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서초동

▲ 송승현 기자

그는 아침에 영장 심사를 받았고,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에 구속인 신분으로 바뀌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마침내 자신의 신분을 되찾았다. 그 순간 구속을 찬성하던 75%의 국민은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국정농단의 여러 증거와 정황들이 나왔지만 “그래도 기각되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잠을 설쳤던 국민이 아침에 핸드폰을 켜고 구속 여부를 확인했던 이유는 하나다. 지난 몇 년간 가라앉았다고 여긴 정의가 이번만큼은 떠오르길 바랐기 때문이다.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의 형성을 ‘무지의 장막’으로 설명한다. 서로가 어떤 조건에 처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때(장막으로 둘려 있어 모두가 무지상태에 있을 때), 사람들은 최대한 합리적인 규칙을 수립할 공산이 크다고 봤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자신이 어떤 조건에 처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민은 이 장막을 토대로 형성된 규칙이 정의롭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적어도 자신을 불의로부터 지켜줄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은 권력자는 이 장막을 찢고, 벌어진 틈 사이로 정의를 짓밟았다. 자신을 비판하던 이들을 ‘블랙’으로 낙인찍고, 자식 잃은 부모를 ‘시체 팔이’ 운운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반면, 자신의 ‘오랜 인연’에게는 권력을 이용해 이권을 챙겨줬다. 장막이, 정의가 짓밟혔다.

▲ 정의와 국가를 농락한 자들의 운명을 좌우할 서초동에서 ‘잔인한 달’ 4월의 서초(瑞草, 경사스런 풀)는 돋아날 수 있을까. ⓒ YTN News 화면 갈무리

국민의 머리와 가슴에서 국가도 무너져 내렸다.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을 때 국가는 거기 없었다. 취임 때 “국가와 결혼했다”던 외침은 자취를 감췄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단어를 국가와 대응시킬 때 알아봤어야 할지 모른다. 그의 관념 속에서 국가는 개인이 차용할 수 있는 소유물쯤이었다는 것을. 사적 영역으로 전락해버린 국가는 최순실에게 화수분으로, “없는 죄도 만든다”던 우병우에게 큰 칼로 모습을 바꿔가며 나타났다. 지난 22일 자신의 진술 조서를 검토하기 위해 쓴 7시간과 베일의 7시간이 주는 이질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릇된 정의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생명이 싹트는 4월을 토머스 엘리엇은 ‘잔인한 달’이라 읊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지만 도리어 따뜻한 건 겨울이라는 역설. 준비되지 않은 땅에 창조를 강요하는 봄에 대한 엘리엇의 독특한 시각이 엿보인다. 머나먼 땅에 살던 시인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그대로 투영돼 씁쓸함을 자아낸다. 지난 3년간 한국사회의 4월은 상실의 달이었다.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었던가.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봄. 정의와 국가를 농락한 자들의 운명을 좌우할 서초동에서 ‘잔인한 달’ 4월의 서초(瑞草, 경사스러운 풀)는 돋아날 수 있을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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