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리스티클] 태권도, 야구, 축구, 빙상계 비리

2013년 5월. 제94회 전국체전 태권도 핀급 서울시 대표 3차 선발전 결승 경기가 열렸다. 경기 종료 50초를 남기고 상대에게 5:1로 앞서던 고교생 전모(당시 18세)군. 이대로만 가면 전군이 서울시 대표가 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주심 최모(47)씨는 전군에게 1분도 안되는 사이 7차례의 경고를 마구 외쳐댔다. 전군 코치의 이의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1라운드에서 받은 경고 1회까지 합쳐 경고누적으로 전군은 반칙패 했다. 인천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던 전군의 아버지 전모(47)씨는 아들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패배 보름 뒤, 전군의 아버지는 편파판정을 의심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차량에서 목숨을 끊었다. 진정한 태권도인을 열망했던 한 가족의 꿈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정당당한 대결’이다. 그러나 체육계의 비리문제는 잊힐 만하면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2월 ‘스포츠 4대 악 근절’을 외치며 스포츠비리신고센터를 세웠다. 4대 악은 ‘승부조작 및 편파판정’, ‘성폭력을 비롯한 폭력’, ‘입시비리’, ‘조직사유화’다. 센터 설립 뒤, 올 8월까지 신고 건수는 742건. 종목별로 보면 태권도(106건)가 가장 많고, 이어 야구(71건), 축구(63건) 순이다. 이번 리스티클은 태권도/야구/축구와 빙상 종목의 충격적인 4대악 실태를 재조명한다.

1. 태권도- 편파판정, 국기원 비리 수사...자정의 계기될까

▲ 전씨는 A4 3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차량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 심판 최씨에 대한 분노와 판정에 대한 억울함이 묻어난다. ⓒ YTN 뉴스 7 갈무리

다시 자살한 전씨의 비극으로 돌아간다. 유서에는 “늘 작업조로 일컬어지던 그놈(심판 최씨) 코트만 들어가면 우리 제자들과 자식들은 지고 나오기 일쑤였다. 그래, 힘없고 ‘빽’ 없으면 실력으로 이기면 되지 이런 생각만 여러 번 했다...”란 내용이 적혀있다. 전씨는 인천시태권도협회 상임심판인 최씨를 피해 아들 전군을 서울의 고등학교로 전학보냈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심판 활동을 하던 최씨와 다시 마주치면서 아들 전군은 반칙패하고 만다. 2014년 9월, 편파판정 조사 결과 전씨의 의심은 사실로 밝혀졌다. 전군의 상대 선수 아버지는 지방 모 대학 태권도학과 최모(48) 교수였다. 자기 아들을 태권도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정 청탁한 결과였다.

이 사건의 조사과정에서 서울시 태권도협회의 다른 비리들도 드러났다. 협회 임원의 자녀가 선수로 출전하는 단체전 경기에서도 승부 조작을 벌인 사실과 승단심사를 조작해 전 협회장의 사위에게 태권도 자격 1단을 부여한 일이 밝혀졌다. 이들은 지난해 재판에 넘겨졌으나 재판 결과는 현재까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피의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지방태권도협회에도 승부 조작 건은 비일비재하고 학연과 지연을 통해 많이 이뤄진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문대성 전 IOC 위원은 경인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한 분의 죽음으로 인해서 (편파판정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이지 과거에도 정말 많은 일이 계속해서 있었다“며 ”코치와 학부모들은 괘씸죄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심판들에게 술을 사거나 로비를 해왔다"고 폭로했다.

▲ 편파판정, 내부 비리, 국기원의 갑질 논란까지. 태권도는 '국기'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 filckr

전씨의 죽음에도 비리는 여전하다. 세계 태권도 산실로 불리는 국기원은 최근 채용 비리를 폭로한 직원에게 진술 번복을 회유했다가 거절당하자 보복성 해고조치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오현득 국기원 원장은 직원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어 ‘갑질’ 논란도 일으켰다. 오 원장은 또, 공금 수백만 원을 사적으로 쓰는 등 업무상 횡령혐의도 받았다. 오 원장의 ‘개인적 일탈’로 갈무리될지, 비리로 얼룩진 복마전 태권도계에 자정의 신호탄이 올라갈지 지켜볼 일이다.

