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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폴리티쿠스’와 시민주권
[역사인문산책] 직접 민주주의
2017년 05월 15일 (월) 18:53:56 박수지 기자 wbdjffl514@naver.com
   
▲ 박수지 기자

“오늘 란츠게마인데에서 우리 공동체를 확인하고, 함께 정치하는 것이 얼마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인지 다시 증명해 보입시다.” 글라루스 주지사의 개회사로 정치 축제가 막을 올린다.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의 광장에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부부, 청년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여든다. 오전 9시부터 펼쳐지는 군악대와 주정부, 주의회 인사들의 퍼레이드는 축제 분위기를 끌어 올린다. 광장에 모인 유권자들은 중앙 연단에서 의장이 읽어내는 의제를 듣고 거수로 표결 한다. 대여섯 시간이 넘는 마라톤 총회는 단순하게 ‘예/아니오’를 묻는 투표가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 시간이다. 주민단상의 맨 앞엔 의원들과 장관들이 앉아 시민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800여 년 역사를 가진 스위스 글라루스의 주민총회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의 풍경이다.

   
▲ 스위스는 아펜첼과 글라루스 등 일부지방에서 매년 유권자들이 모여 의제에 거수로 표결하는 '란츠게마인데'가 열린다. ⓒ 스위스관광청

우리 사회의 시민은 대의민주주의의 이런 틈을 매우기 위해 지난 10월부터 23주 동안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는 촛불을 든 할아버지나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청년을 찾아 볼 수 없다. 연방국가 차원에서는 대의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지역 단위에서는 란츠게마인데와 비슷한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언제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굳이 광장에 나오지 않는다.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매번 광장으로 나가야 하는 민주주의는 고장 난 불량 상품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뽑은 대표자가 정치하는 대의민주제다. 국왕이 독점하던 권력을 되찾아 오는 중간 단계로 현대사회 대의 민주주의는 첫발을 뗐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에서 대표자들의 권력은 비대해져 가고, 그들을 뽑은 시민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져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 장 자크 루소의 대의 민주주의 비판은 200년 넘게 시대를 앞서갔다. ‘국민들이 선거 날만 주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 루소의 말대로 시민은 그저 정치인에게 한 표 던지는 고객 수준에 머문다. 그것도 사야할 물건이 정해져 있는 고객이다. 정책마다 투표할 수 없고 정당과 후보가 내놓은 ‘묶음 상품’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상품을 구매한 경우에는 반품도 어렵다. 4년 혹은 5년을 기다렸다가 다시 구매해야 하니 말이다.

직접 민주주의 시작은 그리스 아테네다. 민중은 1년에 40차례가 열리는 민회를 통해 정치에 참여했고, 배심원으로 재판의 주체가 됐다. 아고라에서 열리는 민회에서는 전쟁이나 관리 선출과 같은 사안을 투표로 결정했다. 기원전 508년의 아테네와 오늘날 스위스 국민들은 정치의 생활화, 생활의 정치화가 이뤄진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이다. 투표나 정당으로 시민의 정치의식과 행동을 대행하는 대의정치에서는 정치적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구현하기 어렵다.

“자유는 권력에 참여하는 것이다.” 권력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권력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키케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대의민주제에서 시민들은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없고 권력자들로부터 ‘통보’ 받을 뿐이다. 4대강 사업과 사드 배치 등의 국가적 문제부터 자전거 거치대 설치와 금연 구역 지정 등의 동네의 일상까지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목소리를 전달하는 체제가 진정한 민주주의다. 자유를 누리는 방법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정책을 직접 결정하고 권력을 남용한 통치자로부터 주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참다운 호모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의 구현은 시민주권의 직접민주주의에 달렸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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