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연수 참가기

정부가 발표한 ‘2016년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인과 동반가족 49만6천명 중 30대 이하 젊은 층이 24만9천명(50.1%)으로 절반을 넘었다. 젊은층의 귀농·귀촌은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산농촌재단(이사장 오교철)이 지원하는 농업전문언론인양성 장학생 4명(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이 농업리더장학생 8명과 함께 농업과 농촌을 선택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다. 7월 4일부터 3박 4일간 현장을 둘러보고, 추가 취재한 뒤 하계 연수 참가기를 썼다. (편집자)

“여자가 농사지어서 뭐하게”

전북 김제시 진봉면에는 ‘바람난 농부’가 산다. 유지혜 ‘바람난 농부’ 대표(32)는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할 무렵 교육기관을 많이 찾아 다녔는데 주위에서 젊은 농부가 바람났다며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농업도 네이밍이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김제는 1년 중 350일 바람 부는 곳이라서 내 브랜드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유 대표는 2년간 평범한 도시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들은 평생교육원의 ‘농식품 마케팅’이라는 강의를 듣고 귀향해 가업을 잇는 전문 농업인의 길을 걷게 됐다.

▲ ‘바람난 농부’를 찾은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에게 “농업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며 농업인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낸 유지혜 대표. ⓒ 대산농촌재단

“시골에 사는 사람은 사회 부적응자, 패배자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어르신들도 자기는 농사 짓지만 자식은 농사짓지 않게 하려는 생각을 해요. 자식이 농사짓겠다고 내려오면 농약 드시는 분도 계시고요. 할 일 없어서 농사나 지을까 하는 말도 많이 하잖아요. 제겐 부모님이 먼저 ‘농사짓는 게 어떻겠니’라고 제안하셨어요. 일본은 가업 잇는 사람이 많잖아요. 삼성 이건희 회장은 멋있다고 하면서, ‘5천년 넘는 역사를 가진 농업은 무시당하고 천대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께 농사를 짓기는 지을 건데 시간을 달라고 말씀 드렸죠. 직장 생활도 해보고 싶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농사짓는 게 할 일이나 목표, 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주변에서는 “무슨 여자가 농사를 짓냐”, “시집이나 가라”는 등 말도 많이 해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죠. 여자라고 해서 가업을 못 잇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청년여성농부가 말하는 ‘바람난 농업’

26만4462㎡(8만평)이나 되는 농사를 가족운영체계로 짓다 보니 유 대표가 가세하고부터 인건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유씨는 “농업을 시작하고부터 시간을 원하는 대로 조정해 쓸 수 있어서 좋다”며 “농번기에는 하루 17시간씩 일할 때도 있지만 일정시기만 지나면 나머지 시간에 자기계발이나 여행도 즐길 수 있어 그 어떤 직업보다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농한기에 농사지은 쌀과 밀로 빵과 떡, 쿠키 등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그는 SNS를 이용해 우리 쌀과 밀 등 건강한 먹거리를 통한 우리 농산물 알리기에도 적극적이다. “나는 농업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유 대표는 서른을 넘기며 꿈꿨던 강사의 길도 걷고 있다. 중학생 진로교육 특강이나 소비자교육 등의 의뢰를 받아 농업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농업의 세계를 알리는 데 주력한다.

▲ 산이 보이지 않는 전북 김제시 진봉면의 넓은 들에 벼가 자라고 있다. ⓒ 박희영

유 대표는 지난해 출범한 청년여성농업인CEO중앙연합회(청년여성연합회) 회장이다. 그는 “농사지으면서 나 같은 사람 어딘가 있을 텐데 생각했다”며 “농협에서 청년여성농업인을 모아줬는데, 100명 정도가 있었고 그 중 활동의사를 밝힌 사람이 60여 명이 됐다”고 회고한다. 청년여성농부들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청년여성연합회가 태동한 것이다.

