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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발리볼’ 4세기 로마에서 시작
[김문환의 유물 풍속문화사] ⑥ 로마 유적 속 수영복 차림 여인들
[문화일보 공동연재]
2017년 08월 08일 (화) 12:10:38 김문환 kimunan@hanmail.net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작열하는 태양 빛이 바다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요즘 문득 배리 매닐로가 떠오른다. 이름보다 더 감미로운 음색으로 197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팝가수. 어느새 70줄에 들어선 그가 35세 되던 1978년 내놓은 곡 ‘코파카바나(Copacabana)’. 노랫말 속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연중 붐빈다. 특히 리우 카니발이 열리는 매년 2월이면 더욱 그렇다. 해변을 수놓는 원색의 수영복, 아니 비키니 물결. 건강함을 내뿜는 비키니 차림 여인들이 해변 모래사장에서 펼치는 비치발리볼은 축제 못지않게 분위기를 후끈 달군다. 사진 속 비키니 차림의 비치발리볼 풍경은 코파카바나 해변인가? 아니다. 동해나 서해도 아니다. 놀랍게도 4세기 로마 시대다.

   
▲ 4세기 초에 세워진 이탈리아 피아차 아르메리나의 카살레 빌라 바닥을 촬영한 사진. 비키니를 입고 공놀이를 하거나 서 있는 여성의 모습이 모자이크 장식으로 형상화돼 있다. ⓒ 김문환
 
카르페 디엠의 현실 중시 로마 풍속 
 
“베나리(Venari) = 사냥, 라바리(Lavari) = 목욕, 루데레(Ludere) = 경기, 리데레(Ridere) = 쾌락, 호크 에스트 비베레(Hoc Est Vivere) = 이것이 사는 것이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남아있는 로마 시대 도시 유적 팀가드의 건물 초석에 적혀 있던 말이다. 라틴어 단어들이 낯설지만, 언뜻 봐도 살아볼 만한 인생임이 틀림없다. 사냥 다니고, 목욕으로 피로를 풀며 지인들과 교유하고, 검투 경기나 전차 경주 관람으로 스트레스를 날리고, 저녁이면 심포지엄에서 포도주를 즐기며 쾌락에 탐닉하는 삶. 공화정 로마를 옹호했던 BC 1세기 서정시인 호라티우스가 이런 삶에 멋진 시어를 붙여줬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카르페(Carpe)’는 ‘잡다, 놓치지 않다(Catch, Seize)’, ‘디엠(Diem)’은 ‘날(Day)’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날을 잡아라’.
 
다시 말하면,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지 말고 마음껏 즐기며 살라는 충고다. 현실 지향적인 로마사회의 가치관이 잘 묻어나는 표현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 Society)’에서 키팅 선생 역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 그가 극 중 학생들에게 던진 말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다. 대학입시에 매달려 현재의 낭만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비록 자신은 넉넉한 웃음으로 친숙하던 연기인생을 2014년 자살로 마감하는 아이러니로 팬들의 가슴을 적셨지만….
 
   
▲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의 스타비아 목욕탕 전경. 로마 시대 공중목욕탕인 이곳에 딸린 체력단련운동장 팔레스트라에는 공놀이방 스파이리스테리온이 붙어 있었다.(왼쪽 사진) 비키니를 입고 공놀이하는 여성들의 모형이 영국 바스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오른쪽)  ⓒ 김문환
 