2. 야구-학교폭력, 야구 사랑에 찬물 끼얹는 폭력 개선될까  

지난 8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이 SBS 전파를 탔다.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받을 만큼 특급 선수를 포함한 야구부 학생 4명이 후배 선수들을 야구공과 배트로 폭행했다는 취지다. 그런데 야구부는 폭행 사건을 학교에 보고하지 않았고, 뒤늦게 제보를 받은 학교 측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었다. 결과는 ‘조치 없음’이었다. 그런데 그날 ‘선도위원회’도 열려 가해 학생들을 교육하겠다는 결정도 나왔다. 학폭위에서 징계를 받으면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아 대학입시에 영향을 받는다. 반면 선도위원회 징계는 생활기록부 기록에 남지 않는다. 학교 폭력에 나름 대응했다는 알리바이를 위해 두 위원회를 중복 개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 서울 한 고교 야구부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 학교와 학부모는 사고 수습보다 입막음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 SBS 8시 뉴스 갈무리

해당 기자는 ‘취재 파일’에서 사건이 무마되는 과정을 밝힌다. 피해 학부모들이 모두 입을 닫아 주변 사람 얘기를 들어볼 수밖에 없었다고 적는다. 대학 입시와 프로 입단에 오랫동안 개입한 고3 선수 부모들이 저학년 부모들을 모아 놓고 “폭력은 심각하지 않았다. 이미 화해와 용서가 이뤄져 사이좋게 지낸다. 선배 선수들에 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에 서명을 받았다. 이어 야구부 학부모들은 제보자를 색출하고, 학부모들 간에 입을 맞췄다. 이해관계자들은 침묵을 강요하고, 야구부 감독은 실상을 알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 지난 21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폭력을 행사한 A선수에게 ‘자격정지 3년’ 처분을 내렸다. 이미 프로야구 구단에 1차 지명을 받은 이 선수는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등 국제대회에서는 뛸 수 없지만, 프로야구 활동에는 지장이 없다. 협회 징계가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학교 야구부 폭행 사건이 잇달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엠스플 뉴스는 지난해 충북 A고교에서 장 모 감독이 수시로 학생들을 때리고 석회가루를 입에 물리는 가혹 행위를 했다는 증언을 다뤘다. 결국 장 모 감독은 검찰에 기소되고, 교육청은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A고교 야구부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 가거나, 야구부를 잠시 이탈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진 뒤 사후 약방문이었다. CBS 노컷뉴스도 경기도 내 한 고등학교 코치가 학부모가 지켜보는 경기장에서 학생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고 보도했다.

▲ 2017년 프로야구는 음주운전, 승부조작, 불법도박 잇따른 악재로 몸살을 앓았다. © 연합뉴스TV 갈무리

학교 야구부 폭행 사건은 상급 학교 진학이나 프로 진출이 코치 손에 좌지우지되는 구조에서 싹튼다. 코치의 눈 밖에 나면 선수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학교 야구부가 학부모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방식도 문제다. 2015년 고교야구 MVP급 선수 학부모의 폭로는 이를 뒷받침한다. 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할 때 이미 재력으로 대학 진학과 프로 진출이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배경 속에 학교 야구부 내 폭력이 발생하고, 피해자들은 사건을 쉬쉬하는 문화에 익숙해진다. 성인 야구 무대에서 터지는 음주운전, 승부 조작, 불법도박 등이 이미 학교 야구부 생활에서 잉태된다는 의미다. 허구연 KBO 야구발전위원장이 스포츠 매체 OCEN과 인터뷰에서 제대로 된 해결책을 짚어준다. “어릴 때부터 소양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야구계 전체가 창피함을 알고 아마추어부터 문제의식, 책임의식을 갖고 해야 한다.”

3. 축구-심판 매수 국제 망신, 몸통은 그대로인 채 관계자 자살

경남FC(이하 경남)의 심판매수가 2015년 불거졌다. 프로축구 30년 역사에서 처음 발생한 일이다. 경남은 2013년 8월부터 2014년 9월까지 K리그 클래식 심판 4명에게 ‘경기에 유리한 판정을 해달라’는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건넸다. 경남의 심판 매수는 구단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안종복 경남FC 대표이사가 심판 3명에게 2천만 원씩 건넸고, 코치도 심판에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경남은 심판 매수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외국인 선수의 계약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약 6억 원의 비자금을 모았다. 프로축구연맹(이하 축구연맹)은 경남에 ‘2부 리그 강등’ 징계까지 꺼내려고 했으나, 경남은 이미 강등이 확정된 상태였다. 축구연맹은 승점 10점 삭감과 벌금 7000만원 부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 전북FC 스카우트 차모씨가 2013년 심판에게 500만원을 건네 심판 매수를 사실이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 SBS 뉴스 갈무리

경남의 심판 매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심판 매수 사실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전북 FC(이하 전북)의 스카우터였던 차모씨가 2013년 심판에게 500만원을 건넨 사실이 밝혀졌다. 전북은 2016년 5월 심판 매수 행위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며 “구단에 보고 없이 이루어진 개인 일탈”이라고 선을 그었다. 축구연맹은 전북의 2016년 시즌 리그 성적에서 승점 9점 삭감과 벌금 1억원 징계 결정을 내렸다. 결국 전북은 2016시즌 승점 삭감으로 K리그 클래식 우승을 FC서울에 넘겨주고 말았다.