유 대표는 “연합회 활동을 통해 청년여성농업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서로 공감할 뿐만 아니라, 후배 농업인을 위해 더 나은 농촌환경을 요구하는 청년농부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농업을 제조·서비스로 영역을 넓히는 개념의 6차산업화는 청년농민에게도 버거운 일이다. 그는 “농사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판로 문제”라며 “귀농·귀촌 정책자금만 노리는 ‘먹튀’를 가려내고 정말 열심히 일하는 청년에게 자금과 판로개척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농민 일손 돕는 뒤영벌 사육법 개발

둘째 날 연수단은 전북 완주군에 있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을 찾았다. 이곳 곤충산업과 윤형주 박사(55)는 2014년 대산농촌문화상 농업·농촌정책 부문상을 받은 사람이다. 그의 안내를 받아 본관의 서양뒤영벌 사육실에 들어서니, 칸칸이 마련된 작은 상자마다 검은털이 북실북실하고 통통한 뒤영벌이 떼를 지어 ‘붕~붕~’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뒤영벌은 꿀벌, 뿔가위벌 등과 함께 상업화한 3대 화분매개곤충이다. 90년대 초, 농촌에는 화분매개 곤충이 대거 수입되기 시작했다. 농촌에 일손이 없어 농부가 직접 붓을 들고 다니며 꽃마다 일일이 수정하는 일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토마토·고추·피망 등 꽃에 꿀이 거의 없는 무밀작물 수정을 위한 뒤영벌 수입이 크게 늘었다.

▲ 윤형주 박사가 연구한 자체기술로 사육해 농가에 보급하는 서양뒤영벌 1봉의 가격은 6만5천원 정도다. ⓒ 고하늘

윤 박사는 지난 2003년 농사에 사용되는 뒤영벌을 실내에서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해 농사비용을 크게 줄였다. 여왕 뒤영벌의 월동기간을 줄이고 산란율을 높이는 이 기술은 2004년부터 농가에 보급됐다. 1997년 한 봉군에 25만원이던 뒤영벌은 대량 생산 기술 덕분에 6만원대로 낮아졌다. 국산화율은 90%까지 높아졌다. 윤 박사는 “지금 우리나라가 자체 생산해내는 게 9만5천통”이라며 “지난 30년간 3조400억 이상의 경제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을 찾은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에게 뒤영벌 사육실을 소개하는 윤형주 박사. ⓒ 고하늘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곧 멸망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죠. 사실은 한 덴마크 작가가 한 말을 아인슈타인이 인용한 거지만요. 이 말이 일리 있는 이유는 식량의 70% 이상이 화분매개 곤충에 의존하기 때문이에요. 화분매개 곤충이 감소하면 식량생산이 감소하겠지요. 뒤영벌은 꿀벌과 달리 꿀이 없는 작물의 수분을 하고, 낮은 기온에도 활발하게 활동해 많은 열매를 맺게 해줘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우리 농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잖아요. 뒤영벌 같은 대안이 필요한데 수입에 의존하던 상황이라 자체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연구에 매진했어요. 저는 연구자로서 농민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어요. 농가보급률을 높이고 수입대체율도 100%로 끌어올려 역수출하는 것이 목표예요.“

농부 목사에게 듣는 남원 문화 해설

갈계골 농장 강기원 목사(48)의 안내로 연수단은 전남 남원 운봉 일대를 돌아봤다. 조선시대 운봉현이라 불렸던 이곳은 현재 운봉읍, 아영면, 인월면, 산내면으로 나뉘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운봉을 잃으면 호남을 잃는다”고 했을 정도로 예로부터 남원은 비옥한 농토로 유명하다. 해발 500고지에 평야가 펼쳐져 운봉의 농사꾼은 ‘만석지기’로 불렸다.

