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곽영신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원

▲ 곽영신 연구원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회

“그리스도는 히틀러를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 세계 교회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는 바로 이 문장 아닐까?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권좌에 올랐을 때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은 “히틀러와 국가 사회주의는 독일 민족을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자 성령의 길”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독일교회는 인류 역사에 보편적 악인으로 기록될 존재의 실체를 분별하지 못했고, 설사 눈치챘다 하더라도 철저히 굴복하고 말았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칼 바르트와 고백교회 등이 ‘미친 운전자’를 막기 위해 저항의 목소리를 냈지만 나치주의의 폭주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인류 지성과 신학의 중심이었던 독일교회의 ‘흑역사’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그는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인터뷰를 남겼다. “한국 개신교는 내가 아는 한 가장 타락한 교회이다. 개신교 역사상 지금의 한국 교회만큼 타락한 교회는 없었다.”1) 아니, 대체 어느 정도기에? 한국 교회가 히틀러와 놀아난 독일 교회보다 더 타락했다고?

▲ 한국 개신교의 비리를 고발한 곽영신 연구원의 저서. ⓒ 오월의봄

인터뷰가 이뤄진 2011년 당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금권선거,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일가의 교회 사유화 논란, 사랑의교회 새 예배당 특혜 시비 등으로 시끄러운 때였다. ‘개독교’,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상황’이라는 말이 나왔다. 독일 교회는 그나마 전설적인 독재자의 패악질에 끌려다니는 형국이었지만, 한국 교회는 정의·자유·평등의 영역에서 한 걸음 진보하려는 사회의 뒷덜미를 잡고 적극적으로 뒷걸음치게 하는 장본인이었다. 그러니 기독교윤리실천을 이끌며 교회 개혁운동을 펼치던 손 교수에게 한국 교회는 2000년 개신교 역사상 ‘최악’으로 꼽을 만큼 참담한 모습이었을 수밖에.

교회는 본래 ‘천국의 열쇠’를 지녔다고 일컬어지며 세상 모든 공동체의 본보기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공동체 중의 공동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교회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는커녕 온갖 부정부패와 퇴행의 본산으로 기능하며 ‘지옥(헬조선)으로 가는 급행열차’ 티켓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

참담한 한국 교회의 모습은 2017년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어떤 교회·목사들은 그 어떠한 변화와 견제도 거부한 채 ‘시즌제 드라마’처럼 말썽을 이어가고 있다. 개신교 내부에서는 극히 일부일 뿐이라 자위하지만, 논란이 되는 인물·단체는 사실상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얼굴들이며 아직도 많은 교회가 그 영향력 아래서 그들의 성공을 욕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최근까지 교계와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몇몇 교회의 사례들이다.

[돈] : 먼저 ‘세계 최대의 단일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조용기 원로목사. 대법원은 지난 5월 17일 조 목사가 투자 명목으로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 소유의 영리법인 주식을 적정가의 2배 이상 가격으로 매수해 교회에 130억여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선고를 확정했다. 이후 여의도교회 교회바로세우기장로기도모임은 “조 목사가 특별선교비 600억, 퇴직금 200억, 부동산 근저당 설정을 통한 85억 등 총 885억 원을 횡령했다”며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권력] : 다음으로 자칭 ‘한국 3위 교회’ 사랑의교회와 오정현 목사. 서울행정법원은 1월 13일 서초구 주민들이 구청을 상대로 사랑의교회에 대한 도로점용과 건축 허가를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도로점용 허가 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09년 사랑의교회가 2,900억 원을 들여 대법원 앞에 지상 14층 지하 8층짜리 새 예배당을 건축할 때, 서초구는 공공도로인 참나리길 지하공간 1077㎡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당시 이에 대해 비판이 일자 오정현 담임목사는 “누가 뭐라 하든 세상 사회법 위에 도덕법 있고 도덕법 위에 영적 제사법이 있다”고 말했다.

