자 9만2371명 중 3만2416명이 기간제 또는 파견·용역직으로 일하고 있다. 고용 전반에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갑을 관계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보여준다.

심지어 IT업계 최대 라이벌인 삼성전자와 애플도 갑을 관계다. 애플이 삼성전자에게 갑이다. 삼성전자가 만든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애플이 대량 구매하기 때문이다. 회사와 소비자 간에도 갑을 관계를 찾을 수 있다. 애플이 아이폰 성능을 몰래 낮춰 소비자를 우롱한 것은 불과 며칠 전이다. 을은 갑의 전제적 욕심에 휘둘리는 불안정하고 수동적인 존재다. 을은 노예적 상황에 있다고 봐도 된다.

을의 비참한 처지는 ‘평등’이라는 인류의 가치에 반한다. 리처드 윌킨슨은 <평등이 답이다>에서 불평등이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한다고 썼다. 저자는 불평등 지표인 소득불평등도(소득 상위 20% 대비 하위 20%의 소득 비율)를 시장민주주의 25개 국에서 조사했다. 그 결과, 미국·영국·싱가폴·포르투칼 등은 소득 하위계층에 견주어 상위계층이 8~10배 높은 소득 수준을 보였으며, 일본·핀란드·스웨덴·덴마크 등은 4배 전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등 5개 국보다 미국 등 5개 국의 소득불평도가 월등하게 높다는 의미다.

소득불평등도가 심한 나라들은 사회문제에서도 최악이었다. 고등학교 자퇴율, 십대여성 출산율, 10만 명당 수감자 수에서 미국 영국 등이 단연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치에서 일본 등 불평등도가 낮은 국가들보다 수십, 수백 배에 이른다. 신생아 사망률, 정신질환자비율 등에서도 불평등 심화 국가들이 단연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불평등과 사회문제 간 상관관계는 이처럼 매우 높다.

▲ 부당한 갑을 관계가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교훈은, 그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당한 갑을 관계는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 JTBC 뉴스룸

을의 위치는 경제적 가치에도 반한다. 경제 사상가 ‘애덤 스미스’는 노예 노동이 모든 노동 가운데 가장 비싸다고 말했다. 로마제국 멸망 후, 유럽이 구체제에서 받았던 억압, 즉 관습적 노역, 강제 노동, 군주에 바치는 각종 세금 등은 그들 세계를 빈곤과 야만 상태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자기 것이 원천적으로 없는 이들은 가능하면 많이 먹고, 적게 노동하는 것 말고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에 따라 경제 원천인 농업은 물론, 수공업·상업 등 경제 전반에서도 그 발전이 더뎠으며, 결과적으로 유럽은 빈곤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을이 처한 상황은 이처럼 사회·경제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친다.

을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그 심각성을 안다면, 이를 타개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그들 지위를 향상시킨다. 파리바게트가 자행한 ‘불법 파견’에서 우리가 분노한 지점은, 파견근무자가 처한 열악한 근무 환경이었다. 그들은 새벽같이 출근해서 점심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했다. 한 달을 통틀어 쉬는 날은 원칙적으로 6일이지만, 3일밖에 못 쉬는 경우도 많았다. 파견 업체가 꼬박꼬박 300만 원 벌어갈 때, 그들은 겨우 200만원을 벌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지금 절실하다. 상생협력이 필요하다. 사실 삼성전자와 애플 간 상생을 지금 생각하기에도 벅차다. 정말 시급한 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상생협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굳어진 대·중소기업 간 힘의 불균형으로 중소 협력업체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부당한 전속거래 강요와 같은 각종 하도급 불공정행위가 횡행한다. 이는 결국 경제 성장을 해친다.

모든 유럽제국이 빈곤 상태에 있을 때, 잉글랜드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지주와 차지인은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하는 ‘Writ of right' 'Writ of entry' 등과 같은 법률에 있었다. 운명공동체, 즉 상생협력적 사고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영원한 계약이란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소비자가 기업에게 ‘우리가 호갱이냐'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 ‘군대는 신성한 의무가 아니다’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오랜 기간 형성된 관행도 이젠 재점검할 때가 됐다. ‘한 쪽에는 절대적 권위를, 다른 쪽에는 무조건 복종을 내세우는 계약이란 아무 의미도 없고 모순적이다.’ 루소의 말이다.

* 김태형 기자는 저널리즘스쿨 입학예정자입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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