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 색(色) 분석

보편적이고도 특별한 색(色)

색(色, Color)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색의 존재는 너무나도 당연해서 우리는 색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색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우리의 무의식에 큰 영향을 준다. 색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빨간색을 보고 ‘경고, 열정’의 의미를 떠올리고, 파랑색을 보고 ‘시원함, 청량함’을 느낀다. 하지만 색은 개개인의 주관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누군가는 빨간색을 보고 고독을 느낄 수도 있고,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 색의 의미는 정형화된 것이 아니다.

영화 속 색은 주관적 의미와 보편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색은 그것이 의도적인 패턴을 가질 때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라는 용어로 대체할 수 있다. 톤 앤 매너는 화면의 전체적인 색감과 색을 표현하는 일정한 패턴 또는 방식을 뜻한다. 영화의 ‘톤 앤 매너’는 장르를 설명할 수도 있고, 인물의 성격을 설명할 수도 있다. 스릴러나 공포 영화에는 검은색이나 어두운 파란색 톤이 주를 이루고, 로맨스 영화에는 주황색이나 노란색 톤이 주를 이루는 것이 그 예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색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 영화에서 스토리텔링의 구성 요소는 보편적 문자기호는 물론, 영상의 미장센과 편집, 명도나 색채, 번짐과 흐림과 겹쳐짐과 같은 영상 언어로서의 기호가 있으며, 음악과 음향 등과 같은 오디오적 기호 또한 포함된다. 앤더슨 감독은 이 영화에서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실험, 색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

이야기 속 이야기 – 액자구조

2014년 개봉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1927년의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를 둘러싼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액자식 플롯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액자 속으로 들어갈수록 과거의 이야기를 한다. 영화에서는 크게 ‘현재 - 1985년 – 1968년 – 1932년’ 4개의 시간이 등장한다. 영화 첫 시퀀스(Sequence)와 마지막 시퀀스인 현재에는 위대한 작가의 책을 든 소녀가 작가의 동상 앞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책을 보는 장면이다. 1985년에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작가가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1968년에는 젊은 시절의 작가가 Mr. 무스타파를 만나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있었던 사건을 듣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32년이 영화의 주요 내용인데, 당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이었던 무슈 구스타브와 로비 보이였던 ‘제로’(젊은 시절의 Mr. 무스타파)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시공간 변화에 따른 색의 변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호텔의 색깔이 달라지고, 공간에 따라 톤 앤 매너가 달라진다.

시공간에 따른 색의 변화

1932년,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의 전성기

▲ 1932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최고 전성기를 강렬한 빨강색과 분홍색의 조화가 돋보이게 한다. ©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화면 갈무리

우리는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한다. 아무리 힘들었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흐릿해져, 기억은 왜곡되고 미화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1932년의 이야기 속에선 Mr. 무스타파의 과거가 펼쳐진다. 과거는 낡은 느낌을 떠올리지만, Mr. 무스타파에게 과거는 가장 행복했고, 화려했던 기억이다. Mr. 무스타파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로비보이였던 1932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색은 빨강, 분홍, 보라색이다.

빨간색은 강렬함과 열정을 나타낸다. 젊고 열정이 넘쳤던 로비보이 제로와 활기 넘치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표현하기 위해 호텔 내부의 색은 빨간색이 주로 쓰인다. 빨간색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원색 그대로다.

보라색은 고귀하고 신비함을 의미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관리인이었고 마담 D.의 애인이었던 무슈 구스타브는 과거 속의 인물이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무슈 구스타브를 포함한 전 직원들은 보라색 유니폼을 입는다. 보라색 유니폼을 통해 무슈 구스타브의 신비함과 고귀하면서도 엉뚱한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분홍색은 열정의 색 빨간색과 순수한 하얀색이 섞여 부드러움과 행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Mr. 무스타파의 기억 속 1932년의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는 부인 아가사와의 사랑과 자신의 멘토였던 Mr. 구스타브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공간이다. 분홍빛 호텔 외관과 내부는 Mr. 무스타파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표현하고 있다.

1932년 살인사건의 장소 루츠성

▲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루츠성,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공간이자 욕망의 공간이다. ©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화면 갈무리

세계 최고의 부호 마담 D가 살다가 의문의 살해를 당한 던 루츠 성은 고귀하고 웅장한 공간인 동시에 욕망의 공간이다. 그리고 마담 D의 죽음으로 인해 무슈 구스타브와 마담 D의 아들 드미트리 사이에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루츠 성은 대표적으로 갈색, 검은색이 눈에 띈다. 짙은 갈색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과 방 안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고, 검은 색으로 둘러싸인 방 안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엄숙한 애도의 표현이자 그들의 욕망이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놓는 색이다. 죽음과 욕망의 공간에서 무슈 구스타브와 제로가 입고 있는 보라색 유니폼은 괴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호텔에 있을 때보다 채도가 낮아진 보라색 유니폼은 그들이 곧 욕망의 세계에 빠져들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1968년 추억이 된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

작가가 Mr. 무스타파를 만나는 1968년의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는 1932년의 화려함을 잃어버렸다. 외관과 내부는 마치 다른 호텔인 느낌을 준다. 주황색과 갈색으로 변해버린 호텔의 색은 30여 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1968년의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고, 단골손님들만 가끔 방문한다. 누군가의 추억의 공간이 되어버린 호텔은 내부와 외부가 모두 갈색 톤이며 심지어 손님들까지 갈색과 주황색 옷을 입고 있다. 주황색은 친근함과 활력을 상징하고 옅은 갈색은 포용과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버린 공간 속에서 과거의 색을 입고 있는 무스타파. ©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화면 갈무리

반면 Mr. 무스타파는 짙은 보랏빛의 외투와 안에는 빨간 원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바래버린 공간 속에서 생생한 원색은 단연 돋보인다. 이런 색이 대비는 Mr. 무스타파가 회고적인 갈색의 호텔에서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Mr. 무스타파는 1932년에 대한 기억의 집합체다. 그리고 그는 작가에게 행복했던 1932년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1932년과 1968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도 볼 수 있다.

전쟁 속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1932년은 유럽에 암울한 시기였다.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후유증과 파시즘과 나치즘의 등장으로 인해 공포로 물들고 있던 시기다. 하지만 영화 속 1932년은 공포와는 거리가 멀다. 마담D의 살인 사건, ‘사과를 든 소년’을 가져간 무슈 구스타브와 제로를 쫓는 드미트리 일당의 추격전이 주 내용이지만 전혀 스릴과 공포가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우스꽝스럽다.

“도살장처럼 잔혹한 이 세상에도 한 줄기 희망은 있지.” 영화의 말미, 무슈 구스타브가 죽는 시퀀스에 나오는 Mr. 무스타파의 내레이션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낭만적이면서 유쾌한 희망. 참혹한 전쟁과 파시즘·나치즘이 싹트던 어두운 시대에 낙관적인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1932년의 호텔은 분홍색과 빨강색 같은 파스텔색과 원색을 이용한다. 그와 대비되는 공간인 루츠 성은 어두운 색감을 이용해 공포를 극대화한다. 영화의 톤 앤 매너는 보통 영화의 내용을 더욱 강조시키는 조미료 같은 존재다. 나아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다양한 톤 앤 매너는 시대를 구분 짓는 방법이자, 잔혹한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행복이라는 주제를 드러내면서 스토리텔링에까지 개입한다.


편집 :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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