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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며 토론… ‘회식문화 원조’
[김문환의 유물 풍속문화사] ⑪ 고대 그리스 ‘심포지온’
2017년 12월 12일 (화) 22:16:35 김문환 danbi@danbinews.com

플라톤이 쓴 책 ‘향연(Symposion)’을 보자. BC 380년 전후 쓰인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와 제자를 합쳐 7명이 사랑의 신 에로스(Eros)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를 담았다. 한 사람의 연설이 시작되면 경청하고, 다른 사람이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하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지도를 받는다.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뀌더니 대화는 자연스레 다음 행동으로 이어진다. 무엇일까? 음주. 그리스에서 술 마시기라면 딱 한 종류, 포도주다. 포도주뿐 아니라 음식에 각종 술을 곁들이며 대화를 즐기는 회식을 조금 고상하게 향연(饗宴)이라 부른다. 그리스어 ‘심포지온(Symposion)’이다. 이런저런 송년 모임이 분주하게 펼쳐지는 12월을 맞아 회식문화의 원조, 고대 그리스 심포지온 풍속을 들여다본다.

생맥줏집 맥주 용기 ‘피처’, 그리스 포도주가 기원

유럽을 탐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르기 마련인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그리스 전시관으로 가자. BC 6세기 그리스에서 만든 도자기 접시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접시 바닥에 ‘붉은색 인물(Red figure) 기법’ 그림이 선명하다. 요즘 말로 ‘몸짱’ 알몸의 남정네에게 시선을 오래 고정하지 말고 주변 물건을 보자. 왼쪽 아래 큰 항아리처럼 생긴 그릇은 무엇일까? 크라테르(Crater). 당시는 오늘날처럼 알코올 도수가 정해진 병포도주를 사다 마시는 게 아니다. 작은 항아리 격인 암포라(Amphora)에 포도주 원액을 보관해 둔다. 심포지온이 열리면 원액을 그대로 마시나? 그러면 바로 고주망태가 돼 곤란하다. 심포지온 성격에 따라 물을 탔다. 토론 성격이 강하면 물을 많이 섞고, 노는 성격이 강하면 물을 적게 섞어 농도 짙은 포도주를 만들었다. 이렇게 물을 섞어 포도주 농도를 조절하는 단지가 크라테르다.

농도 조절을 마친 포도주를 주전자에 떠서 심포지온 장소로 옮겨 가는데, 이 주전자를 피처(Pitcher)라고 부른다. 그림 속 남자의 오른손에 들렸다. 우리네 회식 풍속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2차 장소 생맥줏집. 주문할 때면 으레 외친다. “노가리 안주에 생맥주 피처로 2개 주세요”. 피처의 기원은 그리스 포도주 회식문화였다. 피처에서 따라 마시는 잔은 킬릭스(Kylix)다. 넓적한 잔으로 남자가 오른손에 들었다. 사발처럼 높은 칸타로스(Kantharos) 잔으로도 마셨다.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BC 6세기 그리스 도자기. 한 남성이 심포지온 중 포도주의 농도를 조절하는 장면이다. ⓒ 김문환

올림픽 우승 등 경축행사나 토론행사로 심포지온 개최

이제 장소를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한가운데, 튀니지로 옮겨보자. 튀니지는 몰라도 이 사람이나 이 사람의 고국은 안다. BC 3세기 말 로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명장, 한니발과 그의 고국 카르타고.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바닷가 쪽으로 난 구시가지가 그 유명한 카르타고다. BC 146년 3차 포에니 전쟁(카르타고-로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당대 지구촌 문명국가로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카르타고를 불태운 뒤, 소금을 뿌려 불모지로 만들었다. 2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로마인들은 카르타고를 로마 도시로 재건했다. 그때 지은 로마 건물터에서 걷어 올린 호화 모자이크들이 수도 튀니스 바르도 박물관을 가득 메운다. 지구상 최대 규모 모자이크 박물관이다. 이곳에 간직된 로마의 향연 모자이크를 보자.