▲ 전남 남원시 운봉읍 황산대첩비지에서 강기원 목사(맨 왼쪽)의 설명을 듣는 연수단. 운봉읍은 야철과 먹거리가 풍부해 예로부터 이곳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잦았다. © 박희영

강 목사는 운봉읍의 황산대첩비지와 동편제 창시자 송흥록 선생 생가, 인월면 가야고분까지 쉼 없이 남원 농촌을 소개했다. 남원 역사와 지리에 정통한 그는 놀랍게도 이곳 출신이 아니다. 2005년 연고도 없는 시골 작은 교회에 자청해 부임했다. 강 목사는 시골 목사로서 농사를 짓고 싶다는 일념 아래 자리를 지키고 노인인 교인들과 농사를 지으며 산다. 지리산의 종교연대, 생명연대와 함께 활동하며, 아영면 9개 교회와 함께 헌금을 장학금으로 환원하는 등 지역사회 참여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목회자가 마을 활동에 참여하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저는 최대한 이곳 어르신들과 함께 움직이려 합니다. 지역공동체를 지키고 싶습니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농사와 노동의 가치를 체험시켜주고 싶어 2천평 논밭을 임대했어요. 이 시골로 찾아오는 사람이 꽤 있는데 지역문화센터를 마련해 방문객에게 나눔과 쉼이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요.”

▲ ‘청년의 농(農), 지속 가능한 미래'를 주제로 한 대산농촌재단 하계연수단이 강기원 목사와 전남 남원 유곡리 및 두락리고분군 32호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 대산농촌재단

귀농귀촌인이 모여 일군 남원 농촌 공동체

연수단이 찾은 지리산 서북쪽 산내면의 작은마을에는 귀농귀촌인들이 터를 잡고 있다. 산내면의 2,100여 인구 중 약 1/4이 귀농 인구로 1998년 세워진 실상사 귀농전문학교에서 연을 맺은 이들이 많다. 귀농전문학교 자리에 2001년 들어선 대안학교 작은학교는 귀농귀촌마을이 가능했던 비결이다. 귀농 1, 2세대 자녀들이 이 학교에서 공동체 정신을 배우면서 마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작은학교 1기 졸업생은 현재 서른 나이로 농사 선생님 구실도 한다.

▲ 멀리 지리산 능선이 보이는 남원시 산내면 작은마을에서는 감자, 들깨, 팥 등을 기른다. © 고하늘

작은마을의 또 다른 귀농성공 비결은 대부분 자기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 건축사, 목수 등 생업이 있어 한 해 농사에 실패해도 이듬해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재능 기부도 활발하다. 교사는 아이들 공부방선생님으로 봉사하고, 글을 썼던 경험으로 마을신문 기자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 밖에 뜻 맞는 사람들끼리 이룬 작은 공동체들도 운영된다. ‘공정 여행’을 표방하는 지리산 협동조합은 지역 숙소와 식당에 수수료를 받지 않아 지역경제에 기여하며, 생태적인 안내를 한다. 지리산 생명연대 역시 케이블카, 산악열차 등 개발사업 반대와 환경보호 운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카페 ‘토닥’은 이런 소모임과 지역민이 마실 나와 작당하기 좋은 곳이다. 시작부터 크라우드 펀딩과 재능 기부로 시작된 이곳은 마을 주민을 위한 각종 워크숍과 문화행사 공간으로 열려 있다.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어 등굣길에 삼각김밥을 팔기도 하고 프린트나 증명사진 제출이 급한 이들을 위해 인화 서비스도 제공한다. 때로는 읍내와 먼 원철리에서 만드는 두부 판매처가 되기도 하고, 골이 깊어 받기 어려운 택배를 맡아두기도 한다. 그야말로 마을사람들을 위한 마을사람들에 의한 공간이다.

▲ 카페 ‘토닥’에서 열린 간담회 ‘산내면에서 산다는 것은’에서 마을 대표 3인이 연수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숙 카페 매니저, 김소연・이영준⋅서석곤 씨. © 박희영

