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청춘을 위한 철도여행 안내서 낸 박솔희 씨

남들이 학점 관리, 아르바이트로 바쁠 때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전국을 누볐다. 친구들이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 때, 보고 들은 것을 기사로 썼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묶었다. 지난달 28일 철도여행 안내서 <청춘, 내일로>를 펴낸 박솔희(22·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씨 얘기다.

박 씨는 지난해 6월 말부터 8월 하순까지 일주일 씩 다섯 차례의 기차 여행을 하면서 <오마이뉴스>에 ‘스물한 살, 레일로(Rail路) 가는 칙칙폭폭 전국일주’라는 기사를 연재했다. 이 시리즈를 책으로 묶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달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박 씨를 만났다.

부족한 여행 정보에 "내가 직접 써야겠다"... 기록한 현장을 책으로

▲<청춘, 내일로>의 저자 박솔희 씨.      ⓒ 김수진
“여행을 워낙 좋아해요. 대학에 입학한 이듬해인 2009년에 처음 ‘내일로’를 알게 됐죠. 친구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곤 했어요.”
 
내일로는 한국철도공사에서 여름, 겨울 방학시즌에 만25세 이하 청소년에게 발행하는 할인 승차권이다. 철도를 뜻하는 레일(rail)과 ‘나의 일, 미래’를 뜻하는 내일, 그리고 길을 의미하는 로(路)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5만 4700원을 내면 7일 동안 고속철도(KTX)를 제외한 모든 열차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2007년 여름부터 2010년 겨울까지 총 15만 9천명이 이용했고 승객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여행을 다니던 박 씨는 2009년 가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강의를 듣고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현장의 경험을 기록하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같은 해 제4회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대학내일>에도 프리랜서로 종종 글을 기고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기차 여행 시리즈를 싣긴 했지만 처음부터 책을 쓰겠다는 목표는 없었다. 그런데 기차 여행과 관련한 책을 찾다보니 너무 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여행기를 바탕으로 몇 차례 추가 취재를 더해 원고를 완성했다.

발로 뛰어 실용 정보 가득한 여행서..  여행에선 소중한 인연도

직접 발로 뛰며 써서인지, 책을 펼치는 순간 현장에 가 있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생초짜 내일로어’를 위해 분 단위로 짠 일정표부터 100원까지 알뜰히 챙긴 여행 예산까지 실용적인 정보들을 가득 담고 있다. 책은 크게 준비편, 코스편, 실전편으로 나뉘는데, 코스편에서는 계절에 따라, 혹은 사진촬영(출사)이나 역사여행, 맛집탐방 등 목적에 따라 다르게 짜여진 ‘베스트 추천코스’가 큰 도움이 된다.

▲ <청춘, 내일로>의 책 내용과 표지. 실용적인 정보가 가득 담겨있다.

예컨대 ‘솔희가 추천하는 출사여행 베스트 코스’는 ‘서울-포항-울산-부산-하동-순천-보성-광주-강경-용산’을 제안한다. 호미곶 일출, 순천만 갈대밭, 보성 녹차밭, 황산포구 등 사진 찍기에 특별히 좋은 장소만 모아서 만든 코스다.

지방의 일부 역들이 숙소를 제공한다는 정보도 요긴하다. 단양역, 영주역 등은 ‘내일로 숙소’를 마련해놓고, 해당 역에서 티켓을 끊으면 숙소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 ‘내일로 플러스’라고 불리는 제도인데, 철도공사가 아니라 각 역이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해당 역에서 내일로 티켓을 끊으면 숙소 이용뿐 아니라 주변 지역 관광 상품 할인 등의 혜택도 준다. 숙소는 안 쓰는 관사를 개조해 만든 경우가 많은데, 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샤워, 침구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특히 영주역은 침대칸이 있는 옛날 기차를 숙소로 내준다. 기찻길 옆 바로 옆에 마련된 침실 객차는 일, 이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물건을 놓을 수 있는 선반과 아늑한 조명도 있어 편안하다.

“내일로 여행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이 ‘한국판 게스트하우스’예요.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이불을 깔고 같이 자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경로가 비슷하면 동행을 하죠.”

▲여행 중 배흘림기둥에서.
기차에서 내일로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끼리는 금방 알아본다고 한다. 보통 기차에서 맨 앞이나 맨 뒤에 앉아있으면 백발백중 ‘내일로어’다. 표가 제일 늦게 팔리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내일로 티켓은 지정좌석제가 아니기 때문에 열차에 빈 자리가 있어야 앉을 수 있다. 덕분에 ‘나 홀로 내일로어’들은 쉽게 친구가 된다. 박 씨도 여행 중에 만난 사람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원하는 대학에 못 가게 되자 아예 진학을 포기하고 ‘적게 벌어 적게 쓰자’는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20대 중반 요가강사 언니’도 그 중 하나다. 교육대학을 갓 졸업한 뒤 어머니와 오순도순 여행에 나선 초등학교 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박 씨는 여행에서 수많은 ‘20대’를 만났지만 그들은 하나로 특징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거 세대와 달리 지금의 20대는 ‘반값 등록금’ 등을 눈물로 호소하는, ‘고통 받는 약자’가 된 듯한 느낌이 있다고 덧붙였다.

“생각해보니 20대가 투표를 잘 안 해서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해요. 투표를 했으면 ‘내가 표를 줬으니 이렇게 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 텐데.”  

지금도 재밌는 일을 찾는 그녀,  20대 문제 나누는 토론도 계획 중

▲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스물 두살 그녀는 여행도 집회도 즐기며 한다. 지금도 재미있는 일을 찾는 박솔희 씨는 20대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토론회도 계획중이다. 
그래서 박 씨는 정치권에 ‘압력을 주기위해’ 지난 6월 매일 저녁 광화문으로 출근했다. ‘등록금 투쟁’에 참여한 것이다. 그녀의 집회 참여는 한 마리의 치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트위터에서 ‘선배부대가 치킨을 쏜다’는 말을 듣고 지난 달 4일 집회에 처음 나갔는데, 그날은 ‘치킨 쏘는 날’이 아니었다. 대신 방송인 김제동 씨 등 ‘선배부대’가 함께 한 뒤풀이에 참석하게 됐다.

“열 댓 명 대학생과 선배들 몇몇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취지에 맞게 ‘책 읽는 집회’를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다음 날인 5일 ‘공부 중, 방해하지마세요’ 퍼포먼스가 탄생했다. 김제동 씨, 오연호 대표, 정재승 카이스트(KAIST)교수 등과 시민들이 500여 권의 책을 보내왔다.

박 씨는 등록금 집회를 모두 마친 뒤에 ‘책거리’를 겸해 공연도 하고 떡도 돌리고, 20대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토론회도 열려고 생각 중이다. 그 외에는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이런 저런 매체에 마음껏 쓸 작정이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이 또 생기더라고요.”

‘힘겨운 20대’ ‘아프니까 청춘’ 이라는 말이 자연스런 요즘이지만 박 씨는 의욕에 넘치고 걱정이 없어 보였다. 혹시 ‘주저하지 않고 떠나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올 여름, 기차를 타고 새로운 나를 찾아 과감히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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