시칠리아 카살레 빌라 모자이크 속 로마 풍경
 
로마인들의 ‘카르페 디엠’ 풍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체적인 유물은 없을까? 궁금증을 안고 지중해 아름다운 섬 시칠리아의 산속 피아차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 카살레 빌라(Casale Villa)로 발길을 옮겨보자. 1972년 나온 영화 ‘대부(The Godfather)’ 1편에서 배우 알 파치노가 마피아 두목(말런 브랜도)의 아들 마이클로 분해 적대 파벌 두목을 죽이고 숨어들었던 시칠리아 산중. 주제음악과 함께 더욱 목가적인 풍경이 돋보이던 시칠리아 깊은 산 속에서 알 파치노가 사냥총을 들고 튀어나올 것 같은 바로 그 분위기의 ‘카살레 빌라’는 4세기 초 로마 시대에 지은 초대형 빌라(대농장에 지은 큰 별장주택)다. 요즘 연립주택이나 저층 아파트를 빌라라고 흔히 부르는데, 로마 시대의 빌라는 그게 아니다. 라티푼디움(Latifundium). 그러니까, 귀족이 갖고 있는 광대한 토지의 농장 속 저택을 가리킨다. 유럽 각지에 남아 있는 중세 영주들의 성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쪽 60㎞ 지점 말리부 해안의 호화 주택을 떠올리면 쉽다.
 
카살레 빌라의 바닥은 모자이크(Mosaic, 그리스 로마 시대 바닥장식 예술)로 장식돼 있다. 모자이크는 2∼3㎜ 크기의 대리석, 유리, 도자기 조각 테세라(Tesserae)를 촘촘하게 바닥에 붙여 만든 예술작품이다. 동시에 질척거림을 막는 방수 건축기법이기도 하다. 바닥에 설치된 덕분에 건물이 무너졌는데도 2000년 세월을 오롯이 천연색 이미지로 남아 당대의 풍속, 농경, 스포츠, 역사, 신화를 전해 준다. 카살레 빌라가 간직한 로마의 풍속 화첩 가운데 한 장면이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비키니 차림으로 비치발리볼을 하는 여인들이다.
 
스트로피움 + 수블리가쿨룸 = 로마 비키니
 
빌라 침실의 바닥을 장식했던 모자이크 속 금발 로마 여인의 비키니 차림새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아래 입은 팬티는 ‘수블리가쿨룸(Subligaculum)’이라 부른다, 가슴을 가리는 브라는 ‘스트로피움(Strophium)’이란 이름을 가졌다. 이 둘을 합쳐야 요즘 말하는 비키니다. 왼쪽 여성은 수블리가쿨룸의 옆 부분을 터서 각선미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오른쪽 여성으로 눈을 돌려보자. 공을 받으려는 자세다. 입술에는 빨갛게 루주도 발랐다. 매력을 한껏 드러내 보이려는 요즘 해변의 여인과 다를 바 없다.
 
비치발리볼을 하는 여인 2명 말고 그 옆에 서 있는 별도의 비키니 차림 여인이 착용한 스트로피움은 푸른색이다. 로마 여인들이 그만큼 패션에 신경을 썼다는 의미다. 스트로피움은 여인들만 착용했지만, 수블리가쿨룸은 남녀 공용이다. 남자들도 입었던 것이다. 주로 검투사들이 원형경기장에서 피비린내 나는 경기를 펼칠 때 입은 간편한 삼각팬티가 수블리가쿨룸이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로마 시대에는 없던 ‘비키니(Bikini)’란 이름은 언제 생겼을까?
 
핵폭탄 실험장소 비키니 환초에서 나온 이름
 
태평양 절해고도(絶海孤島). 생명의 씨앗까지 태워버리는 원자폭탄의 실험장소가 비키니 환초(環礁, Bikini Atoll)다. 북태평양 마셜 군도(Marshall Islands) 북쪽 북위 11도 지점 푸른 바다 위에 목만 살짝 내밀고 앉은 섬이다. 네바다 사막에서 핵실험을 하던 미국이 자국 영토를 벗어나 이곳에서 원주민을 이주시킨 뒤 1946년부터 원자탄 실험을 시작했다. 지구상에서 미국만 2번 사용한, 가공할 위력의 핵무기만큼이나 충격적이고 뜨거운 수영복이라 해서 ‘비키니’란 이름을 붙였다.
 
