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북핵

   
▲ 이창우 기자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유엔 안보리의 만장일치 대북 결의안 채택이다. '가장 강력한 제재'라는 수사가 화자만 바뀌어 되풀이된 뒤에는 북한의 또 다른 군사모험이 이어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지난 3일 6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국제사회는 유례없이 강력한 제재내용의 2375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은 화성-12형 미사일을 3천600km 날려 보냈다. 유감스럽지만 2006년 첫 핵실험 이후 제재가 북을 주저앉히는 성과를 거둔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핵과 미사일 실험은 매번 진전을 보였고 이제는 최소 50 Kt의 폭발력과 ICBM 기술을 갖췄다고 평가된다. 국제사회의 공인은 없지만 실질적인 핵무장국가로 거듭난 셈이다.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여는 대신 제재에만 몰입한 결과다.

▲ 안전 보장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안 2375호는 천연 가스 액체의 판매 금지 및 섬유 수출에 대한 규제, 북한주민들의 유엔가입국 노동 허가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 UN 홈페이지

'가장 강력한 제재'가 수사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앞으로 쓸 카드를 남겨놓기 위해서는 조금씩 강도를 높여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작 현실적으로 강도 높은 제재는 채택되기 쉽지 않다.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결의안에서도 초안에 담겼던 석유의 전면 금수조치와 김정은의 계좌 동결은 실현되지 못했다. 두 나라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미국으로서도 외교적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눈총을 견디지 못해 중국과 러시아가 더 수위 높은 제재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북핵문제가 전향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낮다.

먼저 북한이 경제제재를 버틸 가능성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지난 6일 “중국이 석유 공급을 중단할 경우, 북한은 고체 탄화수소로 인조석유를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남흥화학단지의 ‘무연탄 가스화 시설’을 근거로 들었다. 석탄의 액화는 석탄의 가스화에서 조금 더 발전한 기술이다. 엄밀히 말해 중국의 석유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여러 차례 경제 제재가 이어지는 동안 북한이 자급자족을 위해 충실히 준비했을 개연성도 높다. 제재에 효과가 없다면 중국은 북한을 자극하는 미국의 군사위협에 책임을 돌릴 것이다. 이후 동북아는 북한을 사이에 두고 G2를 축으로 하는 신냉전의 한복판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설사 북한이 제재를 버티지 못한다고 해도 김정은 위원장이 인민들을 살리기 위해 핵무장을 포기할 거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미국과 타협해 핵무장을 포기한 카다피의 최후를 북한이 모를 리 없다. 더 위험한 가능성은 북한의 돌발행동이다. 1996년 이후 북한을 45번이나 방문했던 북한 전문가 미우라 마츠우라 박사는 <38노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재가 계속될 경우 ‘1941년의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으로부터 석유 금수 조치를 당한 일본은 연료 부족 현상이 빚어지자 1941년 진주만 공습이란 무모한 도박에 나섰다. 어떤 방식으로든 체제보장의 기회가 없다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공멸을 선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미동맹의 태도는 동북아에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지만, 한국의 국익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중·러가 제안한 쌍중단 해법에 대해 일고의 고민 없이 거부하는 미국의 태도에서 그 사실이 드러난다. 지난 6월, 계춘영 인도 주재 북한대사는 인도방송 위온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할 경우 핵·미사일 실험의 동결조건을 논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올해 역시 훈련은 진행됐다. 최근 대통령의 행보는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대변인 같아 보인다. 운전대를 잡기 전에 목적지를 제대로 설정하는 게 대통령의 임무다. 우리의 목적지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즉 평화다. 단기적으로는 북한과 미국의 평화협정,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역내 국가들의 군축이다. 스스로 향해야 할 평화의 목적지를 빼앗기고 타인의 운전석에 앉은 대리기사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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