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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넘어 공감으로
[미디어비평] 서평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2017년 07월 16일 (일) 14:34:47 고륜형 기자 kryunhyoung@naver.com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은 건 오랜만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은 한 언론사 시험문제의 답안지를 빈칸으로 남겨놓고 나서야 알게 됐다. <82년생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가 ‘젠더’적 관점에서 바라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김지영의 성장기에서 드러난 성차별적 요소가 ‘여류’ 문학과 다른 점이다.

82년생, 김지영

김지영은 82년도 서울 출생이다.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어머니와 적은 월급이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공무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지영의 언니는 공부를 곧 잘하는 PD 지망생이고, 남동생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 애지중지 키워진 철부지다. 어머니가 남동생을 낳을 땐 할머니의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집안에 남자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는 할머니는 둘째 딸을 낳자 어머니를 외면했다. 딸 아들 상관없다던 남편마저 줄담배만 피웠다. 기댈 데 없는 김지영의 어머니는 셋째를 유산하던 날 베개가 다 젖도록 펑펑 울었다.

   
▲ <82년생 김지영>은 사회에 드러난 여성 차별적 요소를 김지영의 일생을 통해 담담히 그려낸다. ⓒ 민음사 홈페이지

김지영은 온순한 성격이었다. 초등학생 땐 남자아이들이 항상 앞번호를 차지하는 것을 의아해했다. 뒷번호였던 여자아이들은 항상 시간에 쫓겨 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1번이고 여자아이들은 2번인 것처럼 그러려니 했다. 중학생 땐 학교 앞에 나타난 바바리맨을 때려잡은 여자아이들이 혼나는 것을 보며 여자아이들은 조신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땐 자신을 뒤따라오는 남학생에게 ‘웃음을 흘리고 다닌다.’고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그때부터 김지영은 옷매무새를 여미고 입을 다물었다.

대학생 땐 산악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연애를 했다. 상대와 헤어진 뒤 선배들로부터 ‘씹다 버린 껌’이라는 말을 듣고 연애에 회의감을 느낀다. 취업 시장에선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이 잘 되지 않았다. 취업 후엔 여자는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고 장기 프로젝트에서 제외된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출산 후엔 경력 단절로 인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좋아하던 직장을 그만둔 것이 못내 서러웠지만, 아이를 보며 꾹 참았다. 그러나 산책을 나간 어느 날, 공원에서 남자 회사원이 그녀를 보며 “아, 나도 저렇게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놀면서 아이스커피 마시고 싶다”라는 비아냥에 미치고 만다.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현실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 날 이후, 김지영은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빙의한다. 어느 날은 친정엄마가 되어 “정 서방, 우리 지영이 본가에 보내야 하지 않나?”라고 말하고, 어느 날은 남편의 첫사랑이 되어 “지영이 좀 쉬게 해줘”라고 말한다. 남편은 기겁하며 그녀를 정신병원에 데려간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정확한 병명은 알지 못한다.

여성 혐오 사회에는 여성연대가 필요하다

<82년생 김지영>이 잘 읽히는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부터 김지영까지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이 가는 대목이 있다. 70년대 엄마들은 파마머리에 꽃무늬 치마를 입고 억척스럽게 자식과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어릴 때는 가난한 집안을 돌보느라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IMF 때는 가슴을 조마조마하며 살림을 꾸렸다. 자신이 못한 학업의 꿈은 딸이 대학에 들어가 아들 못지않게 꿈을 펼치는 모습으로 대체했다. 30대 우리나라의 ‘김지영’들은 증언한다. 회사를 들어가기 위한 면접에서부터 “만약 회사 손님을 접대하는 중에 불쾌한 신체접촉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성희롱을 당한다고. 회사에 들어가선 여자 화장실에 설치된 몰래카메라에 심장이 철렁하고, 결혼과 육아로 직업인으로서 희생을 강요당한다. 짧은 치마를 입어 성폭력을 당했다는 논리는 가해자의 논리다. 젠더 권력에서 여성은 여전히 ‘을’이다. 김지영의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키워낸 딸들이 다시 김지영의 어머니가 되는 우리 사회현실은 70년대와 다르지 않다. 그대로다.

   
▲ 육아를 위해 사랑하던 일을 그만둬야 했던 김지영은 “나도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놀면서 아이스커피 마시고 싶다”라는 남자 회사원의 비아냥에 미치고 만다. ⓒ 카카오 페이지

<82년생 김지영>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웅변한다. 소설 속에선 김지영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도와주는 여성이 등장한다. 초등학교 땐 엄마가 학부모회장인 여자아이가 “급식 순서를 바꿔주세요”라고 말하고, 중학교 땐 “여자아이들도 체육복 입고 뛰어놀고 싶다”고 소리치는 여학생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남학생에게 쫓길 때는 “학생, 목도리 두고 갔어.”라고 그녀를 도와주는 어른이 있었다. 회사에선 육아와 일, 모두를 병행하며 김지영을 이끄는 여자 과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사회의 소수였다. 조남주 작가는 “여전히 조력자는 소수이기에 여성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설 속 여자 과장은 고민한다. 육아 휴직을 모두 쓰면 회사에 눈치가 보이고, 쓰지 않으면 여성의 육아 휴직 권리를 축소하는 현실을. 육아 휴직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세상은 출산 장려와 유리천장 깨기를 말한다. 여성이 일, 육아, 가사를 동시에 소화해낼 사회적 제도 없이는 일하는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동시에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객관적 소설기법이 주는 현실 변혁의 힘

소설 속 김지영의 이야기가 탄탄한 이유는 조남주 작가가 사용한 소설 기법에 있다. 그녀는 에피소드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객관적 데이터를 활용했다. 언론 매체와 연구원에서 나온 통계 수치를 소설 마지막 문장에 ‘우리나라 여성과 남성의 취업 비율은 24% 대 76%였다’라고 붙이는 식이다. 객관적 수치들은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투영한 역사적 기록이 되는 것이다. 실제 소설의 주인공인 ‘김지영’은 82년에 태어난 여자아이들 이름 중에서 가장 많은 이름이다. <82년생 김지영>은 10만 부 이상이 팔리면서 민음사가 주관하는 ‘오늘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 대학가 추천 도서로도 꼽혔다.

   
▲ 2000년대 이후 성차별금지법 등이 제정되고 육아 휴직 제도가 도입됐다. 법 제도가 원활히 시행되려면 사회적 분위기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 ⓒ HeForShe 페이스북 홈페이지

<82년생 김지영>은 여성 평등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여성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불평등을 부각한다. 대한민국 여성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공감의 힘이 크다.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들까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금태섭 국회의원은 최근 주변에 <82년생 김지영> 500권을 나눠주며 여성 평등 인식을 높이고 여성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운동에 나섰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로 제작되는 등 열풍이 지속될 전망이다. 페미니즘은 남녀평등을 핵심으로 한다. 2000년대 이후 성차별금지법 등이 제정되고 육아 휴직 제도가 도입됐다. 법 제도가 원활히 시행되려면 사회적 분위기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 페미니즘을 넘어 ‘인간’ 자체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82년생 김지영>으로인한 공감대가 형성돼 우리 사회의 저출산과 혼인율 저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 : 조은비 기자

[고륜형 기자]
단비뉴스 편집국장, 편집부, 영상부, 미디어부, TV뉴스부, 시사현안부 고륜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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