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다수결투표제의 모순

▲ 장현석 기자
   

다수결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선택 방식으로 많이 쓰인다. 얼핏 보면 다수가 찬성하는 쪽의 안(案)을 결정하기에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다수결은 그 폭력성을 교묘히 감추고 있다. ‘빙산의 일각’과 같다. 우리 눈에 보이는 빙산 아래에는 엄청난 양의 얼음 덩어리가 존재한다. 다수결도 마찬가지로 수면 위로 올라온 1등 표 아래 상당한 양의 표심이 존재한다. 하지만 ‘1등’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수의 소중한 표심을 감춘다. 다음 예를 보자.

7명의 친구들(①~⑦)이 뉴욕, 방콕, 파리 중 한 곳을 선택해 여행을 가려고 한다.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투표로 여행지를 결정하려고 하는데 각자 선호하는 도시가 다음과 같다.

<사례1>

① 뉴욕>방콕>파리. ② 뉴욕>방콕>파리. ③ 뉴욕>방콕>파리. 
④ 방콕>파리>뉴욕. ⑤ 방콕>파리>뉴욕. ⑥ 파리>방콕>뉴욕. ⑦ 파리>방콕>뉴욕

7명의 집단에서 다수결에 의해 가장 가고 싶은 도시를 고른다면 뉴욕(3표), 방콕(2표), 파리(2표)가 되어 뉴욕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반대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를 하나 고르는 투표를 하면 뉴욕(4표), 파리(3표), 방콕(0표)이 되어 이번에도 뉴욕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가장 가고 싶은 도시=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상위 두 도시를 놓고 결선투표를 하기로 했다. 이 방식은 여러 경우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투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례2>

① 뉴욕>파리>방콕. ② 뉴욕>파리>방콕. ③ 뉴욕>파리>방콕. 
④ 파리>방콕>뉴욕. ⑤ 파리>방콕>뉴욕. ⑥ 파리>방콕>뉴욕. ⑦ 방콕>뉴욕>파리.

1차 투표에서 가장 가고 싶은 도시는 뉴욕(3표), 파리(3표), 방콕(1표)이므로, 뉴욕과 파리를 놓고 결선 투표를 하면 뉴욕(4표), 파리(3표)가 되어 뉴욕으로 결정된다. 반대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를 놓고 1차 투표를 하면 뉴욕(3표), 방콕(3표), 파리(1표)가 되어 뉴욕과 방콕을 놓고 결선투표를 하면 뉴욕(4표), 방콕(3표)이 되어 뉴욕으로 결정된다. 이차 결선투표 방식을 도입해도 “가장 가고 싶은 도시=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보르다의 역설(Borda’s paradox)’은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최선과 최악이 일치할 수 있는 다수결투표제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다수결 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선에 이를 적용하면 가장 선호도가 낮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순위별 점수를 부여해 총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즉, 1등에겐 3점, 2등에겐 2점, 3등에겐 1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선 이 방식으로 투표를 진행해 보자.

뉴욕은 (3점×3명)+(2점×0명)+(1점×4명)=13점이 된다.
방콕은 (3점×2명)+(2점×5명)+(1점×0명)=16점이다.
파리는 (3점×2명)+(2점×2명)+(1점×3명)=13점이다.

이 방법의 투표 결과는 방콕이 된다.

이 방식의 결과는 다수결 방식보다 합리적이다. 선호도가 고루 반영됐기 때문이다. 선호도의 반영도를 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도형을 이용해 보자. 우선 뉴욕은 세로축을 선호도 상·중·하로, 가로축 면적을 명수로 한 그래프로 나타낼 때 모래시계형이다. 가장 좋아하는 표보다 가장 싫어하는 표가 더 많아 직관적으로 보기에도 1등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형태로 뽑힌 대선 후보라면 국정 운영에 심각한 난항이 예상된다. 파리는 앞서 그래프 방식으로 표현하면 5각형이다. 가장 좋아하는 표는 전혀 없고 그저 그렇거나 가장 좋아하지 않는 표다. 직관적으로 다수의 사람이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콕의 경우는 역삼각형이다.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가장 좋아하거나 보통인 수준의 표가 모였다. 즉, 대체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방식은 모든 표의 의중을 잘 반영하고 있다.

순위별 점수 합산 방식은 사표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다수결 방식에선 수면 아래 감춰진 거대한 빙각들이 사표가 되어 죽어 버린다. 그러나 제시된 방식에선 모든 표의 가치가 골고루 반영된다. 자신이 우선순위를 두는 가치에 따라 스스로가 선택해 그것이 점수로 투표 결과에 나타나고 있다.

▲ 한국의 투표소 장면. 한국은 선거에서 다수결투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다수결투표방식은 소수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 YTN 뉴스 갈무리

다수결은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인다. 친구들끼리 식사 메뉴를 고를 때, 여행지를 고를 때 등 손쉽게 활용된다. 무엇보다 쉽고 간결하다. 별 고민 없이 손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민주적이라는 명분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수장을 가리는 대선에서는 결코 가볍게 결정을 내려선 안 된다. 복잡하더라도 신중히 해야 한다. 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지난 18대를 돌이켜 봐도 알 수 있다. 다수결의 폭력성에 소중한 국민의 의사가 사장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편집 : 임형준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