짧은 투니카(튜닉)를 세련되게 차려입은 가운데 2명이 주인공이다. 이들에게 포도주를 따라주는 덩치 큰 2명의 사나이는 노예다. 큰 피처를 어깨에 메고 주인공의 킬릭스에 포도주를 따라준다. 손에는 작은 피처를 또 들었다. 왼쪽 노예의 손을 보자. 올리브 가지를 들었다. 맨 오른쪽 시종의 손에도 올리브 가지가 들려 있다. 무엇을 명분으로 한 향연인지 말해준다. 올리브 가지는 승리의 상징. 주인공이 올림픽에서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심포지온을 열었을 게 틀림없다. 물론 플라톤의 ‘향연’에서처럼 토론을 위한, 연설 대회를 겸한 성격도 많았다. 특히 아테네는 BC 5세기 이후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수사학 같은 인문학이 발달하면서 웅변술이나 지식을 겨루는 일이 잦아졌다. 심포지온은 좋은 무대였다. 물론 행사나 기념, 단순히 즐기는 심포지온도 흔했다.

5∼20여 명 참석, 대부분 서서 마시고… 취할 때까지

심포지온 참석 인원은 보통 몇 명이나 될까? 플라톤의 ‘향연’에는 스승 소크라테스까지 7명이 나온다. 보통 심포지온을 열면 5명에서 20명 정도가 모였다. 장소는? 주로 저택의 야외식당에서 펼쳐졌다. 긴 벤치처럼 생긴 돌의자에 쿠션을 깔고 몸을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눕는다. 왼팔로 몸을 받쳐 고인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편한 포즈를 취하는 인물은 몇 안 된다. 젊은이나 비중이 낮은 인물은 바닥에 앉거나 섰다.

포도주를 얼마나 마셨을까? 크라테르에서 농도를 진하게 타든 묽게 타든 결국,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곤드레만드레 취하기 마련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대화 말미 포도주를 마시며 거나하게 취해 쓰러져 자거나 돌아가는 모습이 묘사된다. 무리 지어 큰 소리로 떠들며 골목을 누비기도 했으니, 요즘 길거리 고성방가와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BC 4세기 초 활약했던 아테네 시인 에우불로스가 술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이런 말을 남겼을까. “분별 있는 사람은 3잔을 마신다. 첫 잔은 건강, 둘째 잔은 사랑, 셋째 잔은 숙면을 위해!” 이어 “넷째 잔부터 사람이 나빠진다. 5잔을 마시면 고함을 지르고, 6잔을 마시면 거칠어지며, 7잔을 마시면 싸운다. 8잔을 마시면 부수고, 9잔을 마시면 침울해지다가 10잔을 마시면 인사불성이 된다” 애주가들이 연말 송년회 분위기에 귀담아들을 2400년 전 가르침이다.

   
▲ 튀니지 바르도 박물관에 있는 3세기 로마 모자이크. 덩치 큰 노예가 짧은 투니카를 입은 손님의 잔에 피처에 담긴 술을 따르는 모습. ⓒ 김문환

헤타이라(여성 도우미)도 참석 분위기 돋워… 조선의 황진이

심포지온에서 술을 마시는데 남자들만 있었을까? 발길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박물관으로 옮긴다. 그리스 전시관의 BC 4세기 도자기 그림을 보자. 돌벤치 쿠션 위에 3명의 남자가 왼팔을 비스듬히 기댄 채 눕듯 앉아 심포지온을 즐긴다. 머리에 관을 쓴 것으로 봐 역시 올림픽 같은 경기 우승 심포지온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마케도니아 등에서는 귀족들이 금으로 만든 월계수나 도금양, 올리브 잎 모양의 관을 쓰고 행사장에 나타나곤 했다. 3명의 남자 앞에 서 있는 인물은 여성이다. 관이 두 개 달린 이중피리 아울로스(Aulos)를 분다. 심포지온의 흥을 돋우는 중이다. 심포지온의 공식 참가자는 남자들로 제한되지만, 여성도 오는 경우가 있었으니… 누구일까.

