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류창기

▲ 류창기 기자
제주도에서 온 대학원 동료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졌다.

“형은 무상교육 받으니 좋소?”

나는 ‘대산농촌문화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농촌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여느 학생과 달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2년간 등록금 전액 장학금이 보장돼 있다.

마침 신문을 봤다. 멀리 남미 칠레 수도 산티아고로부터 120km 떨어진 ‘발파라이소’라는 도시에서 여학생들이 옷을 홀딱 벗고 보디페인팅을 한 채 ‘즉시 무상교육을 실시하라’고 시위를 한다.

자유주의 지성인으로서 1511년 <우신예찬>을 집필한 에라스무스는 최초의 세계주의자였다. 그는 똑똑한 체하는 지식인이나 거만한 사회지도층을 모두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오늘날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관용과 배려의 머리와 마음이 되었다.

지난 1999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유럽 29개국 교육부장관들이 모였다. ‘볼로냐 선언’에서 유럽국가들은 ‘에라스무스 장학금’계획에 동의하였고 유럽 고등교육기관들의 협조를 받아왔다.

과거 러시아 연방이었던 리투아니아에서 경제금융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브라운 슈바이크에서 온 독일인 벗은 ‘에라스무스 장학금’을 매달 받으면서 나이트 클럽에 갈 ‘권리’를 보장받았다. ‘공부할 권리’와 ‘적정하게 즐길 권리’를 유럽연합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보장해주었다. 유럽연합은 국제교류와 연대를 위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에라스무스 장학금’을 지급했다. 조금만 여유를 부려도 장학금이 잘릴 수 있는 한국학생들 형편과 대비됐다.

2007년 OECD 조사결과에 따르면 민간고등교육 부문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보조금은 국내총생산의 0.1%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이는 OECD 평균 0.2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근 등록금 논란이 커지면서 ‘고등교육재정교부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기부금을 모으기 어려운 지방대학들을 위해서라도 고등교육예산을 1%까지 늘려야 저소득층 학생에게 ‘장학금’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대학원 동료에게 자신 있게 답할 것 그랬다.

“그래, 나는 무상교육 받으니 좋아.”

공짜로 교육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여 늘 공부만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방함 속에서 자유지성이 싹 트고, 장학금의 성과도 미래에 나타나는 게 아닐까? 올해 아세안 대학 네트워크에서 ‘아시아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한다.

B학점 이상만 반값 등록금 수혜대상으로 하겠다는 우리 정치인들이 시야를 좀 넓혔으면 한다. 나라의 장래에 대한 투자에 뭐 그리 조건이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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