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 풍속문화사] ➇ 한가위 앞두고 살펴보는 ‘제사 풍습’
[문화일보 공동연재]

1988년 경상남도 의창군 동면(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벌였다. BC 1세기~AD 1세기 경 널무덤(목관묘·木棺墓) 12기와 독무덤(옹관묘·甕棺墓) 2기다. 고고학자들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흙을 걷어 낼 때마다 수많은 고대 유물이 쏟아졌다. 청동 투겁창(동모·銅矛), 중국 한나라 구리거울(동경·銅鏡), 띠고리(대구·帶鉤) 같은 청동기와 쇠로 만든 투겁창(철모·鐵矛)·꺾창(철과·鐵戈) 등의 무기류는 물론 칠을 한 나무 그릇(목태 칠기·木胎漆器)이 2000여 년 만에 햇빛을 봤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유물은 나무 칠기인데, 요즘 추석이나 설, 기제사에서 음식을 담는 제기(祭器)와 생김새가 판박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나무 칠기에 과일이 바짝 마른 채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무덤 껴묻거리(부장품·副葬品)인 만큼 당시 장례나 제사 문화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유물로 손색없다.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제사 풍속 문화사를 들여다본다.

▲ 중국 만주 집안시 장천1호 고분 벽화 속 고구려인 남녀가 절하는 장면. 상투와 남녀 한복이 인상적이다. 집안시 고구려 고분벽화 전시실. Ⓒ 김문환

국립중앙박물관의 창원 다호리 가야 제기와 음식

 민족의 큰 명절, 추석(秋夕). 한가위 때 가정마다 잊지 않고 꼭 챙기는 일은 차례상 차리기다. 조상에게 한 해의 결실을 감사드리는 의식인 만큼 정성을 다 바친다. 정성의 표현은 가득 고인 음식으로 나타난다. 그 제물을 담는 그릇을 제기라고 부른다. 제기는 약간의 변형이 있지만, 대개는 위쪽이 동그란 접시처럼 생겼다. 그 접시 아래로 원뿔형 받침이 달렸다. 이런 형태의 제기를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고대 우리 조상들의 상차림 영상이 남아 있지 않으니 가장 마뜩한 방법은 당시 장묘 문화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장묘 문화는 무덤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비록 고인의 인체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갔지만, 부장품은 오롯하다. 그 유물에 오늘 우리 문화의 원형이 된 고대의 문화가 엿보인다. 상상의 무대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보자.

박물관 1층 고대 가야관으로 가면 다호리에서 출토한 유물이 반갑게 손짓한다. 기쁜 마음에 다가서면 마른 감과 밤이 담긴 칠기가 2000년 세월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모습으로 기다린다. 감이며, 밤은 오늘날 차례상 제물이어서 탐방객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경상북도 고령군 지산리에서 출토된 대가야 고분 제기에는 생선 가시가 가득 담겼다. 요즘도 제사상에 조기 같은 생선을 올리는 점과 다르지 않다. 음식이 담긴 이 그릇들은 높다란 다리가 달렸다. 그래서, 고고학에서는 고배(高杯)라고 부른다. 배(杯)는 잔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릇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한글로 풀면 ‘굽다리 접시’다. 오늘날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제기 역시 고배의 일종이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이런 식의 상차림으로 제사 문화를 다듬었을까? 유물로 확인되는 제사 풍습을 역사 기록으로 살펴보자.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가 전하는 가야 제사 풍습

 조조의 위(魏)나라를 뒤엎고 등장한 진(晉)나라의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 가운데 ‘위서(魏書)’는 기념비적 역사책이다. 마지막 30권 ‘오환선비동이열전(烏丸鮮卑東夷列傳)’이 3세기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와 풍습을 다룬 현존하는 유일한 저술이기 때문이다. 기마민족인 오환, 선비와 함께 등장하는 ‘동이(東夷)’에는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평가되는 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는 물론 동옥저(東沃沮)·읍루(揖婁)·예(濊)·삼한(三韓)·왜(倭)를 다룬다. 이 가운데, 백제가 속한 마한(馬韓), 흔히 가야로 인식하는 변한(弁韓), 신라가 속한 진한(辰韓)을 소개하는 한 대목을 보자.

“변한과 진한은 잡거(雜居)하며 언어·법속(法俗)·의식주 생활이 같고 다만 제사 풍속이 다르다…” 제사가 언급돼 있다.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좀 더 중요한 대목은 3세기 가야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사상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는 창원 다호리 출토 칠기 고배처럼 과일이나 각종 음식을 담았음이 틀림없다.

▲ Ⓒ 김문환


신라 황남대총 출토 황금 고배

“삼국지” ‘위서’에서 가야와 제사 풍습이 같다고 언급된 진한, 즉 신라로 가보자.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大陵苑). 학창 시절 수학 여행으로 누구나 다녀왔을 대릉원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무덤은 황남대총이다.

높이 23m, 남북 120m, 동서 80m 크기의 쌍분(雙墳)이 우뚝 솟아 보는 이를 압도한다. 만주 집안(集安)에 있는 광개토대왕(호태왕)릉의 현재 남아 있는 높이가 14m 정도 되므로 황남대총은 우리 민족이 남긴 고분 가운데 가장 높다. 더욱 놀라운 것은 1973년 이곳을 발굴했을 때 쏟아진 엄청난 양의 황금 유물이다. 물론 고배도 빠지지 않았다.

