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온갖 특혜 누리는 재벌, '더 달라' 대신 '어떻게 갚을까' 고민을

▲제정임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재계 단체 중에서도 대기업, 특히 재벌그룹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조직이다. 최근 이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허창수 지에스(GS)그룹 회장이 작심한 듯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반값 등록금 같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을 생각 없이 추진해선 안 된다"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감세(減稅)는 철회하지 마라." 기업들의 세금은 계속 깎아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종종 '국민들의 반(反) 기업정서 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고 푸념한다. 국민들이 재벌을 공연히 미워해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 회장의 말은 우리 국민 중 재벌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는 이가 왜 많을 수밖에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고, 학자금 대출을 감당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급기야 목숨을 끊는 대학생까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절박한 청년들과 부모의 짐을 덜어주는 건 '포퓰리즘'이고 재벌의 금고를 채워주는 건 '시장경제'라니, '매를 버는' 얘기가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을 줄줄이 깎아주는 이른바 '부자감세'를 통해 대기업과 자산가들에게 엄청난 '현금 선물'을 안겨주었다. 집권 5년간 총 감세 규모가 98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 정부는 이들의 세금을 줄여주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 경제가 쑥쑥 성장하고 실업난이 해소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30대 그룹은 86조 원 규모의 내부유보금을 쌓아 놓고도 이렇다 할 투자확대도, 고용창출도 하지 않고 있다.

수출에 유리한 '고환율 저금리' 정책 아래 대기업들이 기록적인 흑자행진을 하는 동안 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벼랑으로 몰렸고,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비싼 집값, 엄청난 보육과 교육비용, 대책 없는 노후가 국민의 삶을 압박해도 정부는 "돈이 없어 복지를 늘리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도 '감세'는 철회할 생각이 없단다. 그리고 재벌들은 정치권을 향해 '등록금은 놔두고, 우리 세금을 더 깎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분통 터지는 모순들은 곳곳에 있다. 전기요금 체계를 보자. 공장 등을 돌리는 산업용, 상가나 백화점이 쓰는 일반용, 각 가정이 쓰는 주택용 요금 중 가장 비싼 게 주택용 전력요금이다. 주택용은 최저와 최고 구간의 단위당 가격이 무려 11배나 차이 날 만큼 큰 폭의 누진제가 적용돼 주부들이 벌벌 떨며 아낄 수밖에 없다.

반면 산업용과 일반용은 많이 쓰면 쓸수록 요금을 깎아주는 '역누진제'가 적용된다. 그러니까 큰 공장, 대기업, 대형 백화점일수록 전기를 싸게 쓴다. 그 중에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킬로와트(㎾)당 평균 생산원가인 90원에도 못 미치는 80원으로 가장 싸고, 심야시간 등엔 이 보다도 훨씬 싼 값에 공급된다. 반면 주택용 요금은 130원이니, 콩나물 값 걱정하는 가계들이 기업들의 전기료를 대신 내주는 셈이다. 대기업들이 전기를 값싸게 펑펑 쓰니, 에너지 효율성은 일본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다. 이런 전력 낭비를 뒷받침하느라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 짓다보니, 이 땅이 '국토 대비 원전 밀집도 세계 1위'라는 불안한 기록을 향해 달려가게 됐다.

남아 선호가 극심하던 시절, 아들을 바라고 딸을 줄줄이 낳은 집에서 마침내 얻은 귀한 아들을 응석받이로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딸들의 희생과 양보는 당연히 여기고 좋은 건 다 아들에게 몰아주면서 '네가 잘 돼야 집안이 흥한다'고 세뇌하곤 했다.

불행히도 그렇게 자란 응석받이 아들은 지나친 이기주의자가 되어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인생도 망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살찐 아들이 깡마른 딸의 밥그릇을 뺏도록 놔둔다면 아이들 모두를 망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도 전기요금에서 세금에 이르기까지, 재벌들을 응석받이로 만든 정책과 제도들을 바로 잡을 때가 됐다. 덩치가 커질 대로 커진 재벌 대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근로자들을 제대로 부축해야 한다. 그동안 사회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재벌은 '뭘 더 얻어낼까'가 아니라 '어떻게 돌려줄까'를 생각하는 게 훨씬 어울릴 것이다.


*  이 칼럼은 국제신문 6월 30일자 시론으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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