[섹스] : 왕년의 ‘스타 목사’ 홍대새교회 전병욱 목사. 서울고등법원은 6월 1일 전 목사에 대해 “담임목사의 지위를 이용해 장기간 다수의 여성신도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해온 것으로 인정된다”며, 그가 몸담았던 삼일교회에게 피해자 위로금 8,500만 원과 손해배상액 1,500만 원 등 총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전 목사가 소속된 예장합동 교단 평양노회는 지난 2016년 그가 ‘부적절한 대화와 처신을 한 것이 인정된다’며 공직 정지 2년, 설교 2개월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 적이 있다.

신학자 존 파이퍼는 “권력과 돈과 성은 모두 당신이 무엇을 가치로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이 주신 도구”이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지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들”2)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욕망인 돈, 권력, 섹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그것을 어떻게 향유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언인지(신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 ‘대표 선수’ 조용기 목사, 오정현 목사, 전병욱 목사가 삶에서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과연 무언인가? 하나님인가? 돈과 권력, 섹스 그 자체인가?

▲ 인간의 내면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돈과 섹스와 권력’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존 파이퍼의 <돈, 섹스,그리고 권력>. ⓒ 생명의말씀사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 교회는 ‘신의 영광’이라는 위장 아래 소수 대형교회와 목사들이 모든 물질과 권력을 독점하고, 이를 마음껏 휘두르는 게 일상화되어 있는 구조다. 다른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이런 모습을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동경하고 추종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상인 황금소가 신의 윗자리에 올라간 전형적인 사례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모습은 곧 ‘회칠한 무덤’ 같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장 27절)”

그릇된 미디어, 그릇된 메시지

재정 전횡, 교회 세습, 정교 유착, 성폭력, 무분별한 예배당 건축, 목회 독재, 논문 및 설교 표절 등. 한국 교회·목사들의 적폐를 직시하고 잘못된 성공 신화를 파괴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교회와 목사는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하나의 미디어로서 역할하고 있는데, 그릇된 미디어는 필연적으로 그릇된 메시지를 전파할 수밖에 없고 이는 사회 전체에 위험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교회의 여러 가지 본질 - ‘선포(케리그마)’, ‘섬김(디아코니아)’, ‘사귐(코이노니아)’ 중에서도 단연 중요한 것은 선포(전도) 사역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영원한 생명에 대해 선포하는 곳이고 이것이 다른 조직이나 단체와 가장 차별되는 점이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선포 활동이 가장 세속의 욕망이 충실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다면? 과연 그 메시지의 순수성과 영향력이 확보될 수 있을까? 고장 난 미디어에서 나오는 ‘복된 소식’은 왜곡되고 굴절돼 한낱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해 버리지 않을까?

교회 돈 수십 수백억을 빼돌리고도 여전히 강단 위에서 군림하는 목사는 그 존재 자체로 이 사회에 ‘돈이 최고’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사회의 법과 규칙을 무시하면서까지 힘자랑을 하는 목사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 성도를 성추행하고도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목사 역시 이기적 쾌락 추구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한국 교회가 전파하는 공동체적 메시지가 교리적으로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경제적으로는 ‘부자 되세요!’, 정치사회적으로는 ‘태극기와 성조기’, 문화적으로는 ‘소수자 혐오’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이유다.

거룩함 – 모퉁이 남기기, 공평한 저울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떤 미디어가 되어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 이스라엘 민족의 법규를 다룬 <레위기>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거룩하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거룩’은 단순한 도덕적 깨끗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세속 가치에서 ‘구별됨’을 뜻한다. 우상에 무릎 꿇으려는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김근주 목사는 <레위기> 19장을 해석하며 거룩한 삶이란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돌아보고 정의·공의를 추구하는 ‘공적 삶’이라고 설명한다.