5세기 신라왕이 마립간(麻立干), 혹은 매금(寐錦, 충주 고구려비를 비롯해 주로 고구려에서 신라왕을 가리키던 호칭)으로 불리던 시기 조성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積石木槨墳)의 웅장한 위세가 스민 황금 고배.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탐방객을 맞으며 발하는 영롱한 빛에 눈이 부실 정도다. 변한과 신라의 경상도 지역을 벗어나 호남의 마한 지역, 충청 경기의 백제는 어땠을까? 광주 전남대 박물관에서 서울 한성 백제 박물관 등 각지에서 고배가 반갑게 눈웃음친다. 고배가 한반도 구석구석 고루 퍼져 제기로 사용됐음을 확인해 준다.

일본 가시하라 박물관 고배 차림상

 궁금해진다. 고배는 우리 민족만 사용한 걸까? 우리와 문화 교류가 잦았던 일본으로 먼저 가보자. 도쿄(東京) 국립 박물관이나 오사카(大阪) 시립 박물관으로 가면 경주 대릉원보다 더 큰 초대형 고분이 등장했던 일본 고분 시대(古墳時代·3~5세기) 고배가 전시돼 마치 우리 유물처럼 반갑게 맞아준다. 고대 한·일 문화 교류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오사카 근교 가시하라 고고학 연구소 부설 박물관으로 가면 특이한 장면이 눈에 띈다. 야요이 시대(BC 3세기~AD 3세기) 제사장 샤먼(Shaman)이 주관하는 제천(祭天) 의식이다. 고배에 음식을 잔뜩 담은 상차림은 우리네 고사 장면을 빼닮았다. 장례 등의 제사 문화 말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우리 민족의 제천 행사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서’에 역시 언급된다. 부여의 영고(迎鼓)를 비롯해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이 그렇다.

고구려인 절하는 모습 만주 집안 장천 1호 고분 벽화

 동맹(東盟)이라는 제천 행사를 치렀던 고구려. 고구려에도 당연히 제사 풍습이 있었을 터이다.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구려는 벽화의 나라다. 신라와 달리 고구려 장묘 양식은 돌방(석실,石室)을 만들어 관을 안치하고, 돌방 위에 다듬어진 돌을 계단식으로 쌓는 적석총을 주로 썼다. 그러다 보니 돌방 벽면에 벽화를 그릴 수 있었다.

고구려 적석총 돌방의 벽화는 고구려의 문화를 전하는 풍속화첩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벽화 속에서 고구려 전통과 풍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렇게 전해지는 벽화 가운데, 제사 풍습과 관련해 유추해볼 흥미로운 단서가 눈길을 끈다.

자리를 만주 집안 시로 옮겨 보자. 고구려 2대 유리왕 때 도읍을 정해 427년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백여 년 고구려 수도 국내성(國內城)이다. 압록강변에 자리하는데 강 건너는 평안북도 만포시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집안 우산리에는 고구려 고분 벽화 전시실이 자리한다. 그중 장천 1호 고분 벽화를 보면 남녀가 한복을 입고 엎드려 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절하는 대상은 좌대에 앉은 부처님이다. 불교 의식이기는 하지만, 경배의 마음을 표현하기는 제사 의식도 마찬가지다. 고구려인들이 어떤 자세로 절했는지를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앞쪽의 남자는 상투를 틀고 검은색 저고리에 점박이 무늬 바지를 입었다. 점박이 무늬는 고구려 벽화에 여럿 등장하는 점으로 미뤄 고구려인들이 즐겨 입던 디자인으로 보인다.

뒤쪽 여성의 자태에 눈길이 더 쏠린다. 검은색 저고리에 붉은색 긴치마를 입고 남자처럼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은 뒤, 무릎 꿇어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한다. 이번 추석에도 금수강산 방방곡곡에서 접할 풍경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중국, 우즈베키스탄, 페르시아 고배

 중국은 어떨까? 역사 고도 서안(西安, 예전 장안) 산시성 박물관으로 가면 공자(孔子·BC 551~BC 479) 시기보다 앞선 BC 8세기 주나라 고배가 눈길을 보낸다. 중국에서는 이를 ‘더우(두·豆)’라고 부른다. 발길을 역시 역사 고도 낙양(洛陽)으로 옮겨보자. 추석이면 TV에 자주 등장하는 민요. “낙양성 십리호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성주풀이’에 등장하는 그 낙양 북쪽에 북망산(北邙山)이 있는데, 여기에 무덤을 많이 썼다. 그래서 ‘북망산’은 무덤을 상징하는 대유법으로 쓰인다. 낙양 박물관에는 주나라보다 훨씬 오래된 용산문화(龍山文化·BC 2500~BC 2000) 시기 고배가 기다린다. 남경(南京) 박물관에는 신석기 시대 흙으로 만든 고배가 전시돼 고배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준다.

고배를 사용하는 문화는 중국에 그칠까? 중앙아시아로 가보자. 우즈베키스탄 남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이루는 고대도시 테르미즈. 여름이면 한낮 섭씨 40도를 훌쩍 넘기는 테르미즈 박물관에 BC 15세기 고분에서 발굴한 시신과 고배 형태 그릇을 고스란히 옮겨 놨다. 곡물이 그대로 담긴 상태다. 마치 가야의 창원 다호리나, 고령 지산리 고배처럼 말이다. 테르미즈에서 서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이란이 나온다. 이란의 카스피 해 연안 말리크에서 출토한 BC 4000년 경 고배 형태 그릇을 프랑스 파리 루브르에서 만난다. 선사시대부터 동서로 많은 유물이 교류된 인류사에서 고배 역시 동서양을 오간 교류의 산물일까?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에서 볼 경우 평균 21만원 정도라고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내다봤다. 장바구니 물가 걱정과 함께 조상의 얼이 스민 제사 문화의 유래를 더듬어 보는 한가위가 되길 보름달이 뜨기에 앞서 미리 빌어본다.


문화일보에 3주 단위로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는 '동서문명사'와 'TV저널리즘'을 강의합니다. (편집자주)

편집 : 양영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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