이날 저녁 ‘토닥’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각각 열살 터울인 김소연(30), 이영준(40), 서석곤(50) 씨가 참석해 ‘산내면 살이’의 이모저모를 늘어놓았다. 귀농 10년차인 서석곤 씨는 “책 보고 농사를 지으니 망하더라”면서 “마을 단위 공동체에 결속되어 터를 잡을 수 있었다”고 귀농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산내면에서 빵집을 하고 있는 이영준 씨는 마을에 없는 게 뭔지 고민하다 빵집을 차렸다. 도시에 비해 풍족한 벌이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서른 살 김소연 씨는 귀촌한 청년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두 달째 하고 있다. 재작년부터 커뮤니티 밥집 ‘살래청춘식당’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시골에서 청년으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며 세운 첫 번째 프로젝트다. 산내면의 ‘청년활력기금’ 역시 그런 고민에서 나온 지리산 주민들 아이디어다. 무작위로 청년 한 명을 선정해 기본소득으로 50만원을 1년간 주는 것이 핵심으로 올해까지 2회째 실험 중이다. 귀촌하고 싶지만 주거난을 겪는 청년들을 위해 1~2인 가구용 장기임대주택 마련도 추진하는 등 산내살이는 ‘개인’의 ‘먹고사니즘’이 아닌 ‘공생’을 위해 고민하며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추진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 이음’은 마을을 연결하고 대안 문화를 만들며 사회적 실험을 계속하고 있어 지리산의 사회경제적 네트워크는 더욱 촘촘하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박사농부’ 이동현이 농가식당을 연 이유 

연수단이 방문한 전남 곡성군 곡성읍 섬진강로의 농업회사법인 (주)미실란은 일본 규슈대학교에서 생물자원관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동현 대표(47)가 2005년에 설립한 친환경 발아현미 가공회사다. 유기농 현미를 발아해 발아현미, 발아오색미, 발아현미떡, 미숫가루 등을 생산한다. 이 대표는 2005년부터 국내에서 재배되는 벼 품종 860여 종을 수집하고 약 300 품종을 직접 시험 재배하며 연구해왔다. 발아현미의 품질을 높이고 지역에 적합한 품종을 찾기 위해서다.

▲ 2004년 순천대 연구실 한 칸을 빌려 시작한 회사는 2006년 곡성읍의 폐교로 이전했다. 이동현 대표는 “사람이 떠나 폐교가 돼버린 장소를 다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김미나

“공업분야에서 기술개발은 한끝 차이입니다. 농업에서는 그런 한끝 차이로 연구를 안 해요. 답은 농업 현장에 있는데도 미리부터 농업의 한계가 있다고 선을 긋죠. 미실란은 제조를 마치고 바로 공장을 짓지 않고 먼저 연구소부터 만들었어요. 저의 태생이 연구소이기도 하지만 연구하지 않는 기업은 미래가 없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현미의 기능성과 백미의 부드러움을 함께 지닌 발아현미는 기능성이 우수해 이미 시장에서 판매하는 가공업체가 많았다. 하지만 발아현미의 발아율이 대개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이런 문제점에 의구심을 품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발아율이 95%에 이르는 특수 저온살균 건조기술을 개발했다. 그는 쌀 원료의 90% 이상을 곡성군 농민에게 공급받아 지역과 상생하는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일반재배를 하던 농민을 무농약 재배로 견인하고 유기농업으로 발전시켜 친환경농업이 지역에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이 대표는 개발과 제조뿐 아니라 제품을 특급호텔과 유명 백화점에 보내는 등 다양한 판로를 확보하는가 하면 체험과 교육장으로 삼고 농가식당을 기획⋅운영해 쌀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 연수단은 농가식당 ‘밥카페 반(飯)하다’에서 점식을 먹고 옆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동현 대표(가운데)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 대산농촌재단

이 대표는 “밥이 보약이라는 걸 알면 사람들이 바뀐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밥 맛이 좋으면 사람들이 쌀의 가치를 알게 돼 각종 제품들을 많이 구매한다”며 “어느 날에는 밥보다 제품 나간 양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밥맛에 감동한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눠줄 선물까지 구입한다는 것이다.

