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과로, 엄마는 죄책감 시달리는 육아 이산가족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3부: 애 키우기 전쟁]

“느그 아들 때문에 내가 궁디도 옴짝달싹 몬하겄다.”

지난해 4월 첫아들 민준이를 얻은 울산광역시의 김동춘(35), 박선영(31)부부에게 박씨의 친정어머니(60)는 종종 이렇게 푸념한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박 씨는 3개월의 출산 휴가가 끝나면서 친정어머니에게 아들의 양육을 부탁했다. 

“보험회사 특성상 영업 외 마감일이 많아서 빨라야 저녁 8시에 일이 끝나기 때문에 주중엔 잠깐 얼굴만 보고 금요일 저녁에야 민준이를 데려와 주말을 함께 보냅니다. 작은 회사다 보니까 3개월 출산 휴가 쓸 때도 굉장히 눈치가 보였는데, 육아휴직은 꿈도 못 꿔요. 친정어머니가 안 도와주셨다면 일을 그만 뒀거나 민준이를 진해 시댁에 보내야 했을 거예요.”

친정집은 같은 울산에 있지만 40분이나 걸리는 거리여서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은 아이를 잠깐 보러가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지난 4월 친정 동네로 아예 이사를 갔고, 요즘은 그래도 퇴근 후 한두 시간 정도 아이를 돌볼 수 있다. 그러나 민준이를 맡기 전엔 소일 삼아 용돈벌이를 하며 자유롭게 살던 친정어머니가 아이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고, 체력도 부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만일 친정어머니가 더 이상 못 맡겠다고 한다면 한 시간 반 거리인 진해 시댁으로 아이를 보내야 한다. 그러면 주 중엔 아예 얼굴도 보기 힘들 것이다. 

▲ 관절염을 앓고 있는 오영은씨 시어머니가 손주 예림양을 돌보고 있다. ⓒ 오영은씨 제공

아이를 맡아 기르는 할머니도 고생이지만, 엄마가 직접 챙기지 못해 손해 보는 것도 많다. 대표적인 게 예방접종.  

“보건소에서 무상으로 해주는 건 주중 이른 아침시간에 찾아가야 겨우 맞을 수 있어요. 정해진 보건소로만 가야하고, 하루 배정양이 넘으면 기다려도 접종을 해주지 않아요. 친정어머니에게 아무리 일러드려도 예방접종과정이 복잡하고 종류도 많아서 항상 어려움을 겪습니다. 결국 일반병원에서 의료보험 혜택 없이 비싼 돈 내고 접종을 하게 되죠. 그 비용부담만 해도 솔직히 너무 커요. 맞벌이 가정을 생각해서 토요일 오전까지라도 운영하는 등 배려가 있으면 좋을 텐데요.”

정부가 말로는 ‘아이를 더 낳으라’고 권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외치지만 실제 여건은 맞벌이 하면서 아이 하나 기르기도 벅찬 형편이라고 박 씨는 호소했다. 

회사 탈의실에서 젖 짜다가 아이 먹였지만 유축기에 세균 많다는 말에 좌절

▲ 황수린씨가 아들 형준군을 위해 회사에서 힘들게 모유를 모았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진희정
일하는 딸 혹은 며느리를 대신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들의 희생은 최준훈, 황수린(33) 씨 부부네 역시 마찬가지다. 울산의 한 금융회사 동갑내기 사내 커플로 지난 2009년 결혼한 이들은 아들 형준이가 8개월 될 때까지는 황 씨의 친정어머니에게, 그 후로는 시어머니에게 맡겨 키우고 있다. 

“체력 좋은 젊은 엄마들도 육아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는데 두 분 다 집안 일 돌보면서 아기까지 맡아 너무 고생이 많으셨어요. 특히 친정 엄마는 뒤늦게 대학에 가려 공부하고 계셨는데 형준이를 맡으면서 미뤄야 했죠.”

아이를 맡아 키워줄 가족이 있다고 해서 직장 다니는 엄마의 생활이 편한 건 아니다. 황 씨는 결혼과 함께 부산으로 발령이 나, 아이가 6개월이 될 무렵까지 울산에서 부산으로 고된 출퇴근을 했다. 

“그땐 부산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 5시에 집을 나섰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12시가 되곤 했어요. 임신 중일 땐 새벽에 자려고 누우면 아기가 어찌나 뱃속에서 발로 차던지 몸은 고된데 잠들 수가 없고, 서러워서 많이도 울었죠.”

