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검찰

▲ 박진홍 기자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 선언>에 쓴 첫 문장이다. 1848년은 유럽 지역 노동자들 사이에 자본가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던 시기다. 착취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공업지역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충돌을 보며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곧 일이 터져 상황을 개선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마르크스와 노동자들에게 공산주의는 살아있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다.

실체가 모호했던 ‘공산주의’와 달리,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유령은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검찰청법 조항으로 선명하게 살아있었다. 평검사에서 차장검사, 검찰총장까지 이어지는 상명하복 시스템은 기소 기준을 통일해 사회적 혼란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됐다. 하지만 상부의 결정이 진리로 통용되는 게 문제였다. 정치적 사건마다 검찰 간부들이 일선 검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수사를 흐지부지되게 하는 등 폐단이 이어졌다. 이에 2003년 정부는 결국 개정이라는 칼을 들어 상부에 복종한다는 조항을 50년 만에 베어냈다.

▲ 1848년 런던에서 출판된 <공산당 선언> 표지. ⓒ www.marxists.org

법전 위 문구는 사라졌지만, 유령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일방적인 업무 지시와 폭언, 심지어 폭행범 잡는 손으로 폭력을 행사해 2년 차 말단 검사를 자살로 몰고 간 한 부장검사. 퇴직 후에도 검사들에게 입김을 행사한 홍만표 전 검사장. 0원에서 120억을 번 ‘미다스왕’ 진경준 검사장의 연금술이 드러났음에도 3개월이나 수사를 할지 말지 검토만 했던 검사들. 검찰 신뢰를 바닥에 떨어트린 사건들의 교집합은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유령이다. 절대복종을 강요하고, 조직 내부의 문제는 조직을 위해 함구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의 기저에는 ‘우리는 한 몸’이라는 조직 우선주의가 떼뱀처럼 똬리를 튼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병우 영장을 기각당한 2017년 대한민국 검찰청에 유령은 여전히 떠돌고 있다. 비난에 직면한 검찰은 총장 임명절차 개선, 임기 연장 등 개혁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유령에게 홀려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모습이다.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한다면 제삼자가 나서는 게 순서다. 공수처는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유령을 쫓아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퇴마사다. 검찰만 쥐고 있는 기소권이라는 칼자루를 공수처에도 쥐여 주면 역사상 한 번도 검찰청에 존재하지 않았던 견제와 균형이 생긴다.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끝난다. 지난겨울 우리는 촛불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무너진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갈망을 보았다. 문민정부 이래로 수십 년간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공수처를 도입하지 못한 건 검찰의 강한 반발 때문이었다. 권한이 약해지는 게 싫기 때문이다. 검사들이 들고 있는 기소권이라는 권한은 검찰 조직을 지키기 위한 게 아니다. 법과 정의를 실현해 공동체를 지키라고 국민이 위임한 권리다. 이를 곡해해 검찰이 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면 주권자인 국민이 바로잡는 게 국민주권의 원칙에 부합한다. 검찰청 건물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죽었지만 죽지 않은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한국의 촛불 민심이여, 단결하라”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남지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