그는 “농가식당을 운영하는 일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고민을 많이 해서 담아낸 밥상”이라며 “밥이 주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고 말했다. 진정성이 담긴 음식만이 성공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는 곳이라는 ‘미실란’(美實蘭)의 뜻처럼 이 대표의 진정성이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 매년 늘어나는 이유도 그가 농업과 농민, 지역의 동반성장을 10여년간 고민해온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제 꿈은 올해 1만명이 미실란을 다녀가는 겁니다. 재작년에는 4천명 정도 방문했고 작년에는 농가식당 덕분에 방문객이 7천명이 됐어요. 1만명이 방문하는 농업기업이 전국 팔도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을 다시 농촌으로 불러오는 역할을 할 겁니다.

구례자연드림파크, 상생 바람을 일으키다

▲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아이쿱생협이 운영하는 구례 자연드림파크는 공장, 체험장, 영화관, 숙소, 레스토랑, 카페 등 다양한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구례 자연드림파크 홈페이지

전남 구례군 용방면의 구례 자연드림파크는 2014년 아이쿱생협 소비자조합원과 직원, 생산자의 출자와 참여로 조성됐다. 약 4만5천평 규모를 자랑하는 자연드림파크는 국내 최초로 설립한 친환경 식품가공·유통단지로서 각종 음식을 제조하는 17개 공방과 소비자유통센터가 있다. 각 제조 공방은 빵, 라면, 김치, 만두, 치즈 등 대략 450개 품목을 생산하고 원재료에서부터 제조⋅유통되는 모든 과정을 자체 관리한다. 2016년 기준 고용 직원 수는 510명에 이르는데 매년 증가추세다. 이 중 80% 이상이 구례군에 거주하는 군민으로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 자연드림파크는 오피크닉(O-picinic)으로 불리는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누구나 예약만 하면17개 공방에서 이뤄지는 생산과정을 직접 보거나 체험할 수 있다. © 대산농촌재단

자연드림파크를 방문한 연수단은 견학 프로그램에 맞춰 라면공방, 우리밀공방, 우유공방을 차례대로 둘러봤다. 견학을 안내하던 정현주 활동가(55)는 “자연드림파크에서는 공장을 공방이라고 부른다”며 “혼과 정성을 담아 작품을 만들어내는 공방처럼 식품의 가치를 담아내는 공간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연드림파크는 단순한 농공단지가 아닌 숙박시설, 레스토랑, 영화관, 카페 등이 한 곳에 모인 복합문화공간 구실을 하고 있다.

“구례자연드림파크가 생기기 전에는 구례군에 영화관이 없었어요. 영화를 한번 보려면 순천이나 광주까지 나가야 했죠. 지금은 영화를 보기 위해 멀리 가지 않아도 돼요. 이제는 거꾸로 외부에서 영화를 보러 구례로 와요. 구례자연드림파크 영화관이 개봉관이 될 정도죠.”

정 활동가는 “생협에 가입해서 조합비를 매달 내는 것이 부담일 수 있지만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조합원과 함께 연대하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4년 전만 해도 구례군에는 산부인과가 없었다. 청년들이 지역을 벗어나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아이쿱생협의 기부재단인 아이쿱씨앗재단은 해마다 2억원씩을 기부해 최근 구례의료원에 산부인과를 개설했다. 그 밖에도 연간 8천여만원의 장학금과 3억9천만원의 이웃돕기 성금을 기부하는 등 지역상생을 실천한다.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이 만들어가는 건강한 공동체

충남 청양군 대치면에는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로컬푸드직매장 ‘농부마켓’과 농가레스토랑 ‘농부밥상’이 있다.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은 2015년 박영숙 이사장(60)과 조합원 75명이 함께 설립했다. 1996년 서울에서 청양으로 귀농한 박 이사장이 가슴에 품고 있던 '농촌사람들이 왜 농촌을 떠날까'라는 고민으로 지금의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이 시작됐다.

▲ 박영숙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이 ‘농부마켓’과 ‘농부밥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청양은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에서 발표한 보고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리스크 점검 및 정책적 시사점>에서 가장 낮은 점수 0.22를 기록해 지방소멸 위험단계다. 높은 고령화 비율과 낮은 출산율이 원인이다. 청양은 인구증가를 군정 핵심과제로 삼아 귀농·귀촌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 속에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은 갓 귀농한 초보농사꾼과 고령농, 소농의 든든한 이웃이다.