통계청의 2009년 생활시간 조사를 보면 맞벌이 주부는 직장일 외에도 하루 3시간20분 동안 추가로 가사와 육아 노동을 한다. 기혼 직장여성은 평균적으로 직장과 집안일을 합쳐 적어도 12시간, 출퇴근시간을 합치면 14시간은 족히 일을 한다는 얘기다. 

몸과 마음이 다 지치지만, 황 씨는 아기의 발육을 위해 최대한 모유를 먹이려고 애썼다. 회사 내 여직원 탈의실에서 틈틈이 유축기로 모유를 짜서 아이스박스에 담아 두었다가 그날그날 아기에게 보내 먹이도록 했다.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에서 젖을 짜고 보관하는 과정이 눈치도 보이고 성가셨지만 아이 건강에 좋을 것이란 믿음 하나로 6개월 넘게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스를 보니 유축기 자체에 세균이 많아 분유를 먹이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이에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힘들어도 참았는데,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니. (법대로) 육아 휴직을 쓸 수 있었다면 직접 젖을 먹여 키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기에게 미안하고 서러웠어요.”

황 씨가 3개월 전부터 다시 울산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황 씨 부부는 주중 퇴근 후 늦은 밤 에 부모님 댁에 들러 한 시간 가량 아이와 지내다 주말에는 집에 데려온다. 엄마 아빠가 매일 밤늦게 아이를 만나러 가다보니 형준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밤 11시, 12시가 돼야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조만한 남편 최 씨가 다른 지방으로 발령 받을 가능성이 높아 이 불안한 육아생활도 ‘주말부부’ 라는 또 하나의 장애물을 더할 전망이다. 

육아이산가족 되더라도 동네 놀이방보다 친정, 시댁 도움 받아

▲ 맞벌이 주말부부 선호 씨와 영은 씨를 대신해 예림이 양육을 맡고 있는 예림이의 친할머니. ⓒ 진희정

“시어머니가 만성 관절염으로 힘드신데, 염치 불구하고 맡겼어요.”

사회복지사 오영은(26)씨 부부는 지난해 8월 첫딸 예림이가 태어나면서 ‘주말 가족’이 됐다. 서울에 근무지가 있는 오 씨는 결혼 뒤 천안의 한 전자제품 하청공장에서 일하는 남편 곁에서 1년 가까이 출퇴근을 했지만 출산 휴가를 마친 후부터는 서울 시댁 근처에 전세를 얻어서 따로 산다. 남편 송선호(30) 씨는 불규칙한 근무 때문에 서울-천안 간 출퇴근이 어려웠고, 오 씨는 예림이를 키우기 위해 시어머니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시댁은 집이 좁았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하면서 잠깐씩이라도 아기를 직접 돌보려고 염치불구하고 시부모님 댁 근처로 갔는데 앞으로가 더 문제예요. 시어머니 건강 상 아이가 커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강릉 친정어머니에게 보내야 할 것 같아요. 그럼 평일엔 아예 볼 수가 없을 테니 상상만 해도 암담하죠.”

주변에 믿을 만한 보육시설이 있다면 예림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맡길 수 있겠지만 믿을 만한 시설을 찾기도 힘들고, 비용도 걱정이라고 한다. 

“남편과 제 벌이를 다 합쳐도 신통찮은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네 놀이방들은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요. 보육시설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뉴스가 워낙 많으니까, 우후죽순 생기는 놀이방도 어디 믿고 맡길 수가 있어야죠.”

아이를 안심하고 기르기 위해서는 ‘이산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오 씨. 어쩌면 조만간 오 씨 가족은 아빠는 천안에, 엄마는 서울에, 아이는 강릉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 키우는 모든 가정 배려하는 보육정책 절실

서울 수서동에 사는 한천미(36·중소기업근무)씨 부부는 5살짜리 딸 선현이와 4년 째 떨어져 지내고 있다. 한 씨는 선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려 했지만, 사업을 하는 남편의 수입이 불안정해 일을 계속하게 됐다. 

“첫돌 무렵까진 가까이 살던 큰언니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언니네가 이사가면서 맡길 곳이 마땅치가 않더라고요. 결국 경기도 원당에 사는 친정부모님 댁에 보내게 됐어요.” 

▲ 딸이 맡긴 손주를 힘들게 키우는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집으로>의 한 장면.

