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촌 빈집에 방치된 아이들...범죄와 안전사고 무방비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3부: 애 키우기 전쟁]

내년부터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주 5일제 수업이 전면 실시되는 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취약한 보육 환경, 특히 ‘휴일에 방치되는 아이들’의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보육의 문제는 주말과 휴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일과 가정의 양립’은 풀기 어렵고 고통스런 숙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특히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비싼 주거비용, 허리가 휘는 교육비에 질린 젊은 세대는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출산 파업’을 감행하고 있다. 이로 인한 ‘저출산 고령화’ 추세는 경제의 성장 잠재력마저 위협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 키우기’가 ‘전쟁’이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서민과 빈곤층의 현실을 중심으로 <단비뉴스>가 심층 취재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부산 사상구 덕포동 골목길은 조용했다. 한낮인데도 어둑했고 한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이곳은 지난해 2월 여중생을 빈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소형차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네였다. 빼곡히 들어선 집들 중 절반 이상은 재개발 때문에 이사를 간 빈집이었다. 집들은 상당수가 벽에 금이 가있거나 대문이 녹슬고 걸쇠가 망가져 있었다. 담장도 성인 남자의 어깨 높이 정도라 마음만 먹으면 쉽게 넘을 수 있었다. 집들이 워낙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어 건물 옥상과 옥상 사이를 훌쩍 뛰어넘기도 쉬웠다. 실제로 김길태는 경찰의 추격을 받을 때 옥상을 뛰어넘어 도망 다녔다고 한다.

마을을 돌아보다 골목 모퉁이에서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여자 아이와 맞닥뜨렸다. 10살 정도 됐을까. 아이는 화들짝 놀라더니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몇 마디 물어보려 아이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아이가 들어간 집의 쪽문은 회색 페인트가 다 벗겨져 빨갛게 녹이 슬어 있었다. “나쁜 사람 아니니 하나만 물어보자”며 문을 두드렸다. 아이는 혼자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낡은 문은 두드릴 때마다 덜컹거렸고, 제대로 잠겨 있지 않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가 겁에 질린 것 같아 그냥 돌아 나왔다.

▲ 방치되어 있는 폐가. ⓒ 김승태

범죄와 가난, 상처난 아이들 마음에 지우지 못할 흉터로

김길태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넘었지만 덕포동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제2의 김길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집에서 돌봐 줄 부모나 조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등하교 때나 집 앞 가게에 갈 때 조차 어른의 손을 잡고 나온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이 더 많다.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부모가 일터에 나간 긴 시간 동안 대부분의 아이들은 혼자 빈 집을 지킨다. 아이들은 무서운 얘기를 많이 들은 탓인지 집 앞이나 놀이터에 나와 놀다가도 낯선 사람을 보면 후다닥 달아난다.

이 동네에서 아버지 없이 엄마와 살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은영(10ㆍ가명)과 1학년 은아(8ㆍ가명) 자매의 집을 찾았다. 아이들 엄마 박미진 (36ㆍ가명)씨는 지난 2월의 눈 오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날 은영이와 은아는 부산에선 드물게 내린 눈 속에서 모처럼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서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러다 은아가 길가에 버려진 유리더미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유리 조각에 찢긴 은아의 무릎에선 붉은 피가 줄줄 흘려 내렸다.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을 보며 은영이도 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엄마는 일을 나가고 없었다. 

▲건물사이가 가까워 옥상으로도 마을 전구간 이동이 가능하다. 실제로 김길태가 옥상을 타고 도망 다닌 사례가 있다. 혹여 옥상으로 이동이 불가능 하더라도 집 건물간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느 집이든 들어갈 수 있다. 문단속을 한다고 해도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 김승태

다행히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 할머니가 아이들을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갔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매장에서 화장품 판매일을 하는 박 씨가 연락을 받고 달려왔을 때, 은아는 보호자가 없어 수술을 못한 채 훌쩍이고 있었다. 부랴부랴 무릎을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은아의 마음엔 흉터보다 더 큰 상처가 남은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박씨는 은영이와 은아 걱정에 더욱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그때는 마침 주인집 할머니가 아이들을 발견했지만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그 때 누가 도와줄 수 있을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과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일을 나가야 한다. 아침 8시 10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박 씨도 화장품 매장에 출근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서서 일한다. 비정규직인 박 씨는 평일을 골라 한 달에 5 번 정도 쉴 수 있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엔 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고민이 많다. 

먹이고 살리려는 부모는 부재 중, 누가 아이들을 돌보나?

은영이와 은아는 학교수업을 오후 4시30분에 마치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올빼미교실’을 통해 6시 10분까지 국어, 영어, 수학 등의 보충수업을 받는다. 두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올빼미교실은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교사들이 직접 학생들의 방과후 지도를 맡는다. 은영이와 은아는 올빼미 수업 후 저녁만 먹고 6시 45분쯤 학교에서 나온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7시쯤. 엄마가 퇴근하는 9시 30분까지는 아이들끼리만 있어야 한다.  

