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의 편지] 안윤석 PD

▲ 안윤석PD

장미가 송이송이 핀 오후입니다. 대선 전 은퇴할 때 장미를 대통령님 책상에 놓고 나왔는데 잘 받으셨나요? 혹시나 여사님께 드리셨다면 한 송이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라가 장미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요즘이거든요. 얼마든지 연락주세요. 장미는 제 마당에 활짝 피어있으니 언제든 보내드리겠습니다.

시끄러운 청와대를 떠나 조용한 동네 제천으로 가서 산 지 어언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새로 들어온 청소부는 일을 잘하는지 모르겠네요.

오늘도 대통령님 책상에는 조선, 중앙, 동아,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경제, 매일경제 등 종합 일간지들이 놓여 있을 테지요. 대통령님, 보통 사람들에겐 이것들은 그저 편의점에서 800원을 내면 살 수 있는 종이신문일 뿐이겠지만, 공인이나 정치인에게 신문은 국민들이 매일 주는 성적표입니다. 제가 일할 때를 떠올려보면 800원짜리 성적표를 달가워하는 대통령님은 없으셨습니다. 매일 5시 40분에 청소하러 집무실에 들어가면 찢어진 신문쪼가리, 부러진 연필심이 널려 있었습니다. 어떨 땐 깨진 유리컵도 보였구요, 이빨로 물어뜯은 손톱조각도 몇 번 봤습니다. 불안한 게죠. 매일 신문에서 자신이 적나라하게 까밝혀지니, 걱정되고 불안한 것도 당연할겁니다. 국민의 말이란 본디 칼과 같아서 좋은 취지에서 한 말들조차 마음속을 후벼 팔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충언이란 원래 쓰다 해도 아픈 건 아픈 겁니다.

▲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이 되고 야당을 먼저 방문에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연합뉴스TV 갈무리

대통령님은 다른 대통령과 다르더군요. 당선되자마자 야당에게 손을 먼저 내밀고, 경제부분에는 본인의 생각과 다른 사람을 앉혔습니다. 흐뭇했습니다. 기분이 절로 좋아졌어요.

곧 대통령님도 느끼실 겁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불안과 함께 고독을 견디는 자리라는 것을요. 하지만 대통령님, 그 자리는 성인군자의 자리가 아닙니다. 밖에선 공격을 당해도 유연하게 웃으며 대처해야 하고, 여유 있어 보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집무실에서 만큼은 인간적이셔도 됩니다. 다들 그러셨어요. 책상을 발로 차시기도 하고, 욕도 하시고, 쓰레기통도 던졌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맞춰 정치를 하기란 그만큼 어렵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도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 6등법으로 나누고, 그 해의 풍흉에 따라 연분 9등법으로 구분해 세금을 징수하는 공법을 고안할 때는 갈대 같은 백성들의 마음에 힘들어 욕지거리를 하셨다고도 하지요. 그래도 제도를 만들 때마다 백성 개개인의 생각을 물으신 걸 보면 백성들을 얼마나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업적인 한글, 한들도 그 애증의 산물이겠네요. 대통령님, 비판을 받으시면 ‘왜’를 생각하셨음 합니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대했던 마음과 고민을 떠올리셨음 합니다. ‘한글’처럼 500년이 지난 뒤, 사람들이 기억할만한 정책이 만들어지게요.

▲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때도 신하와 소통하고, 제도를 만들때도 백성과의 소통을 중요시했다. ⓒ SBS <뿌리깊은나무> 갈무리

대통령님, 소통에서 모든 것이 나옵니다. 국민들은 생각보다 많이 똑똑합니다. 9년간 소통 없는 일방적인 대화에 국민들의 소통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졌습니다. 결국 작년, 혼자 밥 먹고 드라마만 보는 전 대통령을 바꾸기까지 했지요. 대통령이란 자리, 권력자의 권좌라는 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칼 밑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아서 위기와 불안이 항상 존재합니다. 하지만 ‘왜’를 생각하시고, 소통을 하신다면 광화문 촛불들은 기꺼이 대통령님의 편이 될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말이죠.

청와대에서 창문 넘어 보이는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선 세종대왕은 한글창제를 두고 최만리와 격렬한 토론을 했다 하지요. 대통령님도 비판이란 칼을 보기 좋게 치시는 ‘위기지학’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날카로운 칼도 무뎌지는 법입니다. 위기와 불안의 해결방법은 결국 ‘소통’입니다. ‘대통령이 내 말을 들어주는 구나’, ‘대통령이 내 질문에 이렇게 답해주는 구나’라고 생각하면 국민은 주군을 모시는 호위무사로서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냥 그의 일부이거나 혹은 그를 감사고도는 바람이거나, 그의 갑옷의 일부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소통이란 뒤틀어졌던 사람 마음도 돌려놓을 수 있는 강력하고도 빠른 향과 같기 때문입니다.

곧 장미가 지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오겠지요. 무더위 잘 견뎌내시고 초심을 간직하며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통령님을 모시기 전에 은퇴해 심히 안타깝습니다. 저도 같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춘추관 구석을 걷고 싶었는데 말이죠.

2017. 7. 22.
은퇴해 한적한 제천 땅 솔밭공원 옆에서 장미를 키우고 있는
전 청와대 집무실 청소부 드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어느덧 두 달이 되었다. 촛불 염원은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이었다. 5.18행사장에서 흘린 눈물과 유가족을 포옹하던 일, 의전없이 버스를 타거나 기능직과 식사하고 기자들에게 먼저 질문을 요구하던 초반의 감동은 연이은 인사 실패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여소야대라는 정치상황도 개혁드라이브에 걸림돌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취임 두 달,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비뉴스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제언의 편지를 연재한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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