“농사하는 이에게 거룩한 삶은 밭의 한 모퉁이를 남기는 것, 수확하면서 흘린 것을 다시 줍지 않는 것이다. 고용주에게 거룩함은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들의 품삯을 속이거나 착취하지 않는 것이다. 재판하는 이들에게 거룩함은 재판 당사자들의 외모를 보지 않고 오직 정의로 판결하는 것이다. 장사하는 이들의 거룩함은 물건을 살 때나 팔 때나 동일한 도량형을 사용하는 것이다.”3)

▲ 구약의 여러 본문을 성실히 주석한 <복음의 공공성>. ⓒ 비아토르

한국 교회 역시 이런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거룩한 미디어가 되어 거룩한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거룩이란, 교인들의 사유재산을 모아 (초호화 예배당을 짓는 게 아니라) 그 돈을 경제적 약자에게 나눠주고 이에 더해 정치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또 한국 사회가 극심한 양극화에서 벗어나 모든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여유롭고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시스템을 변혁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다. 정부, 국회, 법조계, 학계, 언론 등 공적기관들이 정의와 공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여성, 성 소수자, 이주민 노동자 등 상대적 약자들이 공동체 속에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남북한이 상대를 겨누고 있는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의 손을 맞잡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한국 교회가 이해하는 개인적-기복적-내세지향적 복음은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적-역사적-현실(우주)변혁적 복음으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영생과 부활은 마음 맞는 사람 몇몇이 하늘 위(천국)로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며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전 우주적으로 사랑, 정의, 공의, 자유, 평화 등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육체로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신학자 톰 라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이 땅으로 내려온다. 실제로 교회 자체가 천국의 예루살렘이 이 땅으로 내려온다.”4) 기독교의 진짜 복음은 이 땅에서 이루어질 전 우주적 공동체의 회복이다.

▲ 2001년 한 해 동안 저자 톰 라이트가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했던 강연을 토대로 엮은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 IVP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21장 1~2절)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다시 독일교회로 돌아가 보자.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히틀러 정권이 무너지자 독일 교회는 자신의 공동체적 책임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후 사회백서, 연구서 등의 문서나 기독교 정당 등을 통해 균형 잡힌 정치 참여를 추구하며 독일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독일이 전쟁에서 자행한 죄를 고백하는 슈투트가르트 성명서를 발표해 독일인 최후의 양심을 지켰고, 분단 40여 년 동안 동서독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독일 통일을 앞당겼다. 또 1991년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패권이 확산되는 시기 독일교회연합은 ‘공동선과 개인이익, 미래에 대한 책임 안에서의 경제활동’이라는 제목의 백서를 펴내 경제정의와 연대를 강조하고 사회적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독일이 지니고 있는 공동체 중심의 사회적 역량은 독일 교회의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는 곳곳에서 대형집회를 열고 ‘회개와 갱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화려한 대형 예배당 강단에 서서 적폐 청산 대상일 가능성이 높은 교회 지도자들이 던지는 메시지엔 아무런 생명력이 없었다. 이에 눈 밝은 신학생들의 모임인 신학생시국연석회의는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을 본 따 교회 개혁과제 ‘96개 논제’를 발표하고 “뱀이 그 허물을 벗는다 한들 비둘기가 될 수 없듯이 교회도 본래의 잘못을 가진 채 일회적 참회 퍼포먼스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릴 수 없다”고 일갈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장 19절)”라고 말했듯 지금의 한국 교회는 허물어져야 한다. 휘황하지만 속은 텅 빈 교회를 무너뜨리고 그 위에 개인과 공공의 가치를 아우르는 전 우주적 회복의 공동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교회가 살길은 덧없는 욕망, 특정한 정치와 이념을 넘어 복음이라는 종교적 메시지 자체로 그 누구보다 전위적인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최초의 교회였던 사도 교회는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사도행전 2장 44절~45절)” 세상에 충격파를 던지는 불온한 공동체였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길이다.

1) “한국 교회,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 <시사저널>, 2011.2.21.
2) 존 파이퍼, <돈, 섹스 그리고 권력>, 생명의말씀사, 2017, P23.
3) 김근주, <복음의 공공성>, 2017, p227.
4) 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 IVP, p177.


* 이 글은 민음사가 발행하는 격월간 문학잡지 <Littor(릿터)> 8/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필자 곽영신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을 졸업하고 <국민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지금은 세명대에서 저널리즘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한국 개신교의 비리를 고발한 책 <거룩한 코미디>를 썼습니다.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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