전북의 심판 매수 파문은 국내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K리그 클래식에는 4장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주어진다. 리그 성적 1위~3위 클럽은 직행 진출권을, 4위 클럽은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는다. 2016년 시즌 2위를 차지했던 전북의 심판 매수 사실이 드러나자 AFC의 출전관리기구(Entry Control Body)는 2017년 1월 전북의 2017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을 박탈했다. 전북은 국제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지만 패소해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좌절됐다.

▲ 국내 축구 팬들은 경남과 전북에 내려진 징계 수위에 반발했다. ⓒ MBC 뉴스 갈무리

축구 팬들은 경남과 전북에 내려진 징계 수위에 반발했다. 심판 매수가 스포츠의 기본 정신인 공정성을 훼손하는 중죄임에도 처벌이 약하다는 이유였다. 승점 10점이나 9점 삭감, 1억원 안팎의 벌금은 사실상 의미 없는 징계라는 주장이다. 심판 매수의 몸통인 구단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사이 ‘개인 일탈’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팀 스카우터는 비극적 삶의 종말을 맞았다. 지난 6월 전북 스카우터 차모씨가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차모씨의 아내 진술을 바탕으로 자살로 결론 내렸다.

4. 빙상종목-'금맥'에 가려진 파벌의 썩은 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남자대표팀이 '노메달'로 대회를 마쳤다. 경기성적이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팬들 심정이 착잡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소치 올림픽에서 맹활약한 러시아 귀화선수 안현수(빅토르 안)가 한국을 떠난 이유 때문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 귀화 선택에 대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때문"이라고 밝혔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전문가들과 언론은 한국 빙상계 내부에 만연한 파벌문제를 이유로 꼽았다. 일명 '전라인'과 '유라인'으로 불리는 두 파벌이다.

▲ 대한민국 빙상종목을 대표하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내부에 파벌과 짬짜미, 폭행 등이 만연하다. ⓒ YTN NEWS 갈무리

'전라인'은 전명규(한국체육대학교)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한체대 출신 선수들을 일컫는다. '유라인'은 유태욱(당시 용인시청)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비(非) 한체대 출신 선수들이다. 빙상경기연맹의 요직을 전명규 교수와 유태욱 감독 두 사람이 나눠맡으며 선수와 코치를 선발을 좌지우지해 두 파벌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일부러 져주거나 대표선수 자리를 나눠 먹는 속칭 '짬짜미'가 성행했다. 안현수의 경우 '전라인'의 '황태자'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 불과 만 16세의 나이로 선발전 없이 대표 자격을 얻었다. 다른 파벌 선수들의 눈총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0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특정 선수 메달 밀어주기를 거부하며 선배에게 폭행당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때는 비 한체대 코치 밑에서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빙상경기연맹의 부조리는 학맥과 연줄로 형성된 파벌이 연맹의 '윗선'을 틀어쥐고 올림픽에서 금만 따면 모든 게 문제없다는 식으로 빚어낸 결과다. 더 큰 문제는 사태 수습과정에서 벌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2월 업무보고 자리에서 안현수 선수를 언급하며 "파벌주의, 줄 세우기,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감사를 시행하고 문제해결에 나선 이는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차관이다. 김차관은 대대적 감사를 기회 삼아 스포츠계를 장악하고 'K스포츠재단'을 통해 이권 사업을 최순실에게 넘겼다. 빙상연맹을 비롯한 각 체육 단체의 내부 부조리들이 척결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 취임 후 체육계 비리의 대대적 감사를 실시한 전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차관은 정작 자신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중심에 섰다. ⓒ YTN NEWS 갈무리

2012년 소치동계올림픽 폐막 후, 전명규 교수는 대표팀의 부진을 책임진다며 빙상연맹 부회장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전 교수는 2017년 1월 '앞만 보고 가겠다'며 연맹 부회장직에 복귀했다. 문제가 있더라도 금메달만 따면 모든 게 ‘문제없음’이 돼버리는 스포츠계 그릇된 관행이 평창올림픽에서 개선될 수 있을지 팬과 국민들이 따가운 시선으로 지켜본다.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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