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틈'

▲ 박지원

나는 지훈이 좋다. 그는 착하다. 친구들이 못 먹는 반찬은 대신 먹어준다. 선생님 심부름도 그의 몫이다. 그는 공부도 잘한다. 받아쓰기도, 덧셈⋅뺄셈도 척척 해낸다. 그는 멋있다. 달리기도 우리 반에서 1등이다. 그는 떠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그가 웃으면 꼭 해바라기가 활짝 피는 것만 같다. 나는 그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

지훈과 친해지고 싶지만, 나와 그 사이에는 틈이 있다. 그 틈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반장 선거 날에는 지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를 반장으로 추천했다. 반 친구들도 그를 좋아해서 반장으로 뽑아줬다. 선생님도 심부름 잘하는 그를 예뻐했다. 그런데 다음날 그는 반장이 아니라 부반장이 됐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지훈이 엄마가 부탁해서 그런 것이라 전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어제 선생님에게 따지러 우르르 교무실로 몰려간 아줌마들 때문일 것이다. 지훈에게 잘 보이려 했다가 상처만 준 것 같다.

지훈과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는 가끔 있었다. 소풍날은 그래서 손꼽아 기다렸다. 전날 밤에는 제발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소풍날 우리를 갈라놓은 건 날씨가 아니었다. 선생님들이 느닷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별로 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는 지훈과 동물 구경도, 도시락 먹는 것도 함께하지 못했다. 밥 먹을 시간이 되자 선생님들은 지훈이 조에는 얼씬도 안 하고 우리 조 근처만 맴돌았다. 우리 조에서는 선생님들을 위한 3단 도시락이 줄줄이 나왔다.

▲ 나와 그 사이에는 틈이 있다. 그 틈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 flickr

소풍으로 속상했던 마음은 며칠 뒤 사르르 녹았다. 알고 보니 지훈은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그에게 학교 끝나면 집에 같이 가자고 말을 걸었다. 착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집에 가던 길이 지훈과 함께 걸으니 더 예뻐 보였다. 그런데 그 길이 그에게는 낯설었나 보다. 걸음을 멈추고 자기는 이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엄마가 여기 입구로 들어가면 안 된댔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다급해진 나는 우리 아파트 놀이터를 가리켰다. “여기서 놀고 가자!”

지훈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다른 반 친구들이 불쑥 끼어들었다. “야 너네 몇 동 사냐?” “나는 B동.” 지훈의 말에 그 아이들은 표정을 구겼다. A동에 산다는 내 말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더니, 지훈에게는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B동 애들은 여기서 놀지 못한다고, 자기 엄마가 그랬다고 윽박질렀다. “B동 거지~ ‘휴거’래요~” 그 아이들은 재밌는 놀잇감이라도 찾은 것처럼 킥킥댔다. 이윽고 지훈은 창백해진 얼굴로 책가방을 집어 들더니 놀이터를 나갔다. “지훈아!” 애타는 내 부름에도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지훈과 나의 틈은 언제쯤 좁혀질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10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숭실대 졸업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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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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