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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의 평범성, 선(善)의 평범성
[역사인문산책] 세월호
2017년 04월 18일 (화) 13:47:58 박진홍 기자 fallingmee@naver.com
   
▲ 박진홍 기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중년의 남성. 유럽 어디를 가더라도 길에서 한 번은 마주칠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한 이 사람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생김새와는 달리 그가 살아온 발자취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치 독일시대 악명 높았던 친위대 게슈타포(비밀경찰)에서 유대인과 과장을 맡아 유대인 추방과 수송을 지시한 장본인이다. 15년간의 도피생활 끝에 법정에 선 그는 표정의 변화 없이 일관되게 진술했다. “나는 무죄다.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며 ‘악(惡)의 평범성’을 떠올렸다. 600만 명을 학살하는 데 일조했지만, 그저 명령을 열심히 따른 평범한 공무원일지도 모른다는 발상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물이 차오르는 타이타닉에서 객실 철문을 잠근 승무원들, 중앙로역 1080호 열차에서 마스터키를 뽑고 탈출한 기관사, 그리고 아무런 조치 없이 탈출한 세월호 선원들. 모두 직장인이자 누군가의 가족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희생에 결정적 악역을 한 이들의 이면에는, 평범한 직장인이 명령과 관행을 따랐을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도사린다.

   
▲ 1961년 예루살렘 전범 법정에 나온 아돌프 아이히만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 flickr

관료주의는 효율을 지향한다. 엄격한 위계질서 아래에서 구성원들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할수록 성과가 지상과제다. 세월호 선원들을 비롯한 우리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은 가정, 학교, 직장에서 조직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기꺼이 톱니바퀴가 되라고 교육받아왔다. 개인적 의견이나 생각은 집단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필요 없다. 아렌트는 자기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아이히만에게서 ‘말하기의 무능력, 사유의 무능력,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력’을 찾아냈다. 평범했던 사람들이, 먼저 탈출한 사실을 지적하자 “승객 구하러 객실에 어떻게 가냐. 정말 희한한 사람들이네!”라며 발끈하는 악인이 된 건 이 사회가 그들을 직업윤리보다 효율과 위계를 먼저 떠올리는 기계 부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는 선원들 말고도 우리 사회에 기계 같은 사유 무능력자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보여줬다. 구조작업이 한창일 때 ‘VIP 보고용 사진’을 해경에 줄기차게 요구한 청와대 직원. 수습이 혼선을 빚자 “우리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던 국가안보실장. 청문회에서 구조가 지연된 이유를 묻자 하나같이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 해경 관료들. 이들 꼭대기에 ‘7시간의 비밀’을 간직한 채 앉아있던 전 대통령. 아렌트는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고 핵심을 찌른다. 3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사고 진상이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건, ‘사회 통합과 발전’에 도움 안 되는 생각은 그만하자던 위로부터의 지시와 아래로부터의 복종이 빚은 또 하나의 참사다.

세월호가 다시 떠올랐다. 지배와 복종을 꿈꿨던 대통령이 가라앉은 직후다. 우연인 듯 필연인 두 가지 사건은 시민들이 ‘그녀의 국정 운영 방식은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졌기에 가능했다. 청문회에서 현장을 생생히 증언한 잠수사들, 팽목항과 광화문을 기록하고 알려온 언론인들, 리본과 촛불로 함께 한 시민들은 우리 사회에 아직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생각하는 능력이 남아 있음을 알렸다. 에바 포겔만은 <양심과 용기>에서 나치에게 탄압받던 이들을 도운 사람들 역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적었다. 여전히 합리와 위계가 휘감고 있는 사회 한가운데서 세월호를 끝내 들어 올린 ‘선(善)의 평범성’이 몰고 올 변화에 희망을 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박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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