그렇다면 로마 시대 비키니 복장은 언제 사라졌고, 언제 다시 등장해 이런 이름을 얻은 것일까? 비키니 수영복은 로마가 기독교 사회로 진입하면서 쇠퇴하고, 특히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에 멸망하면서 카르페 디엠의 문화와 함께 자취를 감춘다. 중세 1000년과 이어진 근세를 거치며 여인들은 온몸을 칭칭 감은 옷만 입어야 했다. 그러다 20세기 들어 간헐적으로 선보이는데, 독재자 히틀러의 애인 에바 브라운이 1940년대 초반에 찍은 사진을 보면 비키니 스타일의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대중화, 초기에는 금지하기도
 
하지만 초(超)미니비키니의 출발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6년이다. 프랑스에서 L 레아르와 J 아임이 디자인한 비키니를 입고 M 베르나르디니라는 여인이 사진을 찍었다. 당시 5만 통의 팬레터를 받았다고 하니, 요즘 말로 ‘인기 짱’이었는데,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미국에서 그랬다. 1950년대 미국 수영복 업체 사장이던 F 콜은 “키 작은 갈리아 여인(Diminutive Gallic women)의 옷”이라고 깎아내렸다. 라틴어로 프랑스를 갈리아라고 하니, 키 작은 프랑스 여성들은 짧은 다리를 길게 보이려고 비키니를 입는다는 민족 차별, 여성 차별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1940년대 미국 여자 수영선수이자 인기 영화스타이던 제인 윌리엄스는 “비키니는 경솔한 짓”이라며 비키니로 몸매를 드러내는 일에 손사래를 쳤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가톨릭이 성한 나라에서는 아예 법으로 금지했다. 성의 상품화 논쟁을 빚는 미스 월드 선발대회에서도 1회 대회 비키니 심사를 야회복 심사로 바꿀 정도였다.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하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인 셈이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007 영화가 비키니 기폭제
 
이때 용감하게 나선 여인이 브리지트 바르도. 한국의 보신(補身)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전 1953년부터 칸 영화제에 나와 비키니를 입었다. 1956년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Et Dieu…Crea la Femme)’에서 입은 뒤, 그녀가 살던 남프랑스 지중해안 생 트로페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한 명의 여배우가 더 등장하는데, 스위스 출신 우르술라 안드레스. 1962년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신 배우 숀 코너리와 공연한 007 본드 시리즈의 제1탄 ‘닥터 노(Dr. No)’에서 본드 걸(Bond Girl, 본드의 여성 상대)로 나온 우르술라는 바닷물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흰색 비키니를 입었다. 이 아찔한(?) 장면을 훗날 영국 채널 4TV는 비키니가 나온 영화의 최고 장면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후 미국으로 옮아가서 성문화의 상징 플레이보이가 1962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1964년 비키니 사진을 실으면서 대중화된다.
 
로마시대 목욕탕 팔레스트라 스파이리스테리온 공놀이
 
비키니 변천사 뒤에 다시 궁금해진다. 로마 여인들은 어디서 비키니 차림으로 운동을 즐겼는가. 해변인가? 목까지 차오른 호기심을 누르며 장소를 영국 서부지방의 로마 시대 온천지대 바스(Bath)로 옮겨보자. 영어로 목욕을 뜻하는 바스란 단어의 기원이 되는 이곳에 가면 로마시대 초대형 목욕탕 유적이 복원돼 있다. 대욕장 옆에 자리한 바스 박물관에 당시 목욕탕 풍경을 묘사한 모형을 전시 중이다. 로마 여성들의 공놀이 장면이 보인다. 그렇다. 비키니 차림의 로마 여인들이 공놀이를 하는 장소는 해변이 아니다. 대형 공중목욕탕의 체력단련 운동장인 팔레스트라(Palestra)에 딸린 공놀이방 ‘스파이리스테리온(Sphairisterion)’에서 흔히 보던 풍경이다. 목욕탕의 공놀이 기원은 그리스다. 물론 그리스에서는 남자들이 하는 운동이었다. 결국 오늘날 비키니 의상과 비치발리볼은 로마의 카르페 디엠 목욕문화가 남긴 풍속이다. 로마 목욕 풍속은 다음 기회에….

문화일보에 3주 단위로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는 '동서문명사'와 'TV저널리즘'을 강의합니다. (편집자주)

편집 : 고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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