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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미디어비평] 애널리스는 어떻게 모권제 사회를 만들었나
2017년 05월 28일 (일) 14:04:41 박찬이 기자 8808082@gmail.com

드라마 속 인물들에게 시청자는 자신을 투사한다. 인물들 간의 권력 관계가 설득력 있게 제시될수록, 시청자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2014년부터 미국 A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하우 투 겟 어웨이 위드 머더>에는 권력의 정점에 애널리스라는 히로인이 나온다. 그는 뉴욕 미들턴 대학 법과 교수다. 그는 살인죄로 재판에 가게 된 형사 피고인들을 배심원판결에서 무죄로 뒤집어버리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다. 그의 비결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의심하게 하라 2. 증거를 뒤집어라 3. 용의자를 만들어라.’ 매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그의 능력은 입증되고 명성은 올라간다. 단지 사회적 성공만이 그가 주변인물간의 권력 관계에서 정점에 서게 된 이유일까? 그는 흑인에 중년 여성이다.

그를 주인공 자리에 앉히기 위해 드라마는 흑인 중년 여성이라는 그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더 드러낸다. 애널리스는 빈민가 출신으로 어렸을 때 외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아이를 낳았지만, 부모 자격이 없어 사회복지기구에 뺏기기도 했다. 종종 혼자 눈물을 흘린다.

애널리스는 다른 능력을 하나 더 갖고 있다. ‘돌봄’이다. 그는 자기 제자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헌신적 인물이다. 앞날이 창창한 제자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상해를 입기까지 하며 모든 상황을 챙긴다. 애널리스는 보기 드물게 성공했지만, 가장 유능한 변호사라서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돌봄’ 능력 때문에 주인공이 된다.

그의 제자들은 각각 인종이나 계급적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설정 역시 흑인 중년 여성의 관점에서 재현된다. 흑인 남성 제자 웨스는 가장 잠재력이 있는 인물이다. 중남미계 로렐 카스틸로나 흑인 미셀라 프랫 등 여성 제자들은 성공 지향적이거나 사리 분별에 강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코너 월시라는 백인 남성 게이 제자는 가장 충동적이고 애인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는 비현실적이므로 드라마의 필수적 요소인 개연성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아무리 자극적이고 주인공이 멋지다고 하더라도 개연성 없는 드라마는 대중적 인기를 끌기 어렵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로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안다. 페미니즘 이론에서 설명하는 ‘전복(顚覆)’이다. 먹는 전복이 아니라 뒤엎는 전복이다. 드라마는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약자로 사는 삶과 강자로 사는 삶 중 어떤 것이 더 힘들고 지혜가 필요한 삶일까? 약자는 강자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고통과 억압을 자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약자성’이란 것도 그런 관점에서는 ‘강자성’으로 전복된다.

   
▲ 미국 ABC에서 방송중인 드라마 <하우 투 겟어웨이 위드 머더>의 주인공 애널리스는 중년의 흑인 여성 변호사이자 교수이다. ⓒ <하우 투 겟어웨이 위드 머더> 포스터

애널리스는 흑인 여성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그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빠르며 민감하게 공감할 줄도 안다. 그의 형사사건 변호사로 그가 성공한 이면에는 총명한 머리나 독특한 변호방식뿐 아니라 이런 ‘약자성’이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삶을 버티고 살아낸 생존자로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백인 여성 조수와 깊이 교류하기도 한다. 그를 위해 조수는 살인까지 하며 돕는다. 반대로 상류층에서 강자로 살아온 그의 남편이나 백인 남성 제자는, 평시에는 강자지만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는 무력하다.

나아가 누가 강하고 약한지에 대해 이 드라마는 기존의 통념과는 정반대의 시각을 보여준다. 지배하는 것, 남을 돕지 않고 자기만 살려고 하는 것은 약함이다. 타인을 돕는 것은 강함이다. 도우려 하는 자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은 자원이다. 피해 경험을 승화시켜 자아를 만든 이는 주인공의 자격을 당당히 획득한다. 그가 ‘흑인이건 여성이건 상관없이’가 아니라 오히려 ‘흑인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모성이라는 전통적인 여성 성 역할에 갇혀 애널리스를 묘사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애널리스라는 인간을 단지 모성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남편의 부정에 눈물짓긴 했지만, 그 역시 내연관계인 남성 형사와 여성 변호사가 있었으며 친자식인 웨스에게 느끼는 감정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애널리스에게는 금기가 없다. 모성은 그의 욕망 중 하나일 뿐이다. 욕망의 위계에서 애널리스는 최상위층에 속한다.

이런 맥락을 가진 모성에 더하여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핵심은 형사 변호사로서 그가 의뢰인을 무죄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풀려나는 것은 기존 형사법 질서를 뒤엎는 것이다. 기존 형사법 질서는 흑인을 범죄자로 규정하는 세계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총격 사살은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며 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격을 받고 숨질 확률이 백인보다 2~3배 높다. 애널리스는 자신의 ‘흑인’ 정체성 때문에 형사법 체계와 갈등한다. 그에게 형사법 체계는 도전 대상이다. 그래서 그의 형사 변호사 경력과 그 후 돌출행동은 ‘저항’ 내지 ‘운동’이다.

그는 주인공일 뿐 아니라 드라마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적 인물이기도 하다. 즉 드라마 속 인과율의 정점에는 애널리스가 있다. 살인죄를 저질렀음에도 감옥에 가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남편을 죽인 학생을 바로 처단하지 않고 남편이 진짜 불륜을 저질렀는지를 알아내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도움이 필수인 6인의 제자들은 그의 말을 철석같이 따른다. 형사법 세계에서 그는 누군가를 변호사로 만들 수도 있으며 무죄로 만들 수도 있고 유죄로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형사법 체계는 이미 그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절차에 불과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가 놀 수 있는 세계다.

애널리스와 그가 낳은 아이의 앞길을 막는 인물들은 드라마 속에서 모두 죽는다. 생-죽음의 인과율은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뒤집어진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아이였으며, 배 속에 있을 때 어머니가 죽이지 않았기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태어나서 죽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난다. 더구나 아이를 품은 어머니가 자살하면, 배 속의 아이도 죽는다. 오히려 모두는 살인자(어머니)의 자비에 기대어 삶을 유지하는 것이 된다.

그에게는 그에게 기대고 있는 자식 같은 5인의 제자와 2명의 조수 그리고 제자이면서 배로 낳은 자식, 그를 사랑하는 남성 애인과 여성 애인이 있다, 인물들 간의 관계는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가 가진 인종, 젠더 정체성과 그것을 극복하면서 쌓은 능력은 고스란히 그가 꾸린 대안 가족의 규칙이 되고 받침대가 된다. 애널리스는 이 집단의 가치체계와 삶의 질서를 주도한다. 원 톱 드라마 속 그가 특별한 히로인인 증거다.


편집 : 안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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