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통합

▲ 송승현 기자

2000년 스페인 명문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깜짝 발표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모으겠다”는 일명 ‘갈락티코(Galáctico, 은하수)’ 정책. 흔히 이 전략은 우승을 위한 필살기라 평가받지만, 이면엔 또 다른 속내가 숨겨졌다. 레알 마드리드는 4년마다 ‘소시오(Socio, 축구 클럽의 멤버십 회원)’의 투표로 회장을 뽑는다. 소시오의 지지는 경기 결과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따라서 결과에 상관없이 소시오의 지지를 유지하는 게 필수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개별 인지도는 경기 결과의 불확실성을 보완하는 중요한 요소다. 경기에 따라 구단의 지지도는 내려가도, 선수 개인별 지지도의 합이 이를 상쇄하기 때문이다. 갈락티코 정책이 많은 비판을 받지만, 페레스 회장에게 있어 안정적 구단운영을 위한 비장의 카드인 셈이다.

안정적 운영은 차기 정권에도 화두다. 이를 위해 대선 후보들은 자신을 통합과 안정의 적임자라 자청하지만, ‘어떻게’에 대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통합을 위해 서로를 헤쳐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 서로 비수를 겨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적폐 논란’은 단적인 예다. 안철수 현상은 갈 곳 잃은 보수층과 중도층의 합작품이다. 핵심은 ‘문재인은 안 된다’다. 대척점에 서 있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들은 ‘문재인이어야만 한다’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된다고 한들 통합은 불가능에 가깝다. 국민은 각 당이 서로 대선 결과에 맞춰 “선거는 선거일뿐”과 같은 대승적 모습을 기대하지만 ‘안모닝’, ‘문모닝’과 같은 네거티브에서 그런 모습은 언감생심이다. 이대로라면 새 대통령의 국가 개혁 시도는 정당 간 알력다툼으로 좌초할지 모른다.

▲ 레알 마드리드는 가장 유명한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갈락티코 정책'을 통해 다양한 국가들의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 pixabay

영조는 대선 후보들에게 귀감이다. 조선 후기, 국정은 거듭되는 사화의 환국정치 속에 갈피를 못 잡았다. 상대방을 견제하는 데만 혈안이 된 붕당으로 주정은 공회전했다. 왕은 자신을 집권하게 도와준 붕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사권은 제한되었고, 인재풀은 말라버렸다. 영조는 부왕 숙종과 이복형 경종의 치세에 뼈저리게 느꼈다. 환국정치가 반복되는 한, 정쟁은 끊이질 않는다는 사실을. 영조가 택한 방법은 권력의 일시 교체가 아닌, 권력균형 유지의 ‘탕평정치’였다. 가령 붕당의 한 축인 노론으로 영의정을 삼으면, 다른 축인 소론으로 좌의정을 삼았다. 비록 영조 탕평정책의 한계가 뚜렷했지만, 탕평책이 없었다면 인조부터 효종에 이르기까지 거론되기만 했던 ‘균역법’은 영조 때 빛을 보지 못했을 터다.

‘사드 경제보복‘, ’한국의 과거 중국 속국론‘, ’사드 야간 기습배치와 한국 비용부담론‘... 한국은 고립무원의 처지다. 고래싸움 중인 미중 양대 강국으로부터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됐다. 내부적으로 양극화, 경제위기, 개헌 등 난제가 산처럼 쌓였다. 차기 대통령이 져야할 이 짐들을 푸는 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 20대 대선을 견인해 온 주체가 정치권이 아닌 촛불이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 지지도 차이는 개혁 주체에 대한 선호도에 지나지 않는다. 촛불의 주문은 국가개혁이다. 개혁에 필요하다면 상대편 캠프의 인재도 적극 등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내각의 다양성은 갈렸던 국민 지지를 하나로 모으기에도 좋다. 마드리드 하늘에 빛나던 갈락티코를 금수강산에 수놓을 차례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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