한 씨는 하청으로 가방을 제조하는 회사에서 9년째 근무 중이다. 월급은 월 300만 원 가량. 남편은 최근 해외 중고차매매 사업을 시작했다. 

“아직 사업 시작 단계라 소득이 거의 없어요. 남편이 자리를 잡더라도 일을 그만 두긴 힘들 것 같아요. 사업이라는 게 늘 불경기가 있는 법이니까요.”

선현이가 4살이 됐을 때 잠시 가족이 모여살기도 했다. 그 나이면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가족 그림을 그렸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선현이 이렇게 셋이 가족이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속상했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데려왔어요.” 

하지만 한 씨의 야근과 휴일 근무 때문에 어린이집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남편 역시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 육아를 책임지고 분담할 수 없었다.  

“야근 때문에 아이를 늦게 데리러 가면 그때마다 어린이집 교사의 눈치를 봐야했죠. 주말 근무라도 있으면 원당 집에 도로 맡기러 가야하고요. 결국 남편과 상의해서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친정집에 다시 보내기로 했어요.”

우리나라 어린이집의 법적 운영시간은 대개 오후 7시 30분까지다. 한 씨는 자신 같은 ‘워킹맘’들을 위해 야간과 휴일에도 아이를 보살펴 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국공립보육시설이 확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어린이집은 일하는 엄마들의 형편을 배려해주지 않아요. 천편일률적으로 모두 7시 반이면 데리고 가라고 하니, 그러지 못하는 엄마들은 속이 타들어가죠. 비용을 더 내더라도 필요할 땐 늦게까지 맡겨둘 수 있는 어린이집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한 씨는 이런 형편에서 아이를 하나 더 낳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 황 씨나 박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선은 사고 걱정 없이 안심하고 맡아 줄 보육시설을 찾기 어렵고, 좋은 시설일수록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 김동춘, 박선영 부부와 아들 김민준 군(좌), 최준훈, 황수린 부부와 아들 최형준 군. ⓒ 진희정

황수린 씨 부부는 형준이가 태어난 뒤 아이 양육에 도움이 될 만한 정부지원책이 있는지  알아봤는데, 부부 합산 소득이 월 470만 원 이상인 경우 해당되는 게 없었다고 한다. 맞벌이의 경우 어린이집은 어린이집대로, 육아도우미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월 100만 원 이상이 직접적인 육아 비용으로 쓰이고, 그 외 생활비 지출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일정 소득 이상의 가정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 때문에라도 둘째 아이 갖기를 망설이게 된다. 

“최근 정부의 보육 정책이 확대되고 있다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대다수 가정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둘이 벌어 소득이 좀 낫다는 이유로 국가차원의 보육 서비스에서 제외시키는데, 둘이 벌어봤자 애 키우는 데 워낙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어려워요.”

황 씨는 “소득이 좀 더 많고 적고를 떠나서 아이 키우기를 국가 복지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야근, 회식, 휴일근무 당연시하는 직장 문화도 바뀌어야 

정부는 올해부터 보육료 지원을 확대해 소득 기준 하위 70%까지는 보육료 전액을 지원하지만 나머지 30%는 전혀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처럼 소득을 기준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소득 경계선에 있는 여성이 일할 의욕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맞벌이 부모들이 직장과 가정생활을 양립하려면 장기적으로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처 간 연계가 잘 안 돼 이중 지원되는 사례들을 줄여 예산 낭비를 막으면서, 전체적인 보육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믿을 수 있는 국공립보육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오영은씨의 딸 예림양. 오영은씨는 딸의 육아 때문에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 진희정

재정지원이나 시설확충과 함께 노동환경 개선 차원의 접근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스웨덴은 보육제도가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하지만 저녁 늦게까지 아이를 도맡아 주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회사가 오후 5~6시면 끝나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다고 해도 정시에 ‘칼퇴근’할 수 없는 우리나라 직장 현실과 대조적이다.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는 직장 문화도 맞벌이 부부들에겐 엄청난 장애물이다. 또 육아휴직 등 보육지원을 위한 법과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활용하기가 어려운 직장 분위기도 ‘워킹맘’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백 교수는 “우리나라의 평균 근로시간이 매우 긴 것이 여성의 일과 가사 양립을 어렵게 한다”며 “육아휴직제가 현실화할 수 있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고용 안정을 유지하며 단시간 근로를 활성화하는 움직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