심포지온 때 아울로스를 불며 흥을 돋워주던 여인. 리라(Lira)를 간편하게 만든 현악기 키타라(Kithara) 연주에 맞춰 시를 읊던 여인. 당시는 시, 특히 서정시 엘레게이아(Elegeia)가 곧, 노래였다. 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연가(戀歌)였다. 심포지온 술자리에 꼭 들어맞는다. 영어로 엘레지(Elegy·슬픈 사랑 노래)의 여왕은 이미자가 아니라, 그리스 심포지온에 참석하는 여인이었는데… 이렇게 돈 받고 심포지온에 활기를 불어넣는 여인을 헤타이라(Hetaira)라고 불렀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황진이 같은 기생이다. 선비들 회식에 끼어 같이 대화도 나누고, 가야금 켜며 시조도 읊던 그런 여인들. 헤타이라도 심포지온에서 특정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는 그리스 도자기 그림은 헤타이라와 단둘이 대화를 즐기는 심포지온 참석자의 모습을 확인시켜 준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박물관에 보관된 BC 4세기 그리스 도자기. 심포지온에 참석한 3명의 남자가 긴 의자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는 동안 헤타이라가 아울로스를 불며 흥을 돋운다. ⓒ 김문환

헤타이라는 외국인, 높은 지식수준… 유력 인사들의 사랑받아

그리스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 사회로 여성에게는 폐쇄적이었다. 가정에만 갇혀 사는 여인이 어떻게 요즘 노래방 도우미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헤타이라는 외국인이어서 가능했다. 아테네를 예로 들자면 아테네 이외 폴리스(Polis·도시국가) 출신 여인들이 헤타이라가 됐다. 아테네 여인은 교육을 받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문맹이다. 따라서, 심포지온에 끼어 지적 대화를 나누는 게 불가능하다. 다른 폴리스에서 온 여인들은 그런 규제가 없었으므로 공부할 수 있었고, 분방하게 밤 문화를 이끌어 갔다. 역설적이다.

유명 헤타이라는 큰돈을 벌었다. 아테네 명사들로부터 심포지온을 함께하고 싶은 선망으로 떠올랐다. 소크라테스가 함께하고자 했던 헤타이라 이름은 아스파시아스. 당대 최고라는 명성이 자자했던 이 여인은 누구인가. BC 5세기 중반 아테네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지도자 페리클레스의 연인이다. 페리클레스가 첫째 부인을 잃고 나서 얻은 두 번째 부인이다. 그녀는 최고 정치인 페리클레스와 아들을 낳고 살면서도 헤타이라 일을 놓지 않았다. 요즘도 상상하기 어려운 아테네 풍속도다.

헤타이라가 있어 때로 질펀했던 그리스 심포지온. 그리스 헤타이라는 성매매도 가능했을까? 흔하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었다. 물론 전문적으로 그 일만 하는 여성들, 포르나이(Pornai)는 따로 있었다. 그쪽 풍속 문화는 다음 기회로 넘긴다.

‘혼술’ 아닌 함께 마시는 ‘심포지온’, 로마의 ‘심포지움’으로

그리스어 심포지온의 어원 ‘심포테인(Sympotein)’은 ‘함께 마신다’는 뜻이고 ‘온(on)’은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다. ‘함께 술 마시는 장소’ ‘함께 마시는 술자리’가 심포지온이다. 그러니까 요즘 신세대 풍속도의 하나인 혼자 마시기 ‘혼술’은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심포지온이 될 수 없다.

그리스를 무너트리고 BC 1세기 지중해 최고 강자가 돼 로마에 의한 평화, 즉 ‘팍스 로마나’를 구현한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그대로 수용했다. 에트루리아를 거쳐 받아들인 그리스문자로 라틴문자를 만들어 썼다. 그 라틴문자가 오늘날까지 지구촌 영어를 비롯한 서양 모든 언어의 문자로 쓰인다. 심포지온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름이 바뀐다. 로마 라틴어에서 장소 접미사는 ‘온(on)’이 아니라 ‘움(-um)’이다. 그래서 ‘심포지온’이 ‘심포지움(Symposium)’으로 변한다.

그 심포지움이 영어로 가서 오늘날까지 활용되는데, 내용이 소크라테스 시절과 조금 달라졌다. 현대 영어 ‘심포지엄(Symposium)’은 술 마시기가 쏙 빠졌다. 대화하고 토론하는 내용만 남았다. 이번 송년회에는 술도 좋지만 대화를 좀 더 나누면 어떨까? (10화 '로마의 ‘럭셔리 화장실’… 좌식변기에 난방되는 바닥까지' 참조)


문화일보에 3주 단위로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는 '동서문명사'와 'TV저널리즘'을 강의합니다. (편집자주)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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