학교에는 올빼미교실에 이어 저녁 9시까지 운영하는 ‘저녁돌봄교실’이 있지만 은영이와 은아는 그 때까지 남아 있을 수가 없다. 박 씨가 9시에 퇴근해서 아이들을 데리러 오면 9시 30분인데 ‘저녁돌봄교실’은 아이들을 9시까지만 돌봐주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아이들을 30분만 더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선생님들도 퇴근 후 자기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박 씨는 아이들을 해 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가도록 했다. 김길태 사건 후 동네에 방범초소와 폐쇄회로 티비(CCTV)가 생겼지만 워낙 인적이 드물고, 길이 어둡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김길태 사건의 희생자 이모 양이 살던 집의 담장이다. 성인 남성의 가슴도 채 오지 않는 높이다. ⓒ 김승태

방과 후 아이들을 돌봐주는 30대 후반의 여교사는 “정해진 시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봐주고 있지만, 돌봄 교육 이후의 시간은 우리도 곤란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박 씨에겐 주말이 더욱 고민이다. 학교가 쉬는 둘째, 넷째 토요일, 즉 ‘놀토’와 일요일, 공휴일에  아이들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놀토’의 경우 아이들은 일단 방과후 프로그램에 따라 학교에 갔다가 12시쯤 돌아온다. 일요일은 교회 주일학교에 갔다가 오후 1시쯤 집에 돌아온다. 그 이후엔 그냥 두 아이가 저희끼리 논다. 박 씨가 퇴근할 때까지 8시간 이상 방치되는 것이다. 주말 근무 때면 박 씨는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 생각에 더욱 신경이 곤두선다. 방과 후 교육의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두 아이의 올빼미 교실과 주말 방과후 프로그램 등교육비로 한 달에 30만~40만 원이 나간다. 월 수입이 170만 원 남짓인 박 씨에게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박 씨가 돈 걱정을 하자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은영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그럼 나 올빼미 끊을게.”

박 씨 주변엔 도움을 청할 친척이나 가족이 없다. 교회 사람들이 종종 마음을 써주지만 지속적인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박 씨는 어서 이 불안한 동네를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월세를 사는 박 씨 형편에 이 동네 만큼 방 값이 싼 곳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재개발이 안됐으면 좋겠어요. 재개발이 되면 집주인은 좋지만 우리는 쫓겨나면 갈 곳이 없어요. ”

은영이네 집은 2층짜리 주택 윗층의 17평 남짓한 공간에 방이 2개다. 원래 보증금 2500만 원에 월 10만 원짜리였는데, 아래층 주인 할머니가 사정이 딱하다며 보증금 500만 원에 살게 해 줬다. 이 집을 떠나 아이들 학교에서 가깝고 좀 더 안전한 곳으로 가려면 최소한 보증금 1000만 원에 매달 50만~60만 원을 내야 한다. 박 씨에겐 너무 벅찬 부담이다.   

위험한 동네에서 불안에 떨면서도 떠날 수 없는 부모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내 아이가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몸서리를 친다. 그런데도 어쩔 수가 없다. 은영이네 근처에 사는 이선희(45ㆍ가명) 씨 가족도 마찬가지다. 이 씨는 하체마비 장애인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지만 김길태 사건 후 초등학생인 쌍둥이 딸들의 등하교 길을 함께 하고 있다.  

▲김길태 사건의 희생자 이모 양이 물통에 유기된 채 시체로 발견된 곳. 건물을 허물어 공터만 남아있는 이 곳은 담을 타고 얼마든지 이동이 가능했다. ⓒ 김승태
“내 몸이 불편해도 직접 데리고 가야 안심이 돼요.”

하지만 휠체어를 타면서 아이들을 따라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이 아프거나 바쁜 날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끼리 내보내야 한다. 아이들 때문에 늘 긴장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이 씨는 말했다. 

그래도 불편한 몸으로나마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는 이 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은영이네 처럼 편부 편모 가정이거나 맞벌이를 하는 가정, 할머니나 할아버지 손에 자라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일하는 동안 그냥 방치되기 일쑤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에 빈민가 아이들은 담장도, 대문도, 유리창도 허술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안전 사고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김길태 사건의 희생자인 여중생 이 모(당시 13)양도 맞벌이를 하는 부모가 집을 비운 저녁 시간에 혼자 있다가 변을 당했다. 

 쉬는 날과 밤에 더욱 시급하다

서울대 이봉주(사회복지학)교수는 “저소득층 가정일수록 부모의 출퇴근이 불규칙하고 야간이나 주말, 휴일 등에 아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같은 맞벌이라도 중산층 가정의 경우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여유가 있는 반면 빈곤층은 생계 자체에 급급하다 보니 아동 안전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보육 기반이 전반적으로 취약하지만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 특히 열악하기 때문에 공공부문에서 서민과 빈곤층을 위한 보육 및 교육 시설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야간이나 주말, 휴일 등 근로계층 가정의 현실적 돌봄 수요에 맞출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주5일 수업이 전면 실시되기 때문에 대책이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중앙대 최영 교수(사회복지학)는 “현재 교육과학부를 중심으로 각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후 교육과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지역아동센터의 돌봄 서비스를 잘 연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교육은 교사들이 학교 일 등으로 바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 아동 수 부족으로 급식운영에 어려움이 있는 등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지역아동센터의 돌봄 교육은 자원과 인력 부족 등으로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모들은 자녀교육과 관련해 지역아동센터보다 학교의 교육서비스를 더 선호하고 신뢰하는 편이다. 최 교수는 학교와 지역아동센터를 잘 연계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함으로써 방과후 돌봄 교육을 대폭 확충하고 교육 내용의 만족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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