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 임형준 기자

“기사 잘 봤습니다. 근데 사진에 찍힌 분들 동의는 받으셨나요? 저희 지금 비상 걸렸어요. 모자이크 처리 부탁 드립니다.” 

지난 25일 부산퀴어문화축제 홍보팀이 걸어온 전화였다. 바로 수정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날 나간 “차별은 나빠요, 혐오를 멈춰요” 기사에 관한 정정보도 요구였다. 부산에서는 처음 열린 퀴어문화축제를 취재했는데, 그만 시민들의 동의를 얻지 않은 사진을 기사에 넣은 것이다. 동의를 구한 사진이 대부분이었으나, 여섯 장은 그렇지 않았다. 거리를 행진하는 참가자를 찍었거나 차량 위에 올라가 자기들 메시지를 외치는 사진이었다. <단비뉴스>는 비주얼 가치 하락을 이유로 모자이크를 넣는 대신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축제 당일 프레스 부스에서 취재진으로 등록하며 사진 촬영 방법을 전달받았다. 부스 관계자는 “당사자 동의를 받은 뒤 사진을 찍으라”고 말했다. 우리 취재진은 축제 참가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기 위해 행사장을 돌아다녔다. 촬영할 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게재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러나 축제 열기에 정신을 뺏긴 탓이었을까? 행렬 인파 속 인물이나 차량 위 여러 참가자를 한 샷에 담을 때는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여느 행사와 달리 민감한 부분이 있는 축제였지만 취재•보도 과정에서 신중함이 부족했다. 사진 저널리즘의 윤리를 망각한 것이다. 

▲ 누구에게나 사진 찍히지 않을 자유가 있다. 더욱이 퀴어문화축제처럼 민감한 행사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유의해야 한다. 상대방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위와 같은 사진만 찍을 수 있다. ⓒ 임형준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총강 5장에는 ‘언론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그들이 차별과 소외를 받지 않도록 감시하고 제도적 권리 보장을 촉구한다’고 나와 있다. 제2장 인격권에서도 ‘공인이 아닌 개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 정보와 병명, 가족관계 등 사생활에 속하는 사항을 공개하려면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언론인이 지켜야 할 보도 윤리를 적시해 보도에 따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려는 방지책이다. 

<한국일보> 고명진 기자가 찍은 ‘아! 나의 조국’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상징한다. 마스크를 쓴 젊은이들 앞으로 한 남자가 윗몸을 벌거벗은 채 달려나오는 사진이다. 그것은 어쩌면 사진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이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 집회에 나선 사람은 자유롭게 찍어도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언론에 보도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처럼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에 민감할 수도 있다. <한겨레> 곽윤섭 사진기자는 지난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기자는 시민에게 자신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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