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트루맛쇼’로 지상파 TV와 맞선 김재환 감독

"판사님도 어이없어 하셨습니다. 이건 참 이상한 소송이라고요. 문화방송(MBC)이 늘 (소송을) 당해왔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명분으로 방어를 해왔는데 이렇게 한다면 앞으로 MBC에게 무척 불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셨죠. 그때 MBC측 변호사가 당황하더라고요."

 ▲ 영화 <트루맛쇼> 포스터.
지난달 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로 주목받고 있는 김재환 감독이 지난달 6일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소송 뒷얘기와 영화 얘기를 풀어 놓았다. 트루맛쇼는 TV 맛집 프로그램의 비리와 허상을 폭로하는 다큐 영화다. 한 회 분에 1000만 원가량의 돈을 찔러주니 평범한 식당이 내로라하는 맛집으로 둔갑하고, 메뉴에 없는 음식도 급조해서 방송에 내보내는 장면 등을 생생하게 담았다. 트루맛쇼가 공개된 후 서울방송(SBS) '생방송 투데이’와 MBC ‘생방송 오늘 아침’은 맛집 소개 코너를 폐지했다.

일회성 고발로 그칠 수도 있었던 트루맛쇼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은 MBC였다. MBC는 영화가 사실을 왜곡했다며 지난 5월 25일 서울남부지법에 트루맛쇼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달 1일 이를 기각했다.

법원은 “트루맛쇼는 현실을 고발했으며, 대본에 따라 연출된 내용을 실제 상황인 것처럼 방송하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어 공익적 목적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MBC 측은 “돈을 받은 사람은 홍보대행사 직원이고 방송국과 제작사는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김 감독은 홍보대행사와 제작진간의 대화 녹취록을 재판부에 제출해 이를 뒤집었다.

BBC를 벤치마킹하려면 제대로 해야

소송 해프닝은 지나갔지만 방송사들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한국방송(K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은 ‘일부 독립제작사들의 문제일 뿐’이라며 몇몇 외주사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것으로 사태를 봉합하려 하고 있다. 그러니 그 불똥이 힘없는 독립제작사들에게 튀고 있는 실정이다. 김 감독은 “트루맛쇼를 조장하는 ‘빅브라더’는 거대방송사들”이라고 지적했다. 독립제작사들은 형편없이 낮은 제작비를 받고 저작권은 다 뺏기기 때문에 생존이 어렵다는 것이다. 

“먼저 방송사들이 쿨하게 사과하고 제작비를 현실화해야 해요. 양심을 팔지 않고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비를 줘야합니다. 그리고 저작권은 공유해야 합니다. BBC의 모든 것을 다 벤치마킹한다면서 저작권 관행은 왜 안 배우는지 모르겠어요.”

 ▲ 영화 <트루맛쇼>의 김재환 감독. ⓒ B2E 제공

김 감독에 따르면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일정기간 외주사와 저작권을 공유하다가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저작권을 외주사에게 넘겨준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지상파 방송사들은 한번 프로그램을 납품받으면 그걸 만든 제작사들의 저작권을 다 가져갈 뿐만 아니라 2차 저작권, 즉 원작을 가공한 작품에 대한 권리까지 뺏어간다. 그래서 독립제작사들은 자기네가 찍은 영상을 재가공한 프로그램도 만들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김 감독이 대표로 있는 비투이(B2E)도 MBC, KBS, SBS 등 지상파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하고 있는 독립제작사다. 김 감독은 트루맛쇼 때문에 앞으로 프로그램 납품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양심 팔지 않고 잘 해왔다는 거예요. 앞으로도 양심 팔지 않고 잘 할 생각입니다. 직원들에게도 얘기했어요. 너네 일 안하더라도 자본 떨어질 때까지는 월급을 주겠다고. 자본 떨어지면 우리 다 같이 족구나 하러가든지 집에 가든지 하자고요. 직원들은 빨리 망하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어요.(웃음)”

그냥 묻힐 수도 있던 영화, ‘트위터 입소문’이 살려

트루맛쇼는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JIFF)에 출품돼 장편 경쟁부문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후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타다가 지난달 2일 정식 개봉했다. 개봉 한 달이 조금 넘은 7월 5일 현재 전국 9개 상영관에서 누적 관객 수 1만332명을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언뜻 보면 그리 많지 않은 숫자 같지만 다큐멘터리로서는 상당한 ‘히트’다.

▲ 트루맛쇼의 한 장면. ⓒ <트루맛쇼>네이버 블로그

“트루맛쇼를 위해 첫 인터뷰를 한 게 3년 전, 식당을 연 게 2년 전이에요. 개봉까지 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스트레스를 받았겠어요? 은행 대출도 안 되는 상황에 제작비는 5억이나 쓰고,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도 내용을 숨기면서 말이에요. 그러면서 관객들이 반응을 하지 않으면 영화는 묻혀버릴 것이라고 걱정했어요. 그런데 첫 번째 보신 분들이 너무 열정적으로 트위터에 올려주셨고, 리뷰도 자발적으로 써주시면서 이 난리가 난 거거든요.”

트루맛쇼의 영상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몰래카메라’를 동원했기 때문이다. 브로커나 홍보대행사를 통해 맛집이 지상파 TV에서 소개되는 과정을 모두 몰래 촬영했다. 이를 위해 카메라를 숨겨두기 쉬운 인테리어로 직접 식당을 차렸다. 이 때문에 ‘함정취재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또 영화에서는 모자이크나 음성변조를 하지 않고 손님으로 온 유명 인사들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영화엔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 단골집을 소개하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를 하는 김재철 MBC 사장도 나온다.

“이런 방식이 아니고선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연예인들은 처음 찾는 곳을 마치 단골 맛집인 것처럼 소개하죠.”

김 감독은 시청자들이 이제 ‘방송의 가면’을 깨닫고 그 속임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작된 허상을 무비판적으로 보면서 열심히 시청률을 올려주는 대신 한 번쯤 의심하며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시청자 게시판에 의견 한 줄 올리는 열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트루맛쇼보다 더 충격적인 영상 준비 중”

▲ 김재환 감독. ⓒ B2E 제공
김 감독은 1996년 MBC 피디(PD)로 입사해 <타임머신> <MBC스페셜> 등 여러 교양프로그램을 연출하다 2002년 퇴사해 독립프로덕션을 차렸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내 회사’를 직접 꾸려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MBA(경영학석사과정)를 가려다 무심코 MBC에 가게 됐는데 한끝차이가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았네요.”

김 감독은 교양 PD로 활약해 온 감을 살려 대중적이면서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현실을 고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곳곳에서 관객이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재미’도 잘 버무렸다. 트루맛쇼를 본 관객들은 그를 ‘골리앗을 잡은 다윗’, 혹은 ‘한국의 마이클 무어(영화 ’식코‘의 감독)’로 부르기도 한다.

“마이클 무어라.......대중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는 의미에선 닮고 싶지만 외모만큼은.......(웃음)”

김 감독은 앞으로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을 업으로 하는 미디어 권력이 거꾸로 취재를 당하는 상황을 포함, 우리 사회의 다양한 권력을 거꾸로 조명하는 ‘역지사지’ 시리즈와 ‘미디어 비판’ 시리즈를 계속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극영화로 역지사지 시리즈 2탄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쯤 개봉할 예정으로 한창 촬영 중이라고 한다. 김 감독은 “트루맛쇼보다 더 충격적인 퍼포먼스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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