“저희가 처음 직매장을 만든다고 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하나같이 ‘우리는 다 시댁에서 갖다 먹고, 친정에서 갖다 주는데 누가 거기까지 가서 물건을 사겠냐’고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직매장을 하면 할머니들이 상추라도 하나 더 팔아서 미장원도 가고 양말도 사면서 지역경제가 살아날 거라 믿었죠.”

‘농부마켓’은 매일 아침 직접 수확하고 포장한 청양출신 농산물을 당일 판매하는 것이 원칙이다. 2층의 농가레스토랑 ‘농부밥상’은 청양의 특산물 구기자와 고추를 곁들인 떡갈비밥상이 주 메뉴다.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은 조합원이 75명으로 시작했지만 2017년 ‘농부마켓’과 ‘농부밥상’을 열면서 105명으로 늘었다. 박 이사장은 “조합에 지역농민뿐 아니라 귀농하신 분들도 점점 늘어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견학을 마친 허재성(25·고려대 사회학)씨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어떤 영역에도 완전히 포함되지 않고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게 협동조합이라고 알고 있는데,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을 통해 유통과정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직거래함으로써 소비자와 생산자의 가치를 연결하고, 농민들이 제 값을 받으며 농업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 박영숙 이사장은 청양로컬푸드직매장 ‘농부마켓’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이웃이 되는 즐거운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 고하늘

"저희 조합의 핵심가치는 농업의 가치를 서로 나누는 거예요. 생산자끼리 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농업의 가치를 나누고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는 거죠. 로컬푸드직매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청양농부들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려고 해요."

‘작은 세포’에서 찾은 무한한 가능성

이날 오후 연수단은 인천 연수구 송도에 있는 바이오에프디엔씨를 찾았다. 바이오에프디엔씨는 2005년 모상현 대표(42)가 창업한 뒤 식물세포배양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식물자원소재를 개발하는 벤처기업이다. 바이오에프디엔씨는 북극 다산과학기지에서 멸종위기 식물종 세포를 추출하여 배양하고 복원하는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 모상현 바이오에프디엔씨 대표가 연수단에게 강의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여러분이 꿈꾸는 미래가 농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겠지만 농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농업을 기반으로 전자상거래를 하는 등의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어요. 다른 시각에서 볼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해요. 패러다임을 빠르게 좇는 사람이 아니라 처음으로 만드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모 대표는 “식물은 잘라낸 잎이나 쓰다만 부지깽이에서도 완전한 개체를 만들 수 있다”며 “식물이 가진 뛰어난 생명력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끊임없는 연구로 식물이 만들어내는 ‘피토케미컬’ 성분이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인간의 몸 속에서 세포 손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식물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한 바이오에프디엔씨는 식물성분을 원료로 화장품과 식료품을 만들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부모님도 농사를 지으셨어요. 저도 농업에 대한 꿈이 있었고요. 지금 제가 농사를 짓는 건 아니지만 식물세포배양기술을 활용하여 토종 씨앗의 종주권을 지키고 우리 농업에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지속 가능한 농업기술 개발과 보급에 공헌하는 현대판 농사꾼이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지속 가능한 농촌을 고민하다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은 3박4일 연수를 통해 농촌을 지속 가능케 하는 힘은 상생과 협력을 통한 공유가치 창출에 있음을 배웠다. 연수에 참가한 주슬기(26·경북대 식물자원학)씨는 “다양한 주체가 협력하여 농촌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놀라웠다”며 “농촌사회를 지속하는 데 자신과 같은 청년들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업의 가치는 ‘거두는 것’이 아닌 ‘뿌리는 것’이었다. 누가 씨앗을 뿌리냐에 따라 농업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이 모든 가치가 우리의 농업을 지키고 지속 가능한 농촌을 만들기 위한 접점에서 빛을 발했다.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농촌 공동체의 모습에서 지속 가능한 농촌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편집 :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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