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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집단주의
[상상사전] ‘가족’
2017년 12월 26일 (화) 15:42:48 민수아 기자 sooahmin09@gmail.com
   
▲ 민수아 기자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방송인 샘 오취리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국에서 궂은 인종차별을 겪었지만 ‘우리’라는 단어 때문에 계속 한국에 산다고 말했다.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좋은 일, 좋은 친구도 많았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우리'라는 이름으로 친구들이 함께 해줬어요."

그에게 힘이 되어줬다는 친구들이 ‘우리’라는 말로 보듬은 집단은 누구까지일까? ‘우리’라는 단어 뒤로 따라올 수 있는 말은 많다. 특히 ‘엄마’ ‘아빠’ ‘아들’ ‘딸’ 등 가족을 이르는 호칭이 자연스럽다. ‘우리’가 있으면 ‘너네’도 있다. 개성 넘치는 사람에게 ‘너네 별로 돌아가라’며 농담하는 것은 그 사람이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의 개체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온다. 어떤 한 사람을 ‘우리’로 규정하면 그 사람은 끝까지 품고 가는 가족 같은 존재가 된다. 동시에 ‘우리’라는 단어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안에 속하지 않는 이는 배제한다.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무장관이었던 김기춘과 부산의 기관장들이 '초원복국' 식당에서 나눈 말 중 하나다. 그들은 김영삼 후보 당선이라는 같은 목표 아래 지역감정을 부추기려 했다. 이익공동체로 가족의 범위를 넓힌 그들에게 ‘우리’는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도 아니다. 같은 이익을 바라는 ‘가족 같은’ 집단이다. 그들이 내뱉은 말은 집단 안에서는 결속을 다지는 발언일지 몰라도 ‘우리’가 아닌 ‘남들’에게는 배제의 구호일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지시로 이뤄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뿐 아니라 화이트리스트에 대한 보고도 받았다는 법정 진술이 나왔지만 김기춘은 부인했다. 블랙리스트는 지난 정부가 규정한 ‘우리’ 밖의 집단을 규정한 문건이고, 화이트리스트는 ‘또 하나의 가족’을 챙겨준 문건이다.

   
▲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12월 20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남은 소망은 늙은 아내와 식물 인간으로 병석에 누워있는 아들의 손을 다시 잡아주는 것”이라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 jtbc 뉴스현장 화면

김기춘은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늙은 아내와 식물인간으로 4년간 병석에 누워있는 아들의 손을 다시 잡아주는 게 남은 소망”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본인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 수많은 ‘다른 가족’에게는 사죄의 말 한마디 없었다. 내 가족만 위하는 가족주의는 공동체의 기반을 허물어뜨린다. 끊임없이 변용되는 가족주의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까지 뒤흔든다. 권력의 가족이 되지 않으면 개인은 차별과 배제의 폭력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부산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를 짓궂게 골려 주려고 “너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진짜 부모 찾아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나 역시 어렸을 때 그 말을 듣고 ‘내가 정말 우리 집 식구가 아니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한 기억이 있다. 배제의 공포는 본능에 가깝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언어로 시작한 집단주의 폭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남지현 기자

[민수아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시사현